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는 배추도사가 되겠어

서른 하나, <마당을 나온 암탉>의 잎싹이가 되다.

by 배추도사
창고살롱 멤버들과 새해작심 및 한해 결산 세션을 하면서 쓴 회고 및 다짐


알을 낳기 위해 길러지는 난종용 암탉이 턱없는 꿈을 꾼다. 스스로 알을 품어 병아리를 키우고 싶다는 꿈. 이 맹랑한 암탉은 어린이 소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주인공 '잎싹'이다. 잎싹이는 마당을 벗어나기 위해 자진해서 굶고, 비쩍 말라져 폐계처분 닭이 돼 탈출에 성공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잎싹이라고 명명한다. 잎싹의 어원인 잎사귀가 바람과 햇살을 한껏 받아들이고, 떨어진 뒤에는 썩어서 거름이 되고 결국엔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는 것처럼 자신도 그러고 싶다는 꿈을 이름에 투영한다. 그리고 결국 버려진 오리알을 품어 초록이를 부화한다. 이런 잎싹에게 마당에 사는 문지기가 말한다. "내가 문지기로 살아야 하고 수탉이 아침을 알리는 게 당연한 것처럼 너는 본래 닭장에서 알을 낳게 돼 있어. 마당이 아니라 바로 닭장에서! 그게 바로 규칙이라고" 잎싹이는 지지 않고 대꾸한다. "그런 규칙이 싫을 수도 있잖아. 그럴 때는 어떡해?"


12월 말이 오면 똑같이 연말 회고와 새해 다짐을 한다. 어렸을 적부터 매해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어느 누군가가 질문을 해왔다. "올해는 어땠나요, 잘한 점과 개선할 점을 짚고 새해의 꿈은 뭔가요?" 그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이 클리쉐 같은 리츄얼 같으니라고', '별 바람이 있나 다 똑같지 뭐'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는 일류대학을 가는 것, 대학생 때는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는 것, 직장을 다니면서는 연봉을 높여 이직을 하거나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것. 남 부럽지 않게 행복한 삶이 그런 삶이니깐 나도 그 꿈을 좇아 꿈을 정했다. 마치 문지기가 난종용 암탉은 닭장에서 알을 낳아야 한다는 잔소리를 새겨듣는 사람처럼 고등학생 때는 좋은 대학을 가는 게 꿈이었고, 직장인이면 연봉을 상승을 하거나 이제 돈을 모아서 가정을 꾸리는 게 바람이었다.


서른한 살을 앞둔 백수 싱글여성. 근 15년, 새해마다 예쁜 스케줄러를 사서 그럴싸한 다짐을 하고 꿈을 그렸다.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오늘의 나는 그동안 짠 인생계획과는 한참 멀어져 있다. 참 인생이란 알 수 없다. 서른이면 직장도 번듯한데 다니고, 알콩달콩 예쁜 가정을 꾸릴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내가 좋다. 그리고 앞으로의 날들이 두근거린다. 올해 연말 회고를 하고 새해 꿈을 준비하는 과정이 두근댔다. 새하얀 도화지를 받은 듯해 설레고 그위에 빼곡히 꿈을 적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만들고 싶은 습관들을 쓰고 있다. 얼마 전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좀만 어렸으면 유학 갔을 텐데'라는 말에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지금이라도 가, 아직 서른은 정말 어린 나이고 결심만 하면 다 해볼 수 있잖아' 그 말에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버틴다'라고 자주 말했는데, 사회가 어쭙잖게 정해논 규칙을 따라 하느라 매일매일이 견디는 삶이었던 거다. 또 다른 한해를 맞이 했을 때, '그때 할걸', '버티는 삶'이라고 말하기보다는 매일 작은 거일지라도 내가 하고픈 것을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 위해 처음으로 내 꿈을 계획했다.


잎싹이의 청둥오리 아들 '초록머리'는 어른이 돼 자신의 아들에게 말한다. '하고 싶은 걸 해야지, 그게 뭔지 너 자신한테 물어봐'. 대학교에 다닐 때는 어느 대학 무슨 학과라고, 회사를 다닐 때는 어느 회사 홍보마케팅 일 해요라고 나를 설명했다. 근데 얼마 전 퇴사를 해, 새로운 이름표가 필요하던 참이었다. 어느 소속도 없으니 이제 내가 정말 원하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다. 그렇게 정한 나의 첫 이름표는 배추도사다. 지금 자라나고 있는 겨울배추는 추위를 견디며 자라나 당도가 높고 매일매일 조금씩 자라나 밀도가 높고, 잎들의 촘촘하게 난다. 그래서 어느 계절의 배추보다 물리지 않고 단단한 맛이 일품이다. 그런 배추를 얻기 위해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성실히 매일 농장을 가꿔야 한다.


2021년에는 좋은 겨울 배추를 가꾸는 농부처럼 성실하게 알토란 글을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날씨가 궃을지라도 일단 밭에 나가 작고 사소한 일을 잘 다져 놔 봄에 수확을 하는 농부처럼 말이다. 역병이 오고, 인생이 내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매일 성실하게 나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습관을 고민했다. 그래서 #메모하기와 #시간관리를 잘하는 것이 목표다. 큰 일을 하려면 작은 일을 잘 다져 놔야 하는 법. 자잘하고 사소한 것들을 메모장에 담아 놓다 보면 정말 쓰고 싶은 글을 유려하게 쓰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또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고 나의 생각들을 사유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오늘 남들보다 빠르게 작은 배추 씨앗을 흙에 토닥토닥 묻었다. 잘 자라 달라고, 성실하게 관심을 결심을 했으니, 이제 거름도 주고 벌레도 잡고 흙도 고르는 부지런한 배추도사가 돼야겠다.


#창고살롱 #마더티브 #창고살롱1기 #창고살롱스페셜살롱

매거진의 이전글엄마가 거실을 어지럽히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