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언어를 찾게 되는 균형 독서의 길
요즘 좋은 책들은 다 '여자가 쓴 책'이다. 나는 편식 독서가다. 편식하려고 한건 아닌데, 도서관 대출목록이나 친구들에게 추천한 책을 보면 '여자가 쓴 책'이란 공통점이 있다. 책 읽는 이유는 생각을 잘 표현하기 위함이다. 어려운 일이다. 말로 설명해보라고 하는데 적절한 단어와 표현을 못하겠어서 끙끙된 경험. 께름칙하고 불편한 경험 속에서 항의하고 싶은데 도통 설명할 단어나 문장을 모르겠어서 눈물이 난 경험. 여자라면 누구나 있었을 거다.
일상생활에서 잘 표현을 못하는 게 아이러니했다. 활자 중독이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신문, 책을 섭렵해서 읽었지만 막상 현실에서 나의 이야기를 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고, 심경이나 생각에 꼭 맞는 표현을 못했다. 일류기업 CEO의 자서전, 한국사회를 비판하는 지성인의 사회과학책, 주요 일간지 신문을 하루 종일 읽었는데도 말이다. 그 책들을 하루 종일 읽고 자기 전 내 방에 돌아와 드는 생각은 '이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여'였다. 분명 좋은 책들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문과 대학을 나온 한국 여자'에겐 뭐 어쩌라고 싶었다. 그 책들의 내용을 조금도 삶에 적용하지 못했다.
하루 종일 남자가 쓴 글을 읽으면 헛헛했다. 유독 그런 감정이 깊어지는 날엔 침대 위에서 닳도록 읽고 또 읽은 책을 펼쳤다. 김얀의 '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 '이상하고 야한 이야기'라는 이 책의 부재처럼, 한 여자가 여행을 다니면서 다양한 남자를 만난 이야기를 쓴 책이다. 그녀가 오롯이 느낀 섹스와 관계, 여행에 대한 문장이 한가득인 책이다. 김얀 전엔 임경선 작가가 있다. 무가지에 쓴 연애 상담,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의 캣우먼의 헉소리 상담소를 좋아했던 이유는 언제나 주어를 언제나 '나'로 놓고 연애, 관계, 직장생활에 감정과 대처방법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두 여자는 '상대의 기분을 배려하세요', '여자는 말이죠~'라는 조언은 하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 읽었기에 나도 생활에서 오직 나의 권리와 행복만 생각하며 말하게 됐다.
여자에겐 사소하고 귀찮은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를 설명, 설득해야 할 일들이 많다. 하지만 언어가 없다. 생리로 몸 컨디션 난조라 겨우 약속 장소에 나왔는데 생리라고 말을 못 하고 그저 몸 컨디션이 안 좋다며 죄송하다고 말할 때 억울했다. 왜 생리를 생리라고 말하지 못할까.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한 사업가의 자서전을 읽었다. 그래서 첫 직장에서 육아와 직장일 모두 잘하는 슈퍼우먼 여성 상사들을 존경하고 업무 중 몰래 아이의 전화를 받으러 가는 여자 상사를 무능력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여자라서 당연하게 벌어지는 현상을 말하지 못하고, 단편화된 성공의 정의는 일상을 살아가는 나를 지치게 하고 누군가에겐 잔인한 사람이 되게 했다.
책을 읽는 단 하나의 이유는 내 언어를 찾기 위해서다. 임경선과 김얀은 이제 출판계에서 알아주는 작가가 됐지만 두 사람의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여전히 갸우뚱하는 반응을 마주할 때가 많다. 이전엔 무시당한 기분도 들고 반항심이 생겼는데, 이젠 다짜고짜 추천한 나의 오만함을 탓한다. 나도 30년 넘게 남자들의 포부, 사회문화 현상을 본 책들 읽으며 답답한 나날을 보냈으니깐 말이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선천적으로나 후천적으로나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른 언어를 쓰고,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한다. 다만 함께 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전달할줄 알아야하고, 그래야만 나를 지키고 함께 할 수 있음을 안다.
사회에 나와서 맘껏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을 읽고서야 균형 독서가가 되고 있다. 생각해보면 편식 독서는 공교육, 대학에서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다. 지금 매일 쓰는 언어는 임경선, 곽아람, 백영옥 작가의 문장을 닮아 있고, 지금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는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이 만들었다. 그 여자들이 문단에서 인정받았는지, 학계에서 어떤 위치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생리, 섹스, 연애, 모녀 사이의 내밀한 것부터 직장생활 까지. 여자로 겪는 수많은 일을 설명하기 위해 그 여자들의 언어를 흉내 내고 필사하면서 나만의 언어 만들고 좀 더 주체적인 사람이 됐다. 용기 내서 앞으로도 연애, 관계, 재테크를 짧게라도 SNS에 쓸 생각이다.
벌써 2021년의 절반이 지나간다. 많은 책을 읽었지만 역시나 여자들이 쓴 책이 사고를 확장시키고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 할 줄 아는 여자로 만들었다. 그동안 수많은 남성 저자들이 쓴 책을 읽고, 시험을 위해 암기까지 했다. 오랜 세월 편식 독서를 해왔고, 이제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여자들이 쓴 책을 부지런히 읽을테다. 그리고 자매님들의 균형 독서를 위해 감명 깊은 책을 홍보 하고자 한다. 올해 절반이 지났고, 여러 권의 책을 읽으면서 1~2분기 결산 추천 책이다. 소설에선 이민진의 <파친코>, 사회과학 편에서는 <가련한 나의 지배자>, 경제는 <오늘 부터 돈독하게> 이렇게 추천한다. 애써 여자 작가들로 고른 게 아니다. 뽑고 보니 여자들이 쓴 책이었음을 분명히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