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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추도사 Jan 13. 2021

상사를 불러서 물어봤다, "왜 일 안 하세요?"

싸움닭은 회사를 행복하게 다닌다.

 나는 회사에서 싸움닭이었다. 직장 생활은 결국 싸우는 일의 연속이었다. 직장에서의 싸움이라는 건 치고받고 욕을 하는 걸 뜻하는 게 아니다. 서로 다른 자아들이 충돌해 각자의 주장을 하고, 협상, 양보, 사과, 합의를 거치는 과정이다. 회사에서는 매일 여러 명과 싸워야 했는데 이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다. 죽고 사는 문제와 전혀 연관이 없지만 단지 자신 있거나 좋아하는 일을 잘하기 위해 자기주장을 하고, 서로의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걸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과정. 누가 봐도 나는 회사에서 싸우는 걸 좋아하는 싸움닭이었다.


 싸움닭의 18번 대사는 '왜요'다. 한 페이지 보고서를 쓰는 지시를 듣더라도 '왜요?'라고 되물었다. 이 대사는 주변 사람을 당황하게 했다. 그냥 인수인계 파일을 보고 똑같이 하면 되는걸 왜 묻냐며 타박하던 사람들, 막상 일의 이유를 알아봤자 별 이유 없으니 '그냥 해'하던 사람들, 그런 질문에 사람들이 너를 이상하게 본다고 걱정해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정말 신기했다. 각자 일을 하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일에 대한 질문이 생채기를 낸다고 생각하는 것 말이다. 우려와 놀람의 시선을 받던 '왜요' 질문은 회사 생활 3년을 재밌게 버틸 수 있는 단초가 됐고 그 배움이 쌓여 업무 능력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무기가 됐다.


 쇠는 뜨거운 불에 여러 번 담금질해야 단단해지는 것처럼, 물음표를 입 밖으로 내뱉고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나의 '업무 무기'는 단단해졌다. 내 물음표는 쩨쩨한 것부터 거대담론까지 범위가 넓었다. 소비자의 니즈를 잡아내 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홍보 마케터이자 고객사의 주문에 맞춰 일하는 대행사 직원이었다. 고객사의 지시에도 항상 '왜요'를 달고 살았다. 그 질문에 '아 왜 그거 전문가시니깐 아시잖아요'라고 말해도 '홍보 전문가지만 '당신'의 생각은 모르니 어떤 결과를 원하는 건지, 왜, 누구에게, 무슨 용도로 보고하는 거냐' 되물어봤다. 이런 부딪히는 과정은 상대의 요청을 정확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을 터득하게 했다.


 '회사일이 다 그래, 아랫사람이 참아야지' 하는 게 나한텐 없었다. 일 안 하는 상사를 따로 불러서 물어봤다. '왜 이렇게 일을 안 하세요?' 누군가는 맹랑한 이 질문이지만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나름에 이유가 있을 테고 그걸 알면 대신 일하는 입장에서 마냥 억울하지 않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하러 온 회사이니깐 앞으로 일을 차질 없이 하기 위한 업무 조정도 이유였다. 이 질문은 3년 차 당시 회사 생활에 고민 없을 때 '리더십'이라는 큰 고민을 안겨줬다. 그리고 어떤 사람과 일을 하더라도 나만의 속도로 일을 하는 방법, 회사 구성원과 불만이 있을 때의 대처, 불만이나 비난을 들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체득하게 됐다. 지레짐작이 아닌 직접 부딪치며 체득한 배움과 호기심은 그 분야를 필사적으로 공부하게 만들었다.


 회사에서 싸움을 좋아하던 내가 얼마 전 퇴사를 했다. 묵묵히 주어진 일들만 하던 사람들, '왜요' 질문에 놀람을 표하던 사람이 모두 퇴사하고도 한참을 더 일하다 마지막에 퇴사했다. 모두가 무의미하고 비상식적인 회사니 나왔겠거니 말했다. 근데 나는 회사 때문에 퇴사한 게 아니다. 나름 그곳에서 질문을 하고 개똥 같은 명분이라도 이유를 찾으며 일하니 회사 일은 남들과 달리 재밌었다. 정말 퇴사한 이유는 '왜요'라는 질문을 안 해서다.


 한 회사에서 같은 직무를 3년을 하다 보니 '짬밥'이 어느 순간 '꼰대'로 치환됐다. 작은 회사였고, 홍보에만 치중됐던 업무를 3년간 똑같은 일들이 일어나다 보니 반년 간 궁금한 게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어느 순간 궁금하고 싶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일을 대충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퇴근을 했다. 출근 전 열의를 가지고 신입 때처럼 '왜요'라고 묻자고 다짐했지만 출근하면 다시 아는 대로 일하고, 대충 이렇겠지 지난 3년간 내내 그래 왔으니깐이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렇게 대충 지래 짐작으로 낸 결과물은 결과가 좋더라도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왜'라는 질문을 빠뜨리고 한 업무는 남들은 몰라도 내 눈엔 부족함이 보여 퇴근 후 묵직하게 양심을 짓눌렀다. 싸우는 게 좋아서 회사를 다닌 싸움닭인데, 여전히 독기가 가득한 4년 차인데 1년 차 때랑 비슷한 게임에 상품도 같으니 영 싸움에 재미가 없었다. 무엇보다 다른 싸움닭들이 있는 경기장은 치고받고 열심히 싸운다는 소문이 나를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백수가 된 지 한 달, 좋은 회사를 찾고 있다. 좋은 회사란 어떤 회사일까. 그 답은 나랑 전투적으로 싸워줄 상대가 있는 곳. 시답지 않은 일로 또 시시콜콜 싸워가면서 일할 수 있는 큰 경기장을 찾기 위해 작은 경기장을 탈출했다.

열심히 일했던, 내자리. 정말 열심히 일해서 그런지 퇴하고 후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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