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다, 이탈리아 01편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제국의 번영을 보여주는 이 말은 이제는 역사의 한 줄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인식했던 기반시설의 중요성은 오늘날의 도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도로를 깔고, 수로를 건설하며 정복해간 로마 군단은 그대로 식민지의 기반시설이 되어 전보다 편리한 생활을 가능하게 헀을 것이다. 도로는 군대의 이동시간을 줄이는데도 기여하지만, 전쟁상황이 아니라면 사람과 상품의 이동 시간도 줄여준다.
상품과 사람이 집중되는 도시에 가장 필요한 공공공간이 도로일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오늘날 우리의 도시는 시민들의 쾌적한 삶을 위해 공원, 광장 등의 공공공간을 확보하는데 많은 노력을 쏟고 있지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공공공간의 물리적 확보라는 애초부터 해결이 어려운 과제에 매달려 있기 보다는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그 옛날 로마의 길이 궁금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길을 잘 보존하며 사용하고 있는 그 후손들의 삶이 궁금했다.
딱딱한 빌딩들 사이, 콜로세움으로 가는 도중 모퉁이를 돌아선 순간, 자동차와 사람들만 있을 것 같은 건조한 골목길에 시장이 펼쳐져 있었다. 로마는 자동차와 사람이 자유롭게 길을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통행이 주가 되는 길위에서 시장은 신선한 모습이었다.
조금은 이질적인 조합인 까닭에 5일장처럼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바닥에 고정된 정육점 매대와 자연스럽게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바닥을 덮고 있는 매끄럽게 닳아버린 돌에서 시간이 느껴졌다. 그 오랜시간이 모두 시장으로 기능하지는 않았겠지만, 오랫동안 '길'이라는 공간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법을 익힌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풍경이 아닐까?
문득 우리나라의 길이 떠올랐다. 노점들이 즐비한 거리는 의례 통행이 불편하다는 항의가 쌓여간다. 심지어, 노점을 정부에서 규격화시키고, 설치되는 장소도 지정해 놓음으로써 길을 걷는 사람들의 불편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참 대비되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길을 차지하고 있는 상점 덕분에 길을 이용하는 사람이 불편해질 수 있다는 것, 심지어 이곳은 차도를 막고 있다는 것, 우리의 기준으로 바라보면 분명히 꽤 불편해 보인다. 하지만 그 불편함의 기준은 무엇일까? 어떤 이에게 불편한 것이 어떤 이에게는 편리한 것은 아닐까?
우연히 마주친 길 위의 시장에서 떠오른 질문들이 걷는 내내 머리 속을 맴돌았다.
※ 이 글은 건축종합플랫폼인 '에이플래폼'에 함께 발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