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코드명 : 과소평가

知彼知己 百戰不殆

by 둥글레


B. 과소평가


내가 예전에 즐겨 듣던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 말이야. 일주일에 한 번 영화 평론가가 게스트로 나와서 지나간 명작들을 소개해주는 코너가 있었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가끔은 흥분한 목소리로 자기가 사랑하는 영화들을 소개해주는 게 듣기 좋아서 나도 즐겨 듣던 코너였거든. 하루는 진행자가 엽서를 하나 읽어 줬어. 코너를 시작하기 전에 평론가님께 꼭 읽어 드리고 싶은 엽서가 있다면서 말야.


냉동탑차를 운전하는 청취자가 보낸 그 엽서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평론가에 대한 감사로 가득 차 있었어. 사는 게 팍팍해서 영화 같은 건 취미도 못 붙이고 살았는데, 어느 날 우연히 듣고 난 후로는 꼬박 꼬박 챙겨 듣는대. 한밤 중에 캄캄한 국도를 달리며 영화 소개를 듣다 보면 어두운 도로에 장면들이 저절로 그려지는데 자기는 그걸 보면서 매번 결심한다는 거야. 이번 쉬는 날에는 꼭 저 영화를 봐야지, 내가 상상한 장면과 실제 장면이 어떻게 같고 또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봐야지. 하지만 정작 쉬는 날이 다가오면 밀린 잠을 보충하느라 바빠서 리모콘을 손에 쥔 채 잠이 들기 일쑤래. 그러다 보니 영화 보는 게 취미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당신이 해 주는 영화 소개를 듣는 것만큼은 자기 취미라고, 그것만큼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는 문장이 쓰여 있었어. 일단 감사드립니다, 로 시작한 그 엽서는 정말 감사합니다, 로 끝이 나더라.


진행자는 기쁜 목소리로 그 엽서를 꼼꼼하게 읽어줬어.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그 평론가는 하나도 기쁘지 않은 것 같더라. 웃음기 없는 목소리로 그러는 거야.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 뒤로 무슨 말이 더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들려오는 건 그저 '아닙니다'였어. 평론가는 그 엽서에 구구절절 쓰여 있는 감사의 표현을 완곡하게 거절하며 완고하게 돌려보냈거든. 뭐, 그게 그 사람의 성격인 거겠지. 몸에 밴 겸손 같은 걸지도 몰라. 그치만 약간 씁쓸했어. 뭔가 커다란 벽에 부딪친 것 같았거든.


진행자도 그런 걸 느꼈던 걸까? 평론가에게 다른 피드백을 더 끌어내기 위해 애쓰는 눈치였어. 평론가도 곤란했는지 마침내 '아닙니다'가 아닌 다른 반응을 보였어. "영화는 감독이 잘 만든 거죠. 저는 정말 한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고마워하시지 않아도 돼요." 나는 엽서를 보낸 청취자를 생각했어. 그 사람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한밤 중의 어두운 도로 위에서 이 방송을 듣고 있을 테지. 이 코너를 듣는 게 취미인 사람이니까. 진행자가 자기 엽서를 한 줄도 빼먹지 않고 모두 읽어 주었을 때는 무척 기뻤을 거야. 그런데 지금은 어떤 기분일까? 내가 만약 그 청취자였다면 마음이 추웠을 것 같아. 냉동탑차의 내부에 갇힌 것처럼 추웠을 것 같아.


평론가가 원망스러운 한편으로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갔어. 나도 고맙다는 말을 불편해하며 살아왔으니까 말이야. 나는 칭찬을 받으면 놀리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미안하다는 말에는 괜찮다는 말이 곧바로 튀어나오지만, 고맙다는 말에는 도대체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잘 모르겠더라구. 그래서 나는 곤란해하거나, 말을 돌리거나, 머리를 긁적이면서 그 상황을 대충 얼버무려왔어. 어쩌면 말이야. 그 평론가가 그렇게까지 강한 표현을 사용한 건 본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뜨거운 감사의 마음이라서 당황한 탓에 그랬던 걸지도 몰라. 자기는 그저 '감사합니다. 잘 듣고 있어요.'정도의 인사만 기대했는데, 갑작스레 너무 장황하고 뜨거운 인사를 받게 된 거잖아. 그 무게와 온도를 감당할 수 없었던 거 아닐까?


자신에게는 별 거 아닌 것일 지라도 상대에게는 엄청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거잖아. 그런데 겸손이 지나치면 '뭐 내가 그리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상대의 감정을 부정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을까? 그러니까 그 평론가 말이야. '고마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는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있었을까? '잘 들어주시니 오히려 제가 고맙습니다.'라거나 '이렇게 열심히 들어주시는 분이 계시다니.. 조금 더 힘내야겠네요.'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던 걸까? 어째서 '나는 그 정도로 대단한 일을 한 적이 없다.'라는.. 누구도 묻지 않았고, 누구도 기뻐하지 않을 해명을 하느라 귀한 시간을 써버린 걸까? 나는 그게 평론가의 마음 속에 살고 있는 '과소평가'씨의 소행이라고 생각해.


휘어진 마음에 둥지를 트는 '과소평가'씨의 특징을 들자면 타인에게는 너그럽지만 자기에게는 가혹한 거야. 타인의 성취는 대단하게 평가하면서 자신의 성취는 별 거 아닌 것으로 치부하지. 만약에 회사 동료가 업무와 공부를 병행해서 외국어능력시험에 합격했다면 '과소평가'씨는 박수를 치며 축하해 줄 거야. "일을 하면서 동시에 공부도 하다니 정말 대단해!" 그럼 회사 동료는 이렇게 말할 지도 몰라. "대단할 것도 없어. 가까스로 합격했는걸." 그럼 '과소평가'씨는 이렇게 말하겠지. "어쨌든 합격이잖아? 어쩌면 그게 제일 효율 좋은 합격일 지도 모르고 말이야!" 하지만 자기 자신이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말이야. '과소평가'씨는 전혀 다르게 반응할 거야. '아, 이거 한답시고 그간 업무도 제대로 못했는데 점수가 이게 뭐야. 턱걸이했네. 창피해서 주변에 말도 못하겠다. 그러고보니 옆팀 사람은 외국어능력시험 말고도 다른 자격증도 두 세 개 더 땄다는데, ...'


'과소평가'씨는 이름 때문에 무척 왜소한 체구일 거라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건장해.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가진 크고 거창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신을 학대하는 게 '과소평가'씨의 특징이거든. '과소평가'씨로부터 몇 대 얻어 맞으면 마음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구? 나도 맨날 얻어 맞으면서 살거든. 그래, 맞아. 내 마음 속에도 '과소평가'씨가 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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