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를 보고
나는 엄마를 무시한다. 직장을 다니면서 더 그렇게 됐다. 아빠는 30년간 가장으로 버틴 것에 존경심이 커진 반면,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엄마가 아는 회사생활은 매일 아침드라마에 나오는 극적인 시놉 시즈가 전부다. 또 회사와 노동자를 보는 시각이 쌍팔년도식이라 '회사생활이 원래 그런 거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는 거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나를 도망가게 만들었다. 엄마는 내가 겪는 사회의 정글이 궁금했지만 모르기에 질문은 추상 적이었다. 회사일을 마친 후 집에선 간섭도 받고 싶지 않았기에 엄마의 추상적인 질문에 추상적으로 답했다.
대화의 단절을 넘어 엄마에게 강요를 하게 된 건 용돈을 주면 서다. 돈을 벌어다 오는데 퇴근한 나에게 쓰레기를 버리고 오라, 빨래를 가져가라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일하다 왔는데, 엄마가 서랍에 좀 고이 넣어주면 안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하고 좀 쉬고 싶은데 당장 먹을 컵 하나 없어서 내가 씻어야 하는 상황. 지친 하루 끝 어질러진 거실은 내 맘을 더 혼란스럽게 했다. 엄마를 제외한 가족 구성원 모두가 돈을 벌러 나가는 데다, 엄마는 용돈까지 받으니 사소한 집안일은 엄마의 몫이라는 논리 비약이 발동했다. 유난히 에너지가 달리는 날, 흐트러진 거실을 마주할 때 속으론 다음 달 용돈은 안 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우리 집의 프리라이더라는 생각이 지배하던 날. 엄마가 낯설면서도 낯익은 날 있었다. 어질러진 마루 한편에서 웅크리고 앉아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이 그랬다. 평소 엄마의 일에 관심이 없었다. 신경 쓰지 않아도 엄마는 항상 내 곁에 있으니깐. 알고 보니 엄마는 등산회에서 회계일을 맡고 있었다. 허겁지겁 장비를 챙겨 사람들과 등산을 하러 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엄마가 사회생활을 했다면 나보다 더 야망녀가 됐을 거라 생각했다. 엄마는 30년간 요리실력이 좀처럼 제자리지만 넉살이 좋고 발이 넓어서 항상 반찬이나 김장김치 선물이 많았다. 우리 집 문걸이엔 이웃 주민이 텃밭에서 따온 재철 채소들이 자주 걸렸다. 또 한 번은 아파트에 관리사무소와 대표들 간의 부정부패에 못 참아서 호소문까지 써서 제명 서명을 받아냈다. 집에서의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란 나는 회사에서 엄마와 똑같이 행동했다. 회사에서 할 줄 아는 거 하나도 없지만 인복 하나는 타고나서 주변 도움으로 일이 되게 만든 것, 무조건 시키는 데로 하기보다는 일의 요모조모를 따지고, 질문을 해가며 합리적으로 일하려고 했다. 엄마가 집에서만 논다고 생각했지만, 가정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꾸려간 모습은 나의 사회생활 태도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사람들에게 요즘 무섭다는 밀레니얼, K장녀, 페미니스트. 삼종세트를 갖춘 깨 여성이니 걸리면 가만 안 둬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그 말에 걸린 건 나 자신이었다. <크레머인 대 크레이머>를 본 날(이 영화는 여성이 육아를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해 가족을 유지해오다가, 어느 날 다시 커리어를 되찾기 위해 집을 나가면서 가족이 해체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오밤중에 거실 청소를 했다. 청소를 하려고 하니 우리 엄만 어쩜 이렇게 집안일에 소질이 없을까 싶으면서도 이걸 당연히 엄마일로 치부했던 나를 되돌아보면서 묵언수행을 했다. 조애나(극 중 메릴 스트립이 대역을 맡은 조애나는 육아에 지치다가 커리어를 되찾으러 집을 나간다)처럼 도망가지 않고, 집에서 나를 키운 엄마가 지금 꾸는 꿈은 무엇일까. 이런 이야기마저도 나누는 게 민망해져 버린 모녀 사이지만, 여하튼 엄마가 바깥일을 잘할 수 있게, 집에서는 온전히 쉴 수 있게 조신히 집안일을 하기로 했다. 딸자식 다 키운 나이 든 엄마도 여전히 큰일을 할 수 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