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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WT Oct 02. 2023

고마웠어 텃밭아.

식자재가드너로써의 마지막 글

어느새 삶의 일부분이 된 텃밭 루틴


매주 1-2회씩 텃밭을 오고 가며 밭일을 해온지 어느덧 일 년 반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밭일에 비읍도 모르고 맨땅에 헤딩을 하던 그때가 어제 같은데 말이죠.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네요.


전문가에게 특별한 배움을 받고 시작한 농사가 아니기에, 제가 하는 밭일은 온전히 제가 만든 특별한 루틴이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 다른 분들께서는 또 어떤 루틴을 가지고 계실지 모르지만, 저만의 루틴은 이렇습니다.


햇빛이 비교적 적은 아침에 출발을 합니다.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보내고, 밭일 필수품들을 챙겨 차를 탑니다. 차로 약 20분이 안되게 달리면, 아파트는 온데간데없는 고요한 시골느낌이 가득한 텃밭에 도착합니다. 차에서 내려 밭일에 임하기 전, 저는 완전무장을 하죠. 행여라 벌레에 물릴까 무릎까지 닿을만한 긴 양말을 신고, 장화를 신습니다. 흙은 얼마든지 묻어도 되는 간편한 복장에, 햇볕으로부터 뒷목까지 보호해 줄 텃밭용 모자를 씁니다. 때로는 모기와 벌레들로부터 절 보호해 줄 팔토시도 끼고, 목장갑도 착용하죠. 마지막으로 선크림을 얼굴에 발라주고, 집에서 내려온 시원한 커피를 가지고 일터로 향합니다.


밭일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물들


밭에서 하는 활동은 제게 크게 3가지 활동으로 나뉩니다.


첫째. 관찰하기


저는 텃밭에 가면 관찰부터 합니다. 그동안 내가 심은 농작물들이 얼마나 컸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오늘 수확할 농작물이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죠. 밭을 순찰하듯 둘러보면서, 브런치에 올릴만한 재미있는 내용이 생각나면 폰으로 사진도 찍어 저장합니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관찰을 할 때마다 브런치에 나누고 싶은 내용의 에피소드들이 매번 생긴다는 것이죠. 같은 장소에서 매번 반복하는 농사이지만, 계절마다 다르고 농작물마다 가지고 있는 스토리가 다르기 때문에, 저는 글을 쓰기 위한 소재가 한 번도 고갈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텃밭은 매일매일 커가고, 성장하며, 변화하는 곳이니까요.


둘째. 물 주기


'관찰'이 저 자신의 기쁨을 위한 시간이라면, 물 주기는 우리 농작물들을 위한 시간입니다. 매일같이 찾아오지 못하는 미안함에, 올 때만이라도 물은 듬뿍 주는 편이죠. 아직 관수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밭이라서, 수작업으로 물을 퍼서 물조리개로 뿌려주는 '땀'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개인적으로 밭일 중에서 물 주기가 가장 쉽지 않은 부분이었습니다. 물이 어찌나 무거운지, 들고 나르고 뿌리고를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지쳐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죠. 그래서 비가 많이 오는 장마시즌이면 제 팔은 조금 편안히 쉴 수 있었습니다.


셋째. 수확하기


텃밭 가꾸기의 가장 빛나는 시간은 작물을 수확하는 시간입니다. 그동안 피땀 흘려가며 손수 키워온 농작물을 수확하는 기쁨은 '뿌듯하다'라는 단어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큰 기쁨을 제게 주었습니다. 올 때는 빈손으로 왔지만, 갈 때는 제 양손 가득 텃밭이 주는 선물을 가득 담아 집에 가게 되었죠. 집에서 그걸 재료 삼아 요리도 하고, 이웃과 나누기도 하고요. 수확의 기쁨은 어느새 두 배 세배 커져있었습니다.



고마웠어 텃밭아.


초창기 텃밭 가꾸기는 아이들을 위한 주말 농장을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저만의 힐링 공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출산과 함께 맞닥뜨린 실직. 그 후 육아라는 똑같은 쳇바퀴같은 하루에 제 삶은 지쳐가셨습니다. 하지만 텃밭 가꾸기를 시작하면서 계절의 변화, 시간의 흐름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가기 시작했죠.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고, 이 작은 존재들이 성장하고 열매를 맺는 그 과정을 지켜보다보면, 제 하루하루 역시 무언가 특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일을 다니며 맞벌이를 해서, 집에 돈을 보태는 게 그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고 제가 지켜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집안일이나, 먹거리는 돈이면 다 해결되는 세상 아닌가? 결국 돈만 벌면 나는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고,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이 어린아이들을 어린이집에 오래 맡기고 일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강박에 사로 잡혀 살아왔습니다. 텃밭 농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하지만 텃밭과 함께한 시간을 통해서 세상에는 돈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식사나 간단한 먹거리는 돈이면 물론 다 해결됩니다. 손가락 몇 번 까딱거리면 집으로 모든 것이 배달되는 시대가 아닌가요. 하지만 그냥 먹는다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식사라는 것을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함께 식사를 하고 뒷정리는 하는 과정까지 크게 본다면 시야가 달라집니다. 어찌 보면 이 긴 행위 안에서 많은 것들은 느끼고 즐길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텃밭 농사를 통해서 식자재를 자급자족하는 행위 역시 돈에서는 찾을 수 없는 색다른 의미와 기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의 텃밭 농사 경험을 구직 이력서에 적기는 민망하지만, 제 '인생이력서'에는 화려하게 한 줄 적을 수 있는 값진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텃밭과 함께 잊지 못할 추억들을 가득 만들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셋째의 출산과 함께 외출이 어려운 엄마의 자리로 돌아와 버렸기 때문이죠. 아이를 어디 맡기고 개인적인 시간이 생길 수 있는 시기가 되기 전까지, 텃밭은 잠시 추억 한편으로 밀어 넣고 제 인생의 큰 부분이 될 셋째 육아에 에너지를 쏟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미숙하지만 제 텃밭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신 분들께 이 글을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는 텃밭 농사를 짓지 못하는 관계로, 삼 남매 육아일기를 주제로 이 브런치를 이어갈까 합니다. 혹시라도 육아라는 주제가 맞지 않은신 분들은 구독을 취소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남아서 앞으로 이어갈 삼 남매 육아일기를 봐주시면 물론 더 좋고요! 요즘 시대에는 흔치 않은 삼 남매(만 4살, 만 2살, 만 0살)의 쉴 틈 없는 육아스토리로 곧 다시 찾아뵐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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