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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글레 Jul 20. 2021

그 때의 나를 믿을 수 있도록

시간의 대륙에서 성실하게 살아가기

큰 고민은 나중에 시간 내서 하겠다는 마음으로 나중에 해야 할 것들을 늘려가는 타입.   
큰 고민을 미뤄두기보다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결정함으로써 작은 최선을 늘려가는 타입. 

전자는, 마냥 이상적인 것에 취해 있을 확률이 높다. 지금 그걸 하기엔 이런 저런 상황이 되지 않으니까, 나중에 시간을 내서 하겠다며 임시변통으로 지금을 때운다. 그런 결정이 반복되다 보면 무엇이 남을까. 시간을 들여 해야 하는 일들의 목록, 주사위를 던지듯 임시변통으로 만들어낸 답안. 허겁지겁 정신없이 바쁘기만 했던 나.  

나는 전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전자에 해당할 거라 생각한다. 당장의 급한 불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나중에 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는 순간이 안락하니까. '나중'은 뭐랄까 일종의 시간의 섬이다. 현재와는 동떨어져 존재하는 섬 같은 시간, 시간의 섬. 그 섬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모든 시간의 추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그 자유로움 속에서 우리는 섬의 주인이 되어 시간을 지배한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일 수 있는 그 순간에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괜찮은 미래에 대해 생각하며 웃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시간의 섬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지금 이 곳에 있는 우리를 마주하는 대신, 저 쪽 어딘가에 존재할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을 상상함으로써 느끼는 것이다. 살다 보면 시간의 섬이 주는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하지만 늘 거기에서 살 수는 없는 노릇. 그렇다면 시간의 섬이 아닌, 시간의 대륙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 나는 문제 해결을 나중으로 미루는 것보다는, 문제와 마주친 바로 그 순간 그것을 진지하게 마주하는 것이 내 인생의 습관이 되기를 바란다. 시간을 들여 큰 고민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그 큰 고민의 결과로 도출한 것을 기계적으로 수행해 나가며 사는 인생보다는, 큰 고민의 무용함을 빨리 깨닫고 매 순간의 작은 고민과 갈림길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나가는 인생을 살고 싶다.  

이러이러하게 살아야지, 라고 해서 살아가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되고 싶은 나'가 또렷하게 존재한다. 머릿속에 그토록 또렷한 자신의 모습을 갖고 있지만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믿을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손에는 역사가 오래된 누적된 고민과, 그 고민의 현장에서 일단 주사위를 던져 해결한 임시변통책만 잔뜩 쌓여있기 때문이다. 닥치는 상황에 지지 않고 진지하게 마주하고 열심히 대응하며 살아 온 사람의 머릿속에는 '지금의 나'가 있다. '지금의 나'가 있는 사람은 매순간 열심히 고민하며 쌓아온 결정과 경험을 손에 쥐고 있다. 열심히 고민해서 답을 냈기 때문에, 그 답이 틀린 답이었을 때조차 남들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이들에게도 자신의 답이 정답일 거라는 확신은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의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때의 나를 믿는다'라는 말의 의미이다. 

그 때의 나를 믿을 수 있도록, 작은 최선을 조금씩 늘려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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