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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글레 Jul 09. 2020

나와 주정뱅이 아저씨와 어린왕자

스스로 뿌듯한 세상은 얼마나 환할까 


어린왕자가 만난 술주정뱅이 아저씨를 만나면 이런 이야기를 해야지, 라고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다. 


아저씨, 일단 술을 마시지 말아봐요. 아저씨가 부끄러운 자신을 견디기 힘들어서 술을 마시는 건 알아요. 그래도 일단 마시지 말아봐요. 그러면 아저씨는 술을 마시지 않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일단 그것만으로도, 술 마시는 자신이 부끄러워서 술을 마시는 연쇄는 일단 끊을 수 있잖아요. 아저씨는 술을 마시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면서, 부끄럽지 않은 자신이 되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을 거예요. 아저씨가 술을 끊을 수 있는 건, 오직 아저씨 스스로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자신이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건 불가능한 목표에요. 왜냐하면 아저씨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없으니까. 아저씨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지금 술을 마시는 선택을 하지 않는 거예요. 지금 술을 마시지 않고, 술에 취하지 않은 자신을 보고,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부끄러운 자신이 부끄러워 술을 마시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 게 몇 개 쌓인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요? 그건 저도 몰라요. 하지만 아저씨도 모르잖아요. 아저씨는 그런 대견함을 쌓아 본 적이 없잖아요. 




술주정뱅이 아저씨에게 건네는 이야기를 듣고, 어린왕자가 내게 말한다. 


미안하다는 말과 잘못했다는 말에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일단은 그런 말을 해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어. 지금 마음 한 편으로, 자존감이 회복되면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지, 그러니까 낮은 자존감의 문제를 해결하자, 라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은 사실 의미가 없어. 왜냐하면 그건 네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이랑 비슷한 거니까. 너도 알겠지만 그런 결심만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아. 정말 그렇게 달라지고 싶다면, 네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보는 방법밖에는 없어. 너는 이제 미안하다는 말과 잘못했다는 말을 해, 그러면 당연히 힘들 거야, 잘못했다는 말을 할 때마다 너의 노력과 시도가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 거고, 네가 잘못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겠지. 하지만 그건 예상한 거잖아. 예전에는 그저 '잘못했다'라고 했을 뿐인데, 왜 그런 수치심과 절망감이 드는지 몰랐지만, 이젠 알잖아. 그리고 그 수치심과 절망감이 '잘못했다'는 말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네 안에 있는 잘못된 믿음 때문이라는 것도 알잖아. 그 잘못된 믿음을 바꾸고 싶다고 했지? 그러면 자꾸 자꾸 계속 계속 말해보렴. 그래서 그 잘못된 믿음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해. 그렇게 드러난 잘못된 믿음을 잘 관찰해보렴.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뱉은 말이 실제로 불러오는 결과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지켜보는 거야. 이 모든 과정이 힘겨울 때는 네가 이런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생각해. 이건 정말 대견한 일이잖아. 그리고 중요한 게 또 하나 있어. 너 대신 너를 사랑해 줄 사람을 찾지 마. 그 사랑은 네가 해야 해. 너 대신 너를 칭찬할 사람도 찾지 말고, 너 대신 너를 인정해 줄 사람도 찾지 마. 스스로 칭찬하고 스스로 인정해. 그래야 다른 사람의 칭찬이랑 인정도 잘 받아들일 수 있어. 미안하다는 말과 잘못했다는 말을 잘 할 수 있게 된다면 아마 이것도 될 거야. 칭찬과 인정을 받아 들이기 어려운 것 역시 너 스스로 잘못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그 이상한 믿음이 너를 향하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다 굴절시켜 버려서 그런 거거든. 




못 했던 걸 열심히 노력해서 할 수 있게 되었을 때의 뿌듯함이 좋아서 노력하며 살았다. 지금 그대로의 나로 사는 것보다는 조금 더 나아진 나로 살고 싶었으니까. 말하자면 그 노력의 시작은 언제나 '잘못된 나'에서 시작했던 것이다. 나의 노력은 못 하는 걸 그럭저럭 할 수 있게 되는 것의 의미를 갖고 있다. 아둥바둥 노력해야 중간은 할 수 있고, 어쨌든 그 중간 정도는 해냈다, 이제 나도 남처럼 살 수 있어, 라는 안도감을 붙잡고 나약하게 살았던 것 같다. 내가 해 왔던 노력의 치열함에 비하면 눈물 나도록 작은 결과지만, 이건 노력이 작았던 탓이 아니다. 같은 노력에 대해서도 난 충분히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원래도 남들만큼은 했지만 이젠 더 잘 하게 되었어! 라고. 그런 세상은 얼마나 달콤할까. 스스로 칭찬하고 스스로 뿌듯한 세상은 얼마나 환할까. 



https://youtu.be/x3K5eGWMFz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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