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의 정석은 육아웹툰 <큼이네집> 과 함께합니다.
미니멀리즘 이지만
장난감은 버릴 수 없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는 장난감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짐이다.
심지어 꽤나 인테리어를 하거나 혹은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엄마에게도 절대로 쉽게 없앨 수 없는 것이 바로 아이들의 장난감이다. 개인적으로 우리집도 컵이 5개밖에 없을 정도로 간소한 살림을 추구하는 집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집에서 상대적으로 제일 많은 짐은 전부다 아이것이다.
하나 둘 사주고 받아오고 하다보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양이 많아지기도 하고 좀 정리하고 버릴까 하다가도 아이가 필요로 할까봐 쉽게 버리지도 못한다. 또 이제는 정말 그만 사야지 하지만, 아이가 잘 놀것 같으면서도 교육적인 장난감을 발견하면 흔들리기도 하고, 아이가 새로운 것을 찾고 사달라고 표현할 수록 거절하기도 쉽지 않다.
주변 엄마들은 내가 아이들 놀이와 관련된 일을 하니, 내가 장난감에 대해서 잘 안다고 흔히 생각한다. 또 우리집에는 그 어느곳보다 더 다양하고 좋은 장난감과 교구가 많을 것 같다고 이야기도 하신다. 우리집도 다른 집처럼 전체 살림의 비중에서 아이의 장난감이 차지 하는 정도가 크고, 치료용도로 아가씨일때부터 구입해둔 장난감들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자세히 보면 다른 집보다 장난감이 정말 적다.
사실 내가 일하는 상담센터들의 놀이치료실 조차도 그렇게 많고 다양한 장난감이 있지 않다.
처음에 센터에 오는 엄마들은 생각보다 너무 간소한 놀이치료실에 놀라기도 하신다.
왜 그럴까?
사실, 아이가 잘 노는데 있어 장난감은 그렇게 필수적인 요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러려고 장난감을
사주었나 자괴감 들어...
커다란 주방놀이는 꼭 사줘야 하는 걸까?
사실 고백하는데, 아이가 돌이 지날 무렵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주방놀이를 사줄 것인가.
아이있는 집이라면 당연히 들여놓는 것 중에 하나가 주방놀이인데 사실 그리 저렴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워낙 소꿉놀이를 좋아하기에 하나 사줄까 라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아이가 종이벽돌을 쌓아놓고 냄비에 점토와 폼폼이를 넣어 요리를 하는 모습을 본 후, 주방놀이를 사지 않기로 결정했었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와 집이 좁은것도 결정에 한 몫 하기는 했다.
물론, 주방놀이를 사준 엄마들을 비난하는 것은 절대, 절대 아니다. 괜찮다면 사주는 것도 좋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주방놀이세트를 사준다고 해서 주방놀이를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주방놀이를 사준 순간부터 다른 곳은 주방이 될 수 없는 것을 주의해야한다.
아이에게 주방놀이를 사주되, 그 어떤것도 씽크대가 될 수 있고 냄비가 되고 음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다면 괜찮다. 주방놀이세트를 사주냐 마냐 보다는, 사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태도이다. 그렇기에 반대로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아이에게 다양하고 멋진 장난감을 사주지 못한다 해도 그것 역시 괜찮은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어릴때는 그런 주방놀이가 별로 많지 않았다. 나 어릴때도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풀잎을 돌로 빻아서 음식처럼 상상하며 놀이하기도 했었다. 나는 서울의 평범한 동네에서 자란 80년대생인데 그 당시에도 우리는 그렇게 놀았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상상을 하면서 노는 아이들을 거의 보기가 어렵다
가끔 초등학교에 놀이상담 수업을 하러 나가는데, 그때마다 참 난감하고 속상하다. 요즘 아이들은 놀이할 줄을 정말 모른다. 신나게 소리지르라고 해도 평소엔 그렇게 산만하고 주의집중안되고 활동적이라던 아이들이 제대로 놀지를 못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마음껏 놀아도 된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잃어버렸던 놀이성이 다 올라 올때까지 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이 놀이에 감이 생기면 얼마나 잘 놀이 하는지 모른다.
제대로 된 도구는 하나도 준비해주지 않는다.
내가 주는 재료는 보통, 종이테이프나 스파게티면, 마시멜로우, 막대기, 여러가지 도형이 오려진 시트지 정도인데.. 아이들은 그 재료만을 가지고도 충분히 즐겁게 놀이하고 놀이를 통해 공감이나 감정조절, 타인존중과 같은 다양한 개념을 배우기 까지 한다.
틀이 정해진 장난감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아이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틀이 주어진다는 의미이다. 우리 아이만 보더라도 시댁에 가면 장난감이 거의 없고 경찰차 한대와 헬리콥터 한개 그리고 빨강색 커다란 운동용 고무공만 있는데, 아이는 큰 차이없이 잘 논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장난감이 더 많은 우리집에서 보다 더 잘 놀기도 한다. 아이는 할아버지가 주워오신 도토리를 경찰차가 쫒아가는 도둑으로 상상하여 놀기도 하고, 커다란 빨간공이 폭탄이 되기도 한다.
장난감이 너무 많아서
깊이 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의 놀이영상을 받아보면, 정말 헉-소리가 날 정도로 장난감이 많은 집들이 있다. 아이의 놀이방인지 장난감을 보관하는 창고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그런데 그러한 상황에서 아이들은 하나같이 잘 놀지 못한다. 너무 많은 것이 있으니 아이는 놀이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이것 조금, 저것 조금 만지고 탐색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를 못한다.
요즘 아이들이 많이 산만하고 주의집중이 잘 안된다고 하는데, 어떨 때 보면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아이들을 둘러싼 자극이 너무 많고 빠르고 복잡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단 이전엔 없던 스마트폰과 영상이 한 몫하기도 하고, 그 외에 장난감이나 책 마저도 평범하지 않고 너무 많은 소리와 형태의 변화를 보여주다보니 아이들이 정적으로 가만히 있는 사물에 대해서 깊이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키워지지를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너무 많은 것 보다는 차라리 없는 것이 낫고, 어떤 장난감을 주는 가 보다는 어떻게 아이의 놀이에 반응해주는가 라는 태도가 더 중요한 것이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장난감이
좋은 장난감이다.
그럼 어떤 장난감이 좋은 장난감일까?
개인적인 경험을 반영하자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장난감이 좋은 장난감이다.
장난감은 아이가 잘 놀게 해주는 '도구' 라고 생각한다면,좋은 장난감은 당연히 아이가 잘 놀게해주는 도구의 기능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많은 장난감 중에 그렇지 못한 것이 참 많다.정해진 놀이방법이 너무 확실한 것, 소리나 리액션이 너무 강렬해서 그 외에 다른 기능으로 놀기 어려운 시끄러운 장난감들, 학습의 기능이 있어서 무언가를 만들고 완성해야하는 종류의 장난감들이 너무 많다.
간혹, 아이와 놀이하는 모습을 찍어서 보내주세요. 라고 요청을 하면 음성이 나오는 펜으로 아이와 영어대화를 하는 모습이나 혹은 설명서에서 하나의 작품을 선택하여 여러가지 도형을 활용하여 똑같이 만들어내는 활동을 보내시는 경우가 있다. 여러번 반복해서 설명을 드려도 딱히 놀이를 아이와 하고 있지 않거나, 혹은 놀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것인지 생각하지 못하는 부모님이 꽤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이러한 장난감이나 교육재료들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상처받지말아효...)
필요한 것이고 잘 활용하다면 놀이나 학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종류의 장난감이 너무나 압도적으로 많거나, 혹은 이런 것이 아닌 다른 보통의 장난감으로는 아이가 놀기를 어려워 한다면, 한번쯤은 어떤 장난감이 아이에게 정말 좋은 것인지 고민을 해볼 필요는 있다.
장난감은 결국 아이가 놀이하게 도와주는 재료 이기에, 그 재료의 기능만 충실하게 할 수 있으면 좋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아무 예시도 없이 한통가득 담겨있는 레고더미나, 투박한 모양의 종이블럭, 다양한 색깔의 점토와 끈, 젠가 같은 나무 조각, 그리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동물피규어 등을 선호한다. 처음에는 정해진 방법이 없는 재료들이라 난감할 수 있지만, 보통의 장난감에 비해 아이가 훨씬 질리지 않고 오래 가지고 놀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변형하는 것을 보다보면 좋은 장난감이 아이의 놀이를 얼마나 좋은 방향으로 발달시키는지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한 가지를 골라 잠시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지난번 놀이공간 구성에 대한 글에서도 언급한적 있는 <종이블럭>을 참 좋아한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대표적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장난감 이기 때문이다.
돌 전후부터 쌓아올리며 가지고 놀던 종이블럭을 아직도 아이는 변함없이 잘 가지고 논다. 그때는 대근육 발달을 위해 단순히 쌓아올리거나 길게 늘어놓았다면, 지금은 자신이 원하는 놀이의 배경을 만드는 재료로 잘 활용한다. 아이의 발달과 더불어서 종이블럭도 여러가지 기능으로 발전되어간다. 종이블럭은 아이에게 아이스크림 가게가 되기도 하고, 야채를 파는 가게가 되기도 한다. 강아지의 집이 되기도 하고 친구들이 타고 있는 기차가 되기도 한다. 상상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고정된 이미지가 전혀없는 이런 장난감은 참 유용하고 아이를 '잘' 놀게 한다.
레고상자는 버려라!
그렇다해도, 모든 장난감이 다 그렇게만 만들 수는 없기에 블럭이나 교구를 보면 어떻게 만들거나 완성하라고 형태를 보여주는 그림이나 설명서가 같이 들어있다.
가능하다면 장난감을 처음 제시할 때는 특별한 정답이 먼저 주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권하고 싶다.
특히 정해진 대로 하기 좋아하는 성향의 아이들은 상자에 그려져 있는 완성본 대로만 만들고 싶어한다. 또 설명서에 있는 작품을 똑같이 완성하는 것에만 몰두하기도 한다.
그것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우선은 무엇이든 아이가 생각할 수 있게 제시해주는 것이 아이의 상상력이나 놀이발달에 있어 더 좋다. 정답이 없이 아이에게 제시해주어야 아이도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해진 모양을 완성하는 미션은 그 이후에 주어도 늦지 않다.
요즘은 보드게임을 많이들 해서, 아직 놀이규칙을 정확하게 모르고 한글을 잘 못읽는 5-7세 아이들도 모드게임을 많이 알고 있는데, 그것 조차도 구지 시작부터 설명서에 써있는것을 다 따를 필요는 없다. 과일그림이 그려진 카드를 뺏어오는 단순한 게임인 할리갈리조차도 아이들 마다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로 다양한 게임방법을 만들어내곤 한다. 어차피 정해진 규칙은 또래가 어울리면서 하나로 맞춰가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일 수록 아이가 계속 이렇게 할 것같은 불안감때문에 자꾸 정해진것만을 강요하기 보다는, 무엇으로든 변형하여 놀이할 수 있게 지지해주는 것이 더 필요한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일년 중 어린이날과 함께 장난감이 가장 많이 팔리는 시즌이기도 하다.장난감에 대해서 글을 쓰는것은 늘 조심스러워 망설였지만, 한번 쯤 기회가 온다면 깊이 이야기 나누고 싶었던 주제이기도 했다. 나의 글은 누군가에겐 편안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냥 이런 장난감을 사주세요, 이렇게 놀아주세요 라는 편안한 정보보다는, 아이와의 놀이에 대해 깊게 고민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보기에 화려한 장난감도 좋고, 때론 아이가 원하는 것을 사줄 필요도 있지만,어떤 장난감이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지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엄마들에게도 필요하다. 아이들이 정말 '잘' 놀아서, 마음이 자유롭고 편안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