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사고의 너비를 결정한다는 말은 과학적인 근거를 가진 선언이다. 미네소타 대학교의 한 연구는 천장의 높이가 30cm 높아질 때마다 인간의 창의성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냈다. 내가 경북의대 칠곡 캠퍼스 의생명과학관 2호관 1층, TBL(Team-Based Learning) 실을 고집하는 이유는 바로 그 물리적 높이가 주는 심리적 해방감에 있다. 거대한 수직의 공간은 정답이 정해진 의학 서적의 압박으로부터 내 사고를 잠시나마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본래 이곳은 치열한 토론과 논박이 오가는 전쟁터 같은 곳이다. 하지만 수업이 끝난 오후, 정적만이 남은 TBL 실은 나만의 밀실이자 광장이 된다. 사방을 압도하는 통유리 너머로 대구 지하철 3호선이 지나간다. 도로 위로 솟은 레일을 따라 유영하는 노란색 모노레일. 그것은 이곳 '칠곡경대병원역'에서 긴 여정을 마친다. 수도권의 거대하고 어두운 지하 터널에 익숙했던 내게, 하늘 위를 떠다니는 이 지상철의 풍경은 마치 다른 행성의 기록화처럼 이색적이다.
전철이 들어온다. 선로의 끝에 다다른 기계가 숨을 고르며 멈춰 선다. 잠시 후, 그것은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간다. 그 무의미하고도 규칙적인 왕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왜 일본에 그토록 많은 '철도 덕후(鐵道宅)'들이 존재하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그들은 아마 목적지에 도착하는 성취보다, 정해진 궤도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순항하는 '질서의 미학'에 매료된 것이리라. 혼돈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선로 위를 달리는 기차의 뒷모습은 기이한 평온을 선사한다.
오후 2시, 유리창을 통과한 햇빛이 넓은 책상 위로 가루처럼 흩어진다. 광합성을 하는 식물도 아닌데, 그 따스함이 피부에 닿으면 묘한 안도감이 차오른다. 돌이켜보면 지구상의 모든 에너지는 결국 태양이라는 거대한 화로로부터 온다. 억겁의 시간 전,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이 출현하지 않았더라면 인간이라는 정교한 유기체도, 지금 내가 씨름하고 있는 이 방대한 의학 지식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생명을 다루는 의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몸이라는 작은 별 속에 저장된 태양의 흔적을 추적하는 일과 같다. 우리는 모두 태양 에너지를 빌려 잠시 숨을 쉬고 있는 존재들인 셈이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여 책을 펼친다. 종점에 멈춰 선 전철이 다시 에너지를 채워 출발하듯, 나 역시 이 정지된 빛의 공간에서 다음 페이지로 나아갈 동력을 얻는다.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 거북이처럼, 나는 나만의 궤도를 따라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