오분만 더. 십 분만 더. 이불속이 포근한 계절이 시작되었구나. 찬 공기를 마시며 따스한 이불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을 좋아한다. 잠들기 전 빼꼼 열어둔 창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새어든다. 아침을 좋아하는 일로 시작하는 건 감사한 일이지. 그렇게 5분만을 외치다 일어나 보니 30분이 지나 있었다.
무슨 일을 하냐는 질문에 드라마 프로듀서요, 하고 답하면 은근한 관심이 쏟아진다. 최근에 어떤 작품을 했었는지, 연예인을 많이 봤는지, ㅇㅇ은 정말 작품 속 모습처럼 예쁘고 잘생겼는지 묻는다. 나에게도 저명한 인물을 만나는 건 특별한 일인데 접점이 전혀 없는 분들에게는 오죽하겠나. 나의 차분한 대답을 들은 상대는, 지금까지의 인사치레를 통해 친밀해졌다 생각하는지 내밀한 이야기를 물어 온다. 어느 누가 무례했는지, 친절했는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오프 더 레코드로 직접 겪은 일화 같은 거.
언제부턴가 타인의 이야기를 내 입으로 전하는 게 불편해졌다. 사람의 마음은 시시각각 변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다. 장장 십이 년의 학창 시절을 안전지향적인 모범생으로 보내왔지만 성인이 되어 과감한 선택을 일삼는 나만 봐도 그렇다. 상업 광고는 하지 않겠다 선언했던 이효리도 돌연 마음을 바꿔 다시 광고를 찍겠다고 하지 않았나.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기도 하는 게 사람 사는 일 아닌가 싶은 거지. 나를 만났을 당시엔 무례하거나 친절했더라도 그때 마침 컨디션이 영 엉망이었을 수 있고, 차마 다 털어놓을 수 없는 우환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관통하고 있었을 수 있고, 새로이 사랑에 빠져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때였을 가능성을 고려해 보는 것이다. 내가 당신과 함께 한 잠깐은, 당신을 무어라고 정의 내리기엔 찰나라는 사실을 상기하는 거다.
그래서 대답을 살짝 미뤄 본다. 오 분 더 누워있으려다 삼십 분을 이불속에서 뭉갰던 오늘 아침처럼. 당신을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친밀한 시간이 쌓일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