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 마녀의 성장기, <마녀 배달부 키키>를 보고
<마녀 배달부 키키>를 봤다. 아주 아주 뒤늦게.
13살이 된 키키는 수행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 마녀 세계에서는 13살이 되면 1년동안 낯선 마을에서 혼자 살아야 하는 관습이 있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 일기예보를 주의깊게 듣던 키키는 날이 맑으리라는 일기예보를 듣고 떠나기로 마음 먹는다. 엄마의 빗자루, 아빠의 라디오, 고양이 지지와 함께 떠나는 키키. 동네 사람들은 그런 키키의 모험을 응원해준다. 엄마 아빠는 걱정스러워하면서도 키키의 출발을 응원해준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언제든 돌아와도 된다 하며. 그 따뜻한 분위기가 좋았다. 제 한 몸 챙겨보는 1년 여의 시간동안 아이는 훌쩍 자라겠지. 아이는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새로운 시작을 향해 발을 내딛고 어른들은 그러한 아이들의 성장을 응원해준다.
하늘을 날지 못하게 된 키키는 우르술라의 오두막에서 시간을 보낸다. 우르술라는 키키의 고민과 비슷한 고민을 넌지시 털어놓는다. 그림 그리는 게 너무 좋아 잠 자는 시간조차 아까워서 이렇게 오두막에 살며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때가 있다고. 뭔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키키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럼 그럴 땐 어떻게 하느냐 물었다. 그러자 우르술라는 말했다. "그럴 땐 그냥 그림 그리는 걸 관둬. 산책을 하거나 집에서 빈둥대거나 암튼 뭔가 다른 걸 해. 그렇게 지내다 보면 문득 그림이 그리고 싶어지더라구."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과연 좋은 해결책일까 싶은 생각이 드는 한편, 문제를 너무 깊이 응시하다가 거기에 잡아 먹히는 경우도 더러 있다는 점에서 우르술라의 회피 역시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 없이 문제를 응시하는 시간도, 두렵지 않다는 듯 일부러 웃어보는 시간도, 두려움을 잊으려 괜히 먼 산을 보며 회피하는 시간도, 모두 다 필요한 게 아닐까, 결과적으로 그 시간들이 내게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것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나 완전한 치유 같은 것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키키가 다시 날아오르는 장면을 보며, 나는 자연스레 키키와 지지의 대화가 다시 시작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서 지지는 그저 '야옹'이라 할 뿐이다. 헌데 그런 지지를 바라보는 키키의 표정이 무척 편안해보였다. 지지가 왜 말을 잃어버린 것이냐는 질문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지의 목소리는 원래 키키 자신의 목소리였습니다. 키키가 성장했기 때문에 지지의 목소리가 필요없게 된 것이죠. 변한 것은 지지가 아니라 키키입니다."
어린 마녀들은 고양이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낯선 동네에 스며드는 과정은 고독하고 또 고단하다. 그래서 그들에겐 고양이가 필요하다. 어린 그녀들은 고양이와 이야기하며 기운을 차린다. 그건 꼬마들의 인형놀이와도 비슷하다. 꼬마들은 말 못하는 인형을 데리고 이야기를 만들며 논다. 그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전능하고 또 안전하다. 모든 상황과 사건이 그들의 통제 하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인형놀이만 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 꼬마들은 자기와 비슷한, 하지만 자기와는 다른, 살아 움직이는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조금씩 자란다.
할머니가 고생하며 만든 파이를 애써 전달해주었더니, 이미 다 젖지 않았냐고, 게다가 자기는 할머니의 파이를 싫어한다 말한다. 제 또래로 보이는 그 손녀의 뾰로퉁한 얼굴을 보는 게 키키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았으니까. 할머니의 마음을 제대로 배달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기운이 빠졌을 것이고, 예쁜 옷을 입고 파티 중인 그들과 비에 흠뻑 젖은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비교되어 심란했을 것이다. 일을 하느라 모처럼 초대 받은 파티에도 가지 못하게 되어 울고 싶은 기분도 들었을 테지. 그래서일까 키키는 그 날 밤 감기를 심하게 앓았다. 제 마음 같지 않은 사람 그리고 세상을 마주할 때마다 키키는 풀이 죽는다.
하지만 제 마음 같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되려 기운을 얻을 때도 있다. 호탕하게 웃으며 키키를 돌봐주는 빵집 아주머니, 과묵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선물로 키키를 기쁘게 하는 빵집 아저씨, 자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며 자신의 인생에서 발견한 해결책을 이야기해주는 우르술라, ... 그들은 키키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키키에게 도움이 된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키키와는 다른 종류의 샘이 고여 있다. 그들이 가진 각기 다른 빛깔과 맛을 가진 샘물을 맛보며 키키는 조금씩 자란다.
제 안의 언어를 반복하며 안전하게 하루를 꾸려 가던 키키는 그렇게 조금씩 타인과 소통하며 마을의 일원이 되어간다. 날카롭게 부딪치는 마음을 발견할 때면 좀 울적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키키는 잘 지내고 있다. 이제는 거기에 좋은 마음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 키키가 다른 이들의 마음과 교류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게 되자 지지는 그제서야 키키의 말을 내려두고 고양이의 말을 되찾는다. 이 정도면 행복하게 끝난 인형놀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키키가 집에 보낸 편지도 기억에 남는다. 키키는 '전 여기서 굉장히 잘 지내고 있어요'랄지 '이 곳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답니다'라는 문장 대신에 '울적해 질 때도 있지만, 저는 이 마을이 좋아요'라는 문장을 썼다. 아, 이것이야말로 '미워도 다시 한 번' 아닌가! 허무에 미끄러지지 않으려는 노력 역시 중요하지만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미끄러지는 것 자체를 피할 수는 없다. 많든 적든 살다보면 어쨌든 미끄러질 수밖에 없으니까. 하여, 미끄러지지 않으려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미끄러진 다음 아픈 무릎이나 괜한 민망함을 툭툭 털어내고 다시 한 번 일어나는 태도일 것이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은 다시 한 번 일어나려는 마음을 응원하는 슬로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