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우리는 이제 필요없나요?
우리는 이제 막 사춘기가 올랑말랑 하는 아이들의 마음과 부모인 우리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아이의 사춘기를 바라보는 우리 마음의 정체에 대해서도 알아보았고, 유아기 아이에 대한 상실을 수용해 가는 과정에서 분노와 거부, 체념과 혼돈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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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알아보았다. 요즘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은 어떤 고민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그리고 부모와 아이가 느끼는 '간섭'에 대한 동상이몽과 아이의 두뇌발달과 호르몬 변화가 만들어내는 '어쩔 수 없는' 행동에 대해서도 머리로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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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할 수 없는 큰 성장의 흐름 사춘기, 그리고 필수적으로 찾아오는 아이의 변화 - 아마 이쯤 되면 이 글을 읽어온 부모님들 마음에는 체념하는 마음이 생길 것 같다.
이제 아이에게, 부모는 쓸모가 없어지나요?
아니요, 이제부터 부모는 아이에게 더욱 중요해집니다
흥미롭게도 아이에게 부모란 이전보다 더욱 중요한 존재가 된다. 아이가 의식하는 고민의 대다수가 또래관계나 학습으로 보일지라도 결국 아이의 고민은 가족으로 더욱 강하게 수렴된다. 가장 최근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을 보았을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한 초등, 중고등 학생 아이들은 822명이고, 그 원인은 또래관계나 학업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아닌 가족문제, 가족갈등 등의 문제가 가장 많았다.
아이는 표면적으로는 부모의 존재를 이전보다 의지하지 않고 밉게 행동하고 또래관계에만 몰두되어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정말 강하게 영향을 주는 요인은 여전히 '부모'이고 '가족'이라는 점이다. 사실 사춘기 아이들이 갖는 문제는 굉장히 복합적인 원인이 섞여 있기 마련인데- 이 문제들을 잘 해결해 나가며 성장하느냐, 이 문제에 압도되고 심하게 일탈하는 가를 결정하는 가장 묵직한 축은 언제나 가족이다.
예전에 상담했던 중학교 1학년 아이가 있었는데, 내가 보기에도 정말 학교 가는 것이 죽을 만큼 싫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해도 빠져나올 수 없는 또래관계, 지옥 같은 학교생활- 아이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라고 언제나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이는 죽기 위한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이후 나는 아이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자원을 알게 되었다. 바로 부모였다. 어찌 되었건 이 상황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부모- 그중에서도 엄마라는 존재. 아이는 부모에게 살갑게 대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부모가 그 아이의 삶에 미치고 있는 영향은 부모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참 강력했다.
부모는 아이에게 다시 2번째 안전기지가 되어주는 시기입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부터 아이는 불안정하다. 아이 내부도 불안정하고, 주변 친구들도 모두 불안정하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더욱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존재가 필요하다.
아이는 처음 태어나 걸음마를 시작하고 세상을 탐색할 때 부모를 특히 주애착대상을 의지한다. 건강하게 잘 애착된 아이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경험하며 분리되고 다시 만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열심히 돌아다니다가 언제든 다시 되돌아갈 수 있는 <안전기지>인 부모가 있기 때문이다. 안전기지가 있는 아이는 거침없이 나갈 수 있고, 넘어지면 부를 사람이 있다. 그래서 성장에 대한 동력을 갖게 된다.
그런 아이에게 다시 한번 두 번째 안전기지가 필요한 시기가 있다면 그건 바로 <사춘기> 일 것이다. 마치 데칼코마니로 딱 접어 그림이 겹쳐지듯, 아이가 처음 세상에 발을 딛는 시기와 사춘기는 닮아있다. 평행이론 같기도 하다.
<안전기지>가 된다는 것은 아이에게 언제나 바짝- 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에게 세세하게 개입하는 것도 아니다. 저기 어딘가에 있는 언덕처럼 같은 자리에 있는 것. 그냥 가면 늘 있던 그 언덕이 거기에 여전히 있는 것. 그런 의미이다. 그래서 아이 마음에 이러한 믿음이 자리 잡는 것이 중요하다.
'적어도 나는 정말 정말 안되면 부모에게 이야기할 수 있어'
'나는 부모님에게 이야기하고 도움 받을 수 있어'
불행히도 사춘기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부모에 대해 이러한 안정감을 가진 아이가 많이 없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말해봤자 소용없어' '내가 그렇게 안 했으면 그런 일도 없을 거라 하겠지' '부모에게 말해봤자 문제만 커져요'가 아이들이 보통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하나요?
관계의 빈구멍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채우세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부모님의 아이 연령이 어떠하듯, 지금이 가장 빠른 베스트 타이밍이다. 만약 유아기에는 아이와 참 잘 지냈는데 요즘 부쩍 삐거덕 거리기 시작했다면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유아기에 아이와 나의 관계가 좋았던 것은 혹시 아이가 나에게 일방적으로 맞춰주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만약 그렇다면 아이가 이제 막 자율성을 뒤늦게나마 외치는 소리에 귀 기울어지고 돌려주어야 한다.
혹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아이와 자꾸 삐거덕 거리는 상황의 공통점을 파악해 보고- 새롭게 아이와 관계를 맺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여 말하자면, 오히려 지금부터 더 관계를 잘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만약, 유아기부터 아이와 관계를 잘 맺지 못한 부분이 있어 후회와 아쉬움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아이와 관계의 구멍을 찾아 채워야 한다. 부모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고, 아이와 함께 상담을 받아도 좋다.
사춘기가 본격화되면 그 직전까지 쌓아놓은 관계를 까먹으며 버텨야 한다. 사춘기는 모든 아이들에게 오지만 사춘기의 과정과 결과는 다르다. 그 다름의 중심에 <관계>가 있다. 그동안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가, 그리고 지금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에 따라 사춘기의 과정과 그 이후가 달라진다. 무조건 한 칸이라도 더 채우고 적립해두어야 한다.
대화에 자신이 없다면 시간을 함께 보내세요
솔직히 말하자면 사춘기가 절정인 아이들과의 대화는 전문가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성인과의 비즈니스 대화처럼 아주 신경 쓰고 노력하며 대화해야 한다ㅎㅎ) 그래서 대화연습이 잘 되어있지 않은 어른(부모)라면 아이와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할수록 관계가 나빠지는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이렇게 노력했는데'라는 서운한 마음도 들고, '노력해도 어차피 사춘기 애는 입을 안 연다'라고 투덜거린다.
하지만 큰 오해가 하나 있는데, 원래 사춘기가 시작되면 아이들은 우리가 묻는다고 대답하고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노력하는 이유는, 우리가 대화하고 싶을 때 아이에게 대답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우리에게 꼭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때 말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두기 위함이다.
이건 아주 큰 차이이다. 사춘기 시기를 지나는 시간 동안 아이가 필요할 때 우리에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실망하지 않고 아이에게 묻고 기대하지 않지만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정말 대화에 자신이 없고, 오히려 아이와 끝이 안 좋아진다면 대화 말고 다른 것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좋다.
그중 하나가 대화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거나, 캠핑을 하거나, 같이 카페에 가서 각자 할 일을 하는 시간이 있거나, 배드민턴을 치는 것처럼 그저 함께 '활동'을 하는 시간 아이템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서로 각 잡고 이야기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고 그냥 연결되어 있는 규칙적인 시간을 갖는 것. 이것이 규칙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 우리는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귀찮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이야기할 타이밍을 굳이 잡을 필요도 없이 '연결된 통로'가 존재하는 것이니까.
듣는 시간의 비중이 더 커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아이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면 아주 의식적으로 내가 말하는 시간보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비중이 더 많아지게 신경 써야 한다. 정 안되면 50:50이라도 좋다. 사춘기 시기의 문제를 살펴보면 아이는 말을 점점 덜하고 부모는 점점 말을 더 하게 된다는 것이다. 말이 많아지니 질문과 확인도 많아지고, 설명이 길어지며, 감정이 자주 드러나게 된다. 좋은 말이라도 아이에게는 '믿지 못해서 하는 간섭'으로 느껴질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아이도 덜 말하고 나도 거기에 맞춰 듣는 비중을 고려해 말하면 너무 대화시간이 적지 않을까?라고 되물을 수 있다. 하지만 어차피 부모인 우리가 말을 너무 많이 일방적으로 해야 한다면 그것은 대화가 아니며 쓸모 있는 시간도 아니다.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유아기 때 놀이시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들과의 관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짧더라도 쓸모 있는 진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