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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無도움 챌린지

아무 도움 없이 육아하고 자영업 하기

by 그로브제이

오늘도 혼자 버텨야 한다


사정상 시댁과 친정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낳은 아이이니 내가 책임지는 게 맞기도 하겠고, 여러 가지 이유로 혼자 일하고 육아하기를 택했다. 남편은 사내 주요 부서로 이동을 하게 되면서 야근하는 날, 주말에 일하는 날이 많아졌다. 빨래와 분리수거 등을 도맡아 주기는 했지만 아이를 맡아 나를 도와주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한 달에 벌어오는 돈의 액수만 봐도 내가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게 당연했다. 처음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혼하고 애를 낳았을 뿐이지 20대의 내가 하던 일의 양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약해진 내 몸과 체력은 전혀 계산하지 못했다.


할 수 있겠지, 는 곧 해내야 한다, 고 바뀌었고 결국에는 아무 생각도 남지 않은 좀비처럼 변해갔다. 마치 눈앞에 먹을 것을 찾은 괴물처럼 오직 해내야 할 것들만 보면서 쉬지 않고 달린 것 같다. 어떤 생각을 할 새도 없었다. 아이가 아파서 어린이집에 갈 수 없는 날이면 아픈 아이를 데리고 함께 출근을 해서 밥을 먹이고 수업을 했다. 남편이 갑작스럽게 야근하는 날에 저녁 수업이 겹치면 그때도 아이를 데리고 출근해야 했다. 이제 막 만 2살을 넘긴 아이는 잘 시간을 훨씬 넘긴 때까지 아이패드 화면에 정신을 내주었고, 까만 밤 함께 차를 타고 퇴근할 때면 까무룩 잠이 들었다. 카시트에 앉은 그 작은 몸에서 고단함이 새어 나왔다. 현실적으로 나는 저녁 수업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저녁 수업을 하지 않으면 업장을 유지할 수도 없었다.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無도움의 하루는 끝이 없다


무언가를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보통 자기 관리가 필수다. 몸매나 외향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깔끔하고 단정한 인상이 중요할 것이다. 창피하지만 나는 가끔 샤워도 하지 못하고 출근을 할 때도 있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출근을 하려면 시간 맞추기가 빠듯했고 체력이 따라주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10분만 더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게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아침마다 옷 입자는 나를 피해 숨바꼭질 놀이를 해가며 반항했다. 결국 폭발해서 '경찰 아저씨한테 엄마가 혼났으면 좋겠어?' 하며 매번 소리를 지르고서야 아침 전쟁은 끝이 났다. 그 당시 경찰 한 분이 글씨 교정을 수강하고 계셨기에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겁에 질린 아이의 모습이 종종 떠올라 미안해지기도 한다. 한겨울에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출근을 하고 나면 거울 속에 엉망진창인 내가 보인다. 겨우 공방에서 세수와 양치를 하고 로션하나 바르지 못한 때도 있다.


수업이 없는 오후에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할 일은 산더미 같다. 마케팅 강의도 들어야 하고, 강의를 바탕으로 홍보글도 몇 가지 저장해 두어야 한다. 사진을 추려야 하고 편집도 해야 한다. SNS에 올릴 작품을 연습하고 만들어야 하고 또 어느 날은 커리큘럼을 짜거나 상담을 해야 하는 날도 있다. 매입매출을 기록해야 하고 국세청을 들락거리며 자료를 찾거나 뭔가를 신청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은행 업무를 봐야 하는 날도 있다. 혹은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해야 하거나 집안의 업무까지 더해지는 날도 적지 않았다. 이 모든 일을 다섯 시 안에 해내야 했다. 맞벌이를 하느라 늦게까지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부부도 많다고 들었지만, 내 주변에는 온통 4시에 맞춰 아이를 픽업하러 오는 엄마들 뿐이었다. 퇴근이 늦는 날엔 살짝 어둡고 조용한 어린이집에서 내 아이를 마지막으로 데려 나와야 했는데, 내가 미안한 것과는 별개로 엄마가 와서 마냥 반가운 천진한 얼굴이 가끔 심장을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아이는 부모의 부족함 속에서 성장한다고는 하지만 나같이 너무 많이 부족한 사람이 엄마라서 매일 미안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한동안 밑반찬은 사다 먹었고, 국이나 조금 끓이는 정도였다. 이 작은 집안일도 하고 나면 너무 지쳤다. 아이와 저녁을 먹고 씻기고 하다 보면 남편이 왔고 샤워만 후다닥 한 뒤 아이를 맡아주기도 했다. 그나마 남편이 칼같이 퇴근하고 내가 저녁 수업이 없는 날의 일상이다. 아이를 재우고 나면 오후에 못다 한 일을 하는 날도 있고 기절하듯 잠드는 날도 있었다. 그나마도 월세날이 다가오면 아무리 피곤해도 근심걱정에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날이 밝아오면 또다시 무지막지한 날의 시작이라서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쉴 수 있게 조금만 다쳤으면 좋겠다. 하는 이상한 생각이 드는 날도 많았다. 도움 없이 1년을, 나는 이렇게 살았다. 살았다고 해야 할까 버텼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영혼을 팔아버렸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렇게 시간을 지나왔다.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나 혼자 버티는 삶이 정말 정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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