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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추도사 May 24. 2020

서로에게 최고의 파드되가 되는 비결

8년째 함께 발레를 하며 깨달은 소중한 관계 유지 법

내 몸이 최대한 길게, 최대한 부드러운 곡선을 갖기 위해선 선생님의 티칭이 필요하다



발레에서 두 사람이 함께 춤추는 것을 파드되(Pas de Deux)라고 한다. 멋진 파드되는 전 세계적, 역사적으로도 드문 편이다. 좋은 파트너를 만나기 어렵고, 만약 만난다 하더라도 서로 박자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발레선생님과 나는 8년째 멋진 파드되를 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호흡을 알고, 서로의 멋진 순간을 만들어주는 파트너다. 소중한 파트너와 멋진 파드되 유지하는 관계의 노하우는 ‘발레’에만 집중하는 것. 선생님과 나는 발레와 관련되지 않은 모든 것에 궁금증이나 잡담을 소홀히 했다. 8년을 함께 보내면서 레슨 스케줄을 잡기 위해 취직이나, 신변의 큰일들을 공유하긴 했지만 서로의 비밀을 나누거나 자질 구래 한 사생활을 나눈 적이 없다.


노력하는 학생은 기특하고,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은 프로페셔널하다. 선생님이 옆에서 나만큼 긴장해 목소리를 크게, 두 손에 주먹을 불끈 쥐면서 ‘어깨를 내리고, 엉덩이를 쥐어짜’라고 주문을 하고, 나보다 더 애쓰는 선생님 말에 부응하기 위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아등바등 버티며 조금이라도 노력하면 제법 발레리나스러운 라인이 나온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노력하고 가장 멋진 모습을 거울로 확인하면 나는 성취감을, 선생님은 뿌듯함을 느낀다.


서로가 지속적인 성취감의 순간을 함께 하면 그 관계는 신뢰가 쌓이고, 이는 각자의 일상에 숨은 지원군이 된다. 취직이 힘들고, 연애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선생님과의 발레 시간이 간절했다. 한 번은 남자 친구와는 헤어지고 회사 면접에 떨어져 패배자로 느껴진 날 발레를 갔는데 그날 유난히 더 최선을 다해서 레슨 해주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 구령에 맞춰 동작을 해 멋진 포즈를 만든 거울 속 나를 보며, 큰 위로를 받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그날 이야기를 해줬는데, 본인도 8년째 매주 찾아와 열심히 춤을 춰주는 학생이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많다며 어설픈 위로 보단 레슨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해줬다.


남녀가 파드되를 한다고 반드시 연애나 결혼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무대를 압도해 관객에게 감동을 주고, 무엇보다 서로가 무대에서 가장 멋있고 즐길 수 있도록 하면 그걸로도 귀한 존재다. 소중한 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선 서로가 공동의 목표를 명확히 세우고 그것에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 이를 나의 오랜 파트너. 발레 선생님이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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