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어떤 장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둥글레 Aug 09. 2018

<걷기왕>, 만복이의 선택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무언가를 꿈꾸고 바라는 삶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목표 지향적인 삶에 대한 반감이랄까요. 열심히 노력해서 그 곳에 도달해봐야 어차피 또 다른 고민이 생길 거라고, 달리면서 꿈꿨던 건 분명 거기에 없을 거라고, 그런 것쯤은 직접 해보지 않아도 다 안다는 듯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치만 가끔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마음에 대해, 여러 가지 것들을 온힘을 다해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요. 만약 깨질 걸 알면서 계란으로 바위 치는 마음을 젊음이라 한다면요. 저는 한 순간도 젊었던 적이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항상 돌아올 때의 힘을 예비해서 달리고 있는 느낌이거든요.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울 정도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서 나도 모르게 손을 가슴 위에 얹고 숨을 골라야 할 정도로 전력질주 해 본 적이 없어요. 하기 싫은 것을 피하며 살다 보니 하고 싶은 것을 찾는 더듬이가 덜 자란 건 아닐까? 잠이 안 오는 밤에는 그런 생각을 하며 머리를 긁적이곤 해요. 그치만 아무리 머리를 긁적여도 없던 더듬이가 뿅 하고 생기지는 않더라고요. 




<걷기왕>이라는 영화를 봤어요. 신발을 고쳐 신고 죽을 힘을 다해야 할 것만 같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만복이는 그냥 뒤로 나자빠져요. 당연히 힘이 들어갈 거라 예상했던 장면에서 힘이 확 빠지는 바람에 두 주먹 꽉 쥐고 만복이를 응원하던 저까지 덩달아 우당탕 넘어졌어요.  

만복이 옆에는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있어요. 수지 선배는 목숨을 걸고 노력해서 무언가를 성취하는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지만, 짝꿍 지현이는 꿈이니 열정이니 그런 건 딱 질색인, 그저 적당히 사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수지 선배와 지현이는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만 '무언가'를 확고하게 바라본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비슷해요. 그치만 만복이는 딱히 바라보고 있는 곳이 없어요. 어딜 바라봐야겠다는 생각도, 어딜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도 없죠. 그런데 선생님은 자꾸 어딘가를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없냐고 물어보고, 주변 사람들은 이미 자기만의 어딘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만복이는 불안해질 수 밖에요. 

만약 트랙 위에 쓰러진 게 만복이가 아니라 수지 선배였다면 어땠을까요? 수지 선배라면 아마 입술에 피가 맺힐 정도로 이를 악물고 완주했을 거예요. 지현이라면.. 음, 애초에 이런 대회에 나오지 않았겠죠. 만복이는 뭐든 해야 할 것 같아서 입술 아니 발가락에 피가 맺힐 정도로 연습했어요. 그건 자신에게 소중한 것에 다가서려는 노력이라기보다는 막연한 불안함을 다스리기 위한 일종의 몸부림이었어요. 만복이의 꿈 속 결승선이 끝없이 계속되었던 것도 아마 그런 불안함이 표현된 것 아닐까요? 영문도 모른 채 일단 눈 앞의 결승선을 통과하기 위해 노력하고는 있지만 결승선을 통과한 다음엔 어떻게 될까. 계속되는 불안함을 다스리기 위해 다른 결승선을 향해 또 달려야 하는 건 아닐까. 


만복이는 트랙 위에 누워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경기를 계속 할 거냐 묻는 선생님에게 만복이는 헐렁한 웃음을 지으며 말해요. "아뇨. 그만 할래요." 만복이는 더 이상 달리지 않기로 합니다. 그리고는 머리 위로 한가하게 지나가는 비행기를 손가락 사진기에 담아요. 





돌아올 때의 힘을 예비해서 달리는 것도, 곧 죽을 것처럼 전력질주하는 것도, 전부 괜찮은 선택이에요. 그리고 중간에 마음이 바뀌면 얼마든 다시 선택을 해도 된답니다. 애초에 그냥 선택 같은 걸 하지 않은 채 사는 것도 괜찮아요. 어느 한 쪽을 택하지 않겠다는 것 역시 하나의 선택이니까요. 


그러니까 만복이는 만복이의 선택을 하면 돼요. 수지 선배처럼 노력의 화신이 될 필요도, 지현이처럼 현실주의자가 될 필요도 없어요. '만복이의 선택' 같은 게 어디 숨어 있을 리는 없으니 숨은 그림 찾기의 마인드로 주위를 둘러볼 필요는 없어요. 만복이가 만복이 마음에서 우러나온 선택을 하면, 그것이 바로 '만복이의 선택'입니다. 오지랖 넓은 사람들은 그래 가지고 어떻게 앞가림 하면서 살겠냐며 혀를 찰 지 몰라도, 친구들은 옆에서 그저 웃어줄 거예요. 손가락 사진기로 비행기 찍느라 바쁘던 만복이를 보고 피식 웃던 수지 선배나 지현이처럼요. 


그러니까 중요한 건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오답 속에 숨겨져 있는 정답을 고르려는 안쓰러운 노력은 불안을 키울 뿐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