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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추도사 Oct 13. 2021

너는 누구냐

성장 시작은 질문의 방향이 나에서 너로 옮겨질 때

 첫 이직은 큰일이 맞다. 새로운 질문을 안겨주니깐. 지난 5년간 '나는 누구인가'를 되물으며 단단한 자아를 만들었다. 인턴 때부터 커리어의 크고 작은 일들은 '나는 누구냐' 라는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한 과정이었다. 나는 무엇을 잘하고, 강점이 뭐고 뭘 개선해야 하는지, 어떤 문제의 원인도 해결책도 나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주니어 연차엔 나를 명확하게 아는 것만으로도 구직시장에서 나름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이 질문은 경력직, 중간관리자에게 더 이상 좋은 질문이 아니다. 오히려 패착을 낳는다.


 경력직으로 이직을 하고 한 달 반 만에 받은 동료평가의 성적은 평균 이하였다. '말하는 바를 전달하는데 오래 걸린다', '목표한 바를 해결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원했던 결과물에 차이가 있다'라는 평가가 왔다. 혼자 지래 짐작으로 생각했던 약점들이 동료평가에서 구체적인 문장으로 읊어졌다. 지난 한 달 반 동안 열심히 일했다. 근데도 항상 불안했고, 제대로 되고 있는지 확신을 못했다. 그래서 보고를 할 때 말을 더듬었고, 초조했다. 알고 있었다. 평가가 좋지 않으리란 걸.


회사는 함께 일을 하는 공간이다. 회사는 특히나 경력직에게 상대와 발맞춰 일할 줄 아는 것을 원한다. 지난 한 달간 혼자서 열심히 일만 했기에 동료들에게 기대 이하라는 평가는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다. 솔직히 평가는 예상해서 그러려니 했지만, 한 달 반 동안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 갖고 관찰했다는 것에 좀 놀랐다. 누군가가 동료에 대해 물었다면 나는 뭐라고 답했을까. 스타트업에 이직한 지 두 달 차. 만나는 사람마다 "회사 어때"라고 물었다. 그 대답의 주어는 언제나 '나'였다. 우리 회사에 대한 소개, 옆자리 동료에 대한 이야기, 비즈니스 파트너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내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정신이 없는지 말했다.  


 내 일을 잘하고 싶다면 역설적으로 남에게 관심을 둬야 한다. 일을 잘하기 위해 동료의 일을 들여다 보고 이에 대해 물었다면 어땠을까. 우리 회사 부대표는 한 달 반 동안 나의 직속 상사였다. 그와 동료 평가에 대해 이야기하며 면담을 마친 퇴근길. 동료이기도 한 그에 대해 생각했다. 매일 같이 '상대에 대해 조사를 하고, 이야기를 잘 들어라'라는 말을 하면서 어떻게 하는 건지 나를 대상으로 보여줬다. 몇 달 전 내 이력서를 보고, SNS 글들을 보고, 면접서 오늘까지 나의 이야기에 듣고 질문하고, 내가 쓴 이메일, 고객사와의 전화 녹취록을 한마디 한마디를 뜯어보고, 늦은 저녁 이메일에 한줄한줄 피드백과 코칭을 오가다가도 그래도 잘할 거라고 말해주던 사람. 난 그의 무엇을 관찰하고 어떤 걸 알게 됐을까. 한 번은 퇴근을 하려고 했는데 엘리베이터에 그가 있는 것을 보고 뒷걸음질치고 다음걸 탔다. 이날의 기억은 동료 평가보다 나를 더 아프게 한다. 다가오는 사람에게 뒷걸음질 친 내 모습 말이다.


 성장이 멈췄다고 생각되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질문의 방향이 옳은지 되돌아봐야 한다. 나름 치열했다. 하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질문이 여전히 주니어 직장인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 달 반 동안 이 회사에 해대서 무엇을 알았을까. 내 옆자리 사람에 대해서, 오늘 통화한 파트너에 대해서 얼마나 알까.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진 않을까. 나름 질문을 던졌지만 진심으로 궁금하긴 했나. 상대는 이미 알고 있을 거다. 앞으로의 직장인으로서는 완전히 다른 나날이 될 거 같다. 나에게서 너로 향하고 있으니깐.


이직 첫날, 잘 모르는 나에게 기대와 환영을 남겨준 동료들 포스트잇ㅋ 힘들때 마다 꺼내본다(하트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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