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사장의 어리바리 공방 운영
잘못된 만남
내가 얼마나 준비 안 된 공방의 사장이었는지, 처음으로 큰 금액을 결제하는 고객님을 만났을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45만 원을 일시불로 결제하겠다는 손님께 두 번, 세 번 되물으며 오히려 그분을 당황스럽게 했다. 물론 지금의 내가 봤을 때, 지난날의 내 부족함이 보였다는 뜻이다. 그때로서는 커리큘럼도 여러 가지 개발하고 수강생의 취향에 맞춰 재료를 아낌없이 쓰는 등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의 모든 최선을 다했음에도 왜인지 그 수강생은 연장 결제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다음 수강생도, 그다음 수강생도 그랬다. 그놈의 연장 결제. 도대체 어떻게 해야 연장 결제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캘리그래피를 수강하겠다고 온 고객님들은 도무지 연장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보아왔던 다른 공방은 연장 수강을 기본으로 한다. 기본 3개월에서 때로는 몇 년이 넘는 기간 동안 글씨를 배우러 다니며 가족 같은 분위기를 형성하곤 했는데 왜 내 공방에서는 그게 안 될까?
나는 바보처럼 '글씨'라는 주제를 지키지 못하고 '재미'라는 요소로 눈을 돌려서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했다. 재미있고 독특한 공방을 만들면 공방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만난 것이 '레진아트'다. 레진아트를 하시는 선생님들을 보면 정말 눈이 돌아갈 정도로 예쁜 것들을 잘 만드신다. 그 반짝임에 매료되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한테 필요한 것은 공예가 아니었다는 걸 그때는 전혀 몰랐다. 1년간 레진아트와 알코올잉크아트를 캘리그래피에 접목시켜보고자 엄청난 노력을 했다. 그런데 애초부터 레진아트와 알코올잉크아트는 매끄러운 표면이 필요한 공예였다. 종이에 먹을, 잉크를 흡수시켜서 글씨를 만들어 내는 캘리그래피와는 결이 전혀 맞지 않았다. 어떻게든 개발을 하기 위해 쓴 재료비만 세 자릿수가 넘는다. 다른 공예를 접목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내 공방은 더 위기를 맞았다. 게다가 마스크도 쓰지 않고 2액형 레진 대량 작업을 하다 보니 눈도 많이 상하고 자다가도 찌르는 두통에 시달렸다. 결국 나에게 필요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고 레진아트와 알코올잉크아트를 접었다. 내가 겪은 가장 큰 시행착오였다.
글씨, 또다시 글씨.
시행착오를 겪은 후 나는 다시 글씨로 돌아왔다. 차분히 내 글씨를 돌아보았다. 나라면 내 글씨를 배우러 오고 싶을까? 한 달 커리큘럼을 배우고 나서 다시 오고 싶을까? 냉정하고 차분하게 질문을 하고 돌아봤다. 결국 내가 내린 답은 재수강 안 한다, 였다.
우선, 내 글씨인데 스스로가 자신이 없었다. 100퍼센트 내 마음에 드는 글씨체가 아니다 보니 가르칠 때도 머뭇거리게 되고 글씨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감으로 이쯤에서 포인트를 주고, 이쯤에서는 깔끔하게 쓰고... 하다 보니 남을 가르칠 때 어떤 기준이 있는 게 아니었다. 글씨체도 매번 바뀌었다. 동그란 글씨체, 서예스러운 글씨체, 등등 기준을 정해놓지 않으니 정말 어려웠다. 수강생들은 내가 어떤 글씨를 배울 수 있으며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 분명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너무 '만들기'에 집중하기도 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수강생들이 원했던 것은 종이와 펜만 있어도 멋진 글씨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었을 텐데, 캘리그래피를 너무 공예스럽게 접근하다 보니 원하는 것과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생각의 틀을 깨기가 어려워서 한 동안은 글씨 쓰기를 싫어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캘리그래피보다는 글씨 교정과 독서 논술을 접목해서 학원을 차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그러나 또 초기 비용이 발생하고 업장을 이전해야 하는 등 또 다른 시행착오가 선명히 그려졌다. 손익분기점까지 가는 데에만 몇 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이 내가 원하는 삶인지도 생각해야 했다. 분명히 아이를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원했는데 학원을 차리게 되면 밤낮없이 일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불가능한 일이다.
다시 글씨로 돌아와 정말 배우고 싶은 글씨체를 찾아 서울에서 세종까지 글씨를 배우러 다녔다. 거리가 멀어서 엄두도 못 내고 있었는데 우선순위를 글씨에 두고 내 공방의 단점이 확실해지니, 안 갈 이유가 없었다. 가장 먼저 가야만 하는 곳이었다. 마음에 쏙 드는 글씨체를 배우면서 바로 수업에 접목했더니 지금은 4개월째 수강을 하면서 공방을 이전한 지금까지도 함께 해주는 수강생이 계신다. 또 신규 수강생이 문의가 와도 자신 있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정도는 하실 수 있을 거라고 믿음직스럽게 이끌어주는, 온전히 글씨에 집중하는 공방으로 변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지금의 나는 자신감이 넘친다. 글씨 가르쳐 주는 곳, 이라는 이름에 딱 맞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죽이지 못한다면 나는 더 강해질 거야
이곳에 적을 수 없는 더 많은 실수가 있다. 큰 수술 후 임신과 출산을 겪었기에 몸 회복이 제대로 되지 않아 많이 힘들기도 하고 수강생 분들께 오히려 피해를 끼치기도 했다. 때로는 한 걸음 옮길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 다니는 테니스 레슨 덕분에 내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생각할 정도다. 지난 1년은 죽지 않기 위해 노력한 한 해였다.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 약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업장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스트레스와 따라주지 않는 체력으로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지만, 늘 그렇듯, 어떤 노래 가사처럼,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처음부터 내가 홈공방을 열었다면 어땠을까? 더 어리바리하게 행동하다가 결국 폐업을 했을 것이다. 월세를 내기 위한 치열한 고민과 공부가 있었기에 지금 홈공방을 당당하고 여유 있게 운영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일할 곳이 없었다면 나는 더 바닥으로 무너졌을 것이다. 그게 너무 감사하다. 2년 가까이 공방을 억지로 끌어가면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어떤 것인지도 확실히 깨달았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이었지만 죽지 않고 살았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살기 위해 꿈틀거릴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