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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추도사 Aug 24. 2020

서른 살 직장인은 오늘도 계란말이를 만든다

서른 살 직장인은 회사에서 뭘할까

여행회사 홍보 4년차 입니다:)


김치찌개 전문점에 '계란말이'나 부치는 일. 서른 살의 경력 4년 차의 역할이다.


모두가 김치찌개를 먹으려고 오지만 김치찌개만 덜렁 내놓을 수는 없는 일. 김치찌개를 위해 잔반 거리를 만드는 일이 경력 4년 차들이 주로하는 일이다. 아무도 계란말이 맛을 기대하고 오지 않지만 오늘도 계란을 부치러 출근한다.


퇴근길, 오늘도 정신없이 계란을 부쳤는데 성취감보다는 헛헛함이 밀려오는 날이 많았다. 3년간 여행 회사의 '홍보'를 담당했다. 출근하면 매일 같이 여행을 소재로 뉴스거리를 만들었다. '요즘 이런 여행이 대세니깐 너네도 얼른 좀 떠나라, 여행상품 결제는 우리 회사에서 좀 하구'라는 말을 에둘러서 홍보 콘텐츠를 만들었다. 한 달에 총 9번. '여행을 떠나세요'라는 똑같은 주제의 콘텐츠를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냈다. 상업성이 짙은 콘텐츠를 매번 새롭고 재밌게 만드는 건 어려웠다. 콘텐츠를 완성하기 위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글을 쓰고, 본사 담당자를 설득하는 작고 사소한 일들이 이어달리기처럼 반복됐다.


마케팅과 홍보의 아킬레스건은 나의 퍼포먼스가 매출에 직접적으로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쳤다는 걸 증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 달 내내, 이래저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설득하고, 수치를 뽑고, 아이템 회의를 하며 크고 작은 일에도 열심히 었는데 막상 월말 보고서에 '내 노력'을 '수치'로 증명해야 할 때마다, 이게 정말 매출에 무슨 상관이지 현타가 왔다. 특히, 더 이상 신문을 안 읽는 시대가 오면서 신문에 기사를 싣는 일이 '사실 안 해도 그만이잖아'라고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이런 현타에도 다시 출근을 한다. 그리고 계란을 부친다. 이놈의 계란 안 부쳐도 그만이라고 쒸익쒸익 거리다가도, 막상 부침개를 들고 불 앞에 서면 진지해진다. 계란이 모양이 작게 어긋난 거에 노심초사하고, 손님이 계란이 맛없다고 할까 조마조마한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적어도 계란말이 맛 없다는 소리는 안 듣게 내 계란에 집중한다. 그리고 꿈꾼다. 옆에서 노련한 손놀림으로 김치찌개를 끓이는 주방장을 보며 나도 언젠간 김치찌개를 끓일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그냥 누군가가 그 김치찌개 집 계란말이도 맛있다고 말해줄 거란 허망한 꿈을 가지며 그냥 지금 앞 내 계란에 집중하기로 마음가짐을 다잡았다.


서른 살 친구들과 계란말이 클럽을 결성했다. 기자 취준 시절, 기자라는 꿈을 위해 만난 우리가 '출판편집인', '기자', '언론홍보인'이 돼 만났다. 누구는 원하는 직업을 얻었고 누군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누군 여전히 계속 꿈을 향해 준비하고 있다. 각자 다른 사회적 위치지만 '서른 살 직장인 4년 차는 김치찌개 집의 계란말이 조리사'라는 말에 손뼉 치며 '와 정말 맞아!'라고 동의했다. 원하는 직장에서 일하든, 꿈꾸던 일을 하고 살든, 그렇지 않든, 서른 살 4년 차라면 '계란말이 부치기'는 피할 수 없는 거구나 생각했다. 지금은 계란을 부치지만 계란 너머를 꿈꾸며 계란에 집중하는 서른. 우리는 오늘도 계란을 말러 출근한다.


*김치찌개 전문점의 계란말이 신세를 비유한 건 계란말이 클럽의 멤버 '길편'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임을 밝힙니다.

직장인 4년차의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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