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눈빛과 말투에서 반항심이 느껴질 때
"선생님 아이가 너무 괘씸해요"
사춘기가 시작할 때쯤 아이가 보여주는 행동은 부모에게 '괘씸하다'라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 괘씸은 예절과 믿음을 저버리는 상대의 행동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다. 적당히 풀이하자면, '내가 너에게 이렇게 했는데 네가 감히 나에게 어떻게' 뭐 그런 감정 아닐까? 나 역시 아이가 한숨을 퓨- 쉬며 엄마는 그것도 모르냐고 하거나, 묘하게 마음을 건드리는 아이의 말투나 표정을 만날 때면 '아이가 나를 무시하나?' 싶어 괘씸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아이는 정말 우리를 무시하고 있을까?
조금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아이가 의도적으로 행동했든 아니든, 부모가 슬슬 우스워지고 있는 것은 맞다. 아이의 중요도는 부모에게서 또래 친구들로 옮겨지고 있는 중이며, 부모를 절대적으로 생각했던 시기에서 나만의 사고를 갖기 시작하는 인지발달이 이루어지고, 더불어 한참 스스로에게 매료되어 있는 시즈닝까지 더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부모의 삶에서
모순과 불일치를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처음 아이는 부모를 절대적인 존재로 의지한다(의지했다.) 아이에게 부모가 절대적일 수 밖에 없던 이유가 있다. 아이는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자기와 타인의 존재를 분리해서 알지 못한다. 나 = 세상과 같다. 그래서 내가 불편할 때 보살펴주고 먹여주고 재워주는 특별한 존재를 느끼며 고마워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불편하다고 표현하면(울면) 다 되네? 난 정말 대단하군, 여기는 꽤 좋군.이라고 느끼게 된다. 아이 인생의 초기 1년 동안 우리가 애착을 강조하며 아이의 필요에 빠르게 반응하며 민감하게 채워줘야 한다는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이 시기 이 과정을 통해서 아이는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되며 이것이 아이의 모든 관계의 모델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는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인지하게 된다. 나를 보살펴준 그 사람- 그게 부모이구나!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부모를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믿을 수밖에 없다. 아이는 필살적으로 부모를 쫓기 시작한다. 화장실도 못 가게 하고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조금 더 자라면서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인지발달로 인한 성숙이 이전만큼 부모에게 집착하는 것을 줄어들게 하지만, 적어도 심리적으로 아이는 꽤 오랜 시간 부모를 의지하게 된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며 아이는 세상을 여러모로 다양하게 접할 기회가 많아지고 두뇌와 호르몬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다. 그러면서 아이는 부모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완벽하거나 절대적 의존을 할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좀 더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부모의 삶이 얼마나 이중적인지, 말과 행동에 얼마나 많은 모순이 있는지, 지금과 이전이 다르며 스스로 하지 못하는 것을 나에게는 하라고 강요하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냥 하라면 하면 되는 거지, 왜 저렇게 말이 많고 투덜거리는 건가요?"라고 많이 이야기하시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너무 당연한 반응일 수밖에 없다. 소위 말해 이전까지 '그냥 하라면 하는 거라 (까라면... 까...)'의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아이는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하고 싶어 하고, 왜 나에게는 하라고 하면서 부모는 안 그러는지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인지발달도 한 몫한다. 이전까지 아이는 논리적인 사고나 기억력에서 한계가 있다. (아이들 마다 인지발달 차이는 있지만) 하지만 초등저학년 후반부터 대부분의 아이들은 비교적 논리적으로 상황을 보고 사고하는 것을 학습하게 되고 기억력 또한 엄청나게 성장한다. 학습으로만 보자면 참 좋은 발달인데, 이러한 발달은 부모인 우리를 바라볼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아이는 부모가 한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는 불일치, 무논리를 발견하고 반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발달이 가져오는 당연한 현상이다.
그래서 부모의 삶이 중요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에게 매번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가? 충분한 토론의 기회를 매번 주어야 하는가? 사실 그럴 수도 없고 그렇게 까지 할 필요도 없다. 다만 <부모의 말> 보다 <부모의 행동과 삶>이 영향을 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때가 왔다.
서점에 가면 초등 저학년 까지는 육아책이 꽤 많다. sns 에도 널리고 널린 것이 이런 류의 정보이다.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법, 이렇게 부모가 말하면 아이가 바뀐다 등등- 훈육부터 학습까지 다양한 대화법과 육아스킬이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사춘기가 시작되는 연령부터는 이러한 정보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왜 그럴까?
아이는 더 이상 부모의 양육스킬에 의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부모와 아이가 쌓아온 관계 + 부모가 보여주는 삶 = 변화
이것 만이 아이와의 사춘기 시간 관계를 유지하고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공식이다.
1) 최대한 말을 아끼고 행동을 일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말을 많이, 다양하게 할수록 손해이다. 특히 아이는 부모가 감정적으로 자신에게 화풀이하는지 진짜 훈육을 받고 있는 것인지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잦은 잔소리는 아이에게 임팩트가 없을 뿐 만 아이라 아이와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부모의 논리적이지 않은 행동과 충동적인 감정표현을 부추길 뿐이다. 비즈니스에서 만난 사람을 대하듯, 계산을 하며 적절하게 말의 양과 내용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을 고르고 골라서 접근하는 전략이 이제부터는 진짜 필요하다.
2) 어른에게!라는 표현을 지양한다
사춘기 무렵 아이들에게 혼을 내면서 "어른에게 그러는 거 아니야"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하는데, 아이들은 사춘기가 농익을수록 '어른'이라는 단어 자체에 푸드덕 거리며 과민반응을 보인다. 불필요한 반항감을 줘서 정말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소리를 지르거나 문을 쾅 닫았다면 아이에게 "어른 앞에서 뭐 하는 짓이야"라고 혼내기보다는, "네가 아무리 화났어도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아냐"라고 일반화시켜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낫다.
3) 아이의 생각을 물을 수 있는 시간을 주자
부모는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를 아이가 흡수하는지 아닌지 금방 느낄 수 있다. 또한 부모가 보기엔 아무리 개똥철학 같고 속 터져도 아이에게는 나름의 계획과 논리가 있다. 아이가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하거나 반항스럽게 뱉어내는 표정을 짓는다면, 아이가 억울하거나 사실과 다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단 아이와 싸우는 것이 아니므로 무게감을 잃어서는 안 된다. (동등한 위치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 부모가 해야 할 말을 끊지 말고 다 듣고, 다음 너에게 기회가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어야 한다.
4) 솔직한 사과와 인정은 때때로 필요하다
부모도 실수한다. 그리고 아이는 부모의 솔직한 사과와 인정을 기대한다. 그렇기에 아이에게 명백하게 실수했거나 오해한 점이 있다면 제대로 사과하는 것이 필요하다. "네가 안 그랬으면 나도 안 그랬을 거야"라든가 "나도 미안한데, 너도.."라는 조건부의 미성숙한 사과는 결국 반사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 아이는 우리가 사과하는 모습도 보고 있다. 사과가 필요할 때 잘 사과하는 것은 아이에게 신뢰를 쌓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