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시작하며,
기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 해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나만의 관점으로 분석, 비판하는 글을 수십 개를 썼다. 물론 그 글들은 어설펐다. 그럼에도 내 생각이 녹아있는 글을 완성하고 나면, 자식 같다는 말이 뭔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자식은 고통과 인내를 견디고 주변의 도움이 있어야 낳을 수 있다는 것처럼, 글도 그랬다. 글을 열심히 쓰던 시절, 내 인맥은 모두 글로 맺어진 인연이었다. 내 생각을 담고, 내 감성과 인상을 빼닮은 글들은 한 번 만에 나오지 않았다. 하나의 사안에 시간과 분량에 맞춰 한 공간에서 글을 쓰면 서로가 그을 돌려가며, 분석과 비판을 했다. 누군가는 공개처형이라고 표현했던 그 시간. 생각에 논리적 허점이 드러날 때는 부끄러웠고, 내 생각이 글에 잘 담기지 않을 때는 억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쓰는 취준 생활이 행복했던 이유는 나의 관점을 이해하고, 내 생각을 글 한편에 오롯이 담을 수 있게 수십 번 평가해줬던 친구들 때문이다.
수차례 시험에 낙방했지만, 그 실패에도 묵묵히 여러 편의 자식 같은 글을 남기며 버텼던 이유는 서로의 글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비판해왔던 시간 때문이다. 한낱 취준생이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에 나만의 관점과 감성이 오롯이 담긴 한 편의 글이 완성되면 그 글을 혼자 몇 번이고 소리 내서 읽고 뿌듯해했다.
홍보마케터는 다른 말로 대변인이다. 그래서 회사생활의 대부분의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느라 시간을 보낸다. 여론을 혹하게 해야 해, 부풀려 말하기도 하고, 날 선 언론 앞에서 모르쇠로 말하거나 딴소리를 할 때가 많다. 원치 않은 방향대로 글을 쓸 때, 유체이탈 자세로 나를 다독이며 ‘나는 회사다’라며 사과문이나 입장문을 쓸 때마다 답답했다. 부랴 부랴 얻은 직업이 그나마 글 쓰는 직업이라 어느 정도 버틸 줄 알았는데, 답답함만 늘어났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난 내 이야기를 글로 쓰는 걸 좋아하는구나.
“그래 지희야, 써! 나 네 글 좋아했어”
기자, 출판 편집자, 마케터, 하지만 전직 글쟁이들이었던 우리가 한 선술집에서 서로의 업무 투정을 받아주다가 친구가 말해줬다. 그날 퇴근길 그리고 오늘 펜을 들어 글을 쓰기까지 친구의 말이 내 마음속에 남아 맴돌았다. 새 노트를 사서 맘을 다잡아 보기도 했고, 퇴근 후 블로그를 열어 보기까지 했지만 내 이야기를 쓰지는 못했다. ‘글 쓰는 것보다 멋진 일은 없어’라는 공감 가는 문구를 찬찬히 살펴보고 이젠 정말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글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수많은 비판과 내 글을 두고 여러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자식 같은 글이 나온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변명이지만, 글을 쓰는 멋진 행위를 함께 할 친구가 없었다고 하련다. 그리고 이제 정말 펜을 들고 글을 썼다. 어설프지만 멋진 내 인생, 그 일을 기록하고, 그 일기장을 함께 봐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