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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추도사 Jun 02. 2020

사소한 일을 하며 큰 꿈을 꾸는 법

3년차 홍보담당자가 꿈을 꾸는 방법

첫 행사였던 광고제에서 순차통역을 맡았던 유명 광고인. 다행이 그녀는 깔끔하고 정확한 캐나다 영어를 써서 금방 적응하고 3일간 그녀의 통번역을 맡았다. 마지막 통역을 마치고 지침ㅋ


나는 꿈이 큰 아이었다. 정치부 기자가 되고 싶었다. 신문의 1면에 실린 이야기에 귀를 기울었다. 대학시절 각 정당 지도자의 발언이 흥미거리었다. 정치경제면에 회자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외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말만 듣다 보니 그 언어와 사고를 닮아갔다. 그렇게 20대를 보내다 조바심에 급하게 직장을 찾았다. 홍보마케팅 직군은 ‘언론’에 팔릴 거리를 잘 알고 글도 평균치로 쓰는 내가 빠르고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곳이다.


홍보 직군은 인력난이 심하기 때문에 쉽고 간편하게 자리를 구할 수 있다. 소위 짜치는 일이 많은데다 을의 위치에서 이유도 모른 체 해야 할 사소한 일이 많다 보니 많은 이들이 지쳐 빨리 나간다. 나도 퇴근길 마다 내 쓸모를 되묻는 일의 연속이었다. 사소한 것을 기획하는데 이십대를 바치는 것이 분했다. ‘이게 뭐 사회를 바꾸는 일도 아니고 안 해도 그만이자나’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그래서 회사 밖에서 지인을 만나면 일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작고 사소한 업무를 한다는게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OTA의 PR 담당자’이기도 하지만 사실 업무의 99%는 기자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점심을 꾸역꾸역 먹고, 점심에 처음 보는 이와 만나서 친한척 농담 따먹기를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분기별로 간담회와 행사를 진행하면 한명이라도 더 참석하게 하기 위해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읍소를 하는 건 부지기 수. 행사 때는 마이크 음량 체크, 명단 확인, 동선파악, 선물 증정 등 정말 이걸 왜 해야 하나. 이게 사회에 무슨 변화를 가져오나 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이런 나의 심리를 파악한 팀장은 ‘홍보 일하면 어딜가도 예쁨받아’라고 말하는데 ‘이렇게 작은 일에 울고 웃으면 좀생이 되서 예쁨 못 받겠다’고 속으로 응수했다. 그리고 그 말이 어디까지나 퇴사를 막기 위한 말이겠거니 했다.


그렇게 3년차 홍보쟁이가 됐다. 요즘은 잡일을 하며 쌓은 짬밥 덕에 살아간다. 누군가를 돕기보다는 비평하고 대접받을 줄만 알던 내가, 이제는 모임을 주도하거나 그 모임의 시스템을 파악하고 사소한 것을 챙기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매주 등산 소모임을 꾸리고 초보자를 위한 등산 안내장을 만들고 혹시 모를 준비물을 챙긴다. 산 주변 유명한 김밥집에 가 함께 먹을 김밥을 들고 산을 오른다. 멤버별 성향을 파악해 대화주제도 건낸다. 글쓰기 모임에서는 자진해서 반장을 맡고 저녁 동네 수영반에서는 동네 어르신들의 전화번호를 받아 공지를 맡고 있다. 있으나 마나한 작은 모임들. 이곳에서 사소하고 짜치는데 능한 ‘홍보인의 짬밥’은 빛을 발휘한다.


이 지긋지긋하고 사소한 일이라고 치부했던 것들이 '기술'이었다는 걸 깨닫는 요즘이다. 오랜만에 수영 간 날, 샤워실에 모인 아주머니들이 밝게 웃으며 반가워했다. ‘우리 막내가 안와서 다들 기다렸다고’, ‘밝게 웃고 공지하는 사람이 없어서 할매할배들이 심심했다’고 말이다. 별 어려운 일이 아니였는데 나의 그런 행동과 모습을 기억해준 수영장 아주머니들의 말에 사소한 것들이 ‘나’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동네 수영러들의 칭찬속에서 그날 어렴풋이 느꼈다. 이 하찮은 기술이 바탕이 돼, 내가 더 큰 조직, 더 큰 일을 하는데 밑바탕이 될 거라는 걸 말이다. 그렇게 나는 '작은 일을 하면서 큰 꿈을 도모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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