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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추도사 Mar 05. 2021

발레가 알려준 좋은 경력직이 되는 법

'경력'은 잊고, '질문'을 해라


 비밀 하나. 나는 발레 11년 차다. 대중적인 취미 발레리나 수준을 보더라도 나는 1년 차만도 못한 수준이다. 때문에 함께 춤을 추는 동료들 에게 이 사실을 꽁꽁 숨겼다. 발레를 11년이나 배우긴 했지만 거진 8년을 개인 레슨을 받았다. 선생님이 밀착해서 일일이 동작들을 알려줬고, 목표가 '공연을 올리 겠다'는 원대한 꿈이 아닌 그저 정형외과 신세만 안 지는 걸로 충분했기에 기본 동작을 수업시간에만 하는 정도였다. 발레 동작의 명칭도 모르는 체 설렁설렁 11년을 했다는 세월을 무기 삼아 어딜 가도 꽤 할 거라 착각하고 살았다.


 그 착각은 새로운 발레학원에 간 첫날 와장창 깨졌다. 첫 수업 날 거의 울뻔했다. 발레를 너무 못해서다. 선생님이 지시하는 발레 용어를 몰라 다른 사람들 동작을 보고 따라 하기에 급했다. 다른 사람들은 선생님의 지시에  물 흐르듯 이 동작 저 동작을 했다. 울상인 나에게 '처음 발레 하는구나', '나도 처음엔 그랬어 3년 하니깐 좀 하는 거야'라는 말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첫날은 그렇다 쳐도 한두 달이 지나도 적응을 못하고 실력도 안느니 변명은 늘어나고 꼰대 기질이 강해졌다. 거울 속 한 마리의 날뛰는 돼지를 눈으로는 목격했지만 머리로는 받아들일 수 없어서 일까. 마음속으로 '나름 십 년을 배운 사람이잖아. 곧 훨씬 잘하게 될 거야', '그래도 내가 10년 넘게 배워서인지 기본 동작은 내가 잘하는 거 같아'라며 경력을 내세워 위안을 삼았다. 어떤 날은 너무 어려운 동작을 해서 '지금이라도 낮은 클래스로 내려갈까'라고 생각했다. 머릿속은 11년을 했다는 시답잖은 경력을 무기로 변명과 자기 위로를 했고, 그러느라 수업시간에 계속 집중을 못한 체 안절부절못했다. 그런 내가 너무 싫었다.


 두 달이 지나고 여전히 발레 수업에서 분위기에 휩쓸려 몇 가지 동작을 겨우 흉내 내고 울상을 짓던 날. 선생님이 대뜸  물었다. '배추씨는 왜 질문을 안 해?' 뿅망치로 맞은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나에게 되물었다. '왜 그동안 질문을 안 했지?'.


회사 생활 4년을 하면서 좋은 커뮤니케이션은 서로가 상호작용을 하는 거란 걸 터득했다. 성장은 서로의 말을 귀 기울이며 질문을 했을 때 이뤄졌다. 발레 선생님이 세 달 넘게 열심히 알려줘도 학생이 질문은 안 하고 동작은 제대로 못해 발만 동동 구르니 답답했을 거다. 선생님은 나를 바라보며 '모르는 게 있으면 꼭 질문을 하라고, 배추씨의 질문이 우리 반에 큰 도움이 될 거다'라고 했다. 또 '지금 함께 하고 있는 동료들은 2~3년 했기 때문에 사실 새로운 질문이나 기본적인 질문을 배추씨가 해줘야지 다 같이 새롭게 또 점검하고 배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선생님의 질문 갈증은 나도 겪어 봐서 안다. 회사에서 경력직이 왔을 때 그랬다. 나의 사수가 될 사람이기도 했지만 업무를 인수인계하면서 알려주고 싶은 부분이 많았는데, 좀처럼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분도 이전 회사에서 직무가 같으니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고 금방 적응할 거라 말했다. 막상 실무를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었고, 업무 중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 그때 서로가 질문을 하고 맞춰가면서 사수도 적응을 하고 나도 배울 수 있었다. 그때 다짐했다. 질문을 많이 하는 경력직이 돼야지라고 말이다. 그날의 다짐이 발레 수업 시간 되살아났다.


그다음 수업, 질문 두 개는 꼭 하기라는 작은 목표를 들고 갔다. 그동안 뭘 잘하겠다거나, 틀리지 않겠다는 목표를 들고 갔는데 실력과 상관없이 무조건 지킬 수 있은 목표를 정하니 훨씬 마음이 가볍고 설렜다. 수업에서 기본적인 손가락 포즈와 시선을 질문했다. 어느 때 보다 선생님은 귀를 쫑긋하면서 내 질문을 받아줬고, 진지하게 알려주셨다. 같은 수강생도 귀를 기울이면서 듣거나 꼬리 질문을 이어갔다. 베테랑 수강생은 자신이 아는 동작을 선생님의 말씀대로 잘하고 있는지 되짚었다. '그걸 왜 몰라요'라고 성내는 사람은 없었다.


2월의 마지막 날, 한 달 동안 배운 1분가량 되는 시퀀스를 함께 동영상으로 남기기로 했다. 발레도 세명 이상 하면 군무 이기 때문에 한 명이 각도가 조금만 달라도 옥에 티가 된다. 고작 1분의 시간, 한 달 동안 질문을 하고 혼자 집에 가서 유튜브를 참고하고 거울 앞에서 여러 번 연습했다. 내가 질문한 시선, 손동작 부분은 동료들 모두 정확히 일치했다. 동영상을 다 함께 보며 동료들이 '배추씨 이번에 이 악물고 하더라', '정말 많이 늘었어 한 번도 안 틀렸어'라며 나의 성장에 기뻐해 줬다. 무엇보다 함께 3개월을 열심히 한 동료들과 일체가 돼 멋진 군무를 담을 수 있어서 기뻤다.


공교롭게 구직을 하는 요즘. '좋은 경력직'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한다. 우선 과거의 경력에 기대어 새로운 곳에서 일을 능숙하게 할거란 상상력은 접기로 했다. 분명한 건 좋은 경력직은 질문을 하며 학습하고 기존에 사람들보다 더 노력을 해서 거듭나는 거라는 거다. 많은 이들이 '시간이 지나면 적응하기 마련이라고'라고 말하지만 그 말을 부정하기로 했다. 시간은 채우는 사람의 것이지, 흘려보내는 사람의 편이 아니다. 앞으로의 발레 레슨에서든 커리어 에서든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질문으로 채운다면 어디서든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음을 춤을 추다 알았다. 그리고 어디서든 좋은 '경력직' 동료가 되리라는 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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