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증에 허우적 거리던 직장인의 성찰기
"어제 새벽에 세팅한 거 다시 수정해야 해"
아침 10시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을 한 동료에겐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첫마디가 저 말이었다. 난 참 나쁜 동료다. 변명을 하자면 4일 연속 새벽 퇴근을 해 제정신이 아니었고, 일정에 맞춰 일을 마무리 못할까 봐 조급했다. 난 꽤 오랜 시간 이 회사에서 이런 식이 었다. 근데 이날은 말을 뱉으면서 내가 듣고 놀랐다. 평소 응원의 말을 해주던 동료여서 그랬을까. 따스한 동료와 달리 너무 메말랐다는 생각을 했다. 동료는 따뜻하게 '아 맞아 그거 지금 바로 고칠게' 했지만 고쳐야 할 건 업무의 설정값이 아닌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6개월간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바빠"였다. 부모에게도 친구에게도, 동료 에게도 항상 바쁘다고 말했다. 그래서 잘 들리지 않고 잘 보이지 않았다. 응원의 말보다는 당장 일이 해결이 안 되면 쉽게 좌절해서 다시 일에 쫓겼고, 부모가 아파도 회사에 적응하고 싶어서 일을 먼저 했다. 근데 이상하게도 일이 제대로 되지도 않았다. 바쁨은 또 다른 바쁨을 불러 늘 조급했다. 조급함은 실수를 불렀고, 실수가 잦아질수록 일은 뜻대로 되지 않고 자기비판이 반복됐다. 예민해졌고 많은 것이 뒷걸음질 쳤다. 부모님도 늦게 오는 딸에게 바쁘지?라며 말을 줄였고, 친구들도 귀찮게 하는 거 아니냐며 눈치 보며 연락했다.
일도 인성도 무너지는 와중에 그래도 얻은 건 하나 있다. 6개월간 우여곡절 끝에 수습을 통과했다. 산하나 넘었구나라는 안도감이 분명 있었지만 기쁘고 신나기보단 무덤덤했다. 수습 통과 날, 급하게 근로 계약서에 사인하고 다시 업무 파일을 열어 쫓기듯 일했다. 여전히 주변 사람들도 나 자신도 못 돌봤다. 20년간 매일 읽던 신문이 문 앞에 쌓였고, 운동을 자주 건너뛰었다. 원하던 정규직 전환이란 결과를 받고 나서도 매일 조급한 모습을 마주하고서야 회사랑 나랑 맞지 않나 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건 내 선택이었다. 일이 많고, 매일 변화가 있을걸 알고도, 오히려 그런 걸 즐기고 무언갈 해내고 싶었다. 근데 왜 혼돈 속에서 망가지는 건지, 그리고 하고 있는 일이 혼돈이라고 표현할 만큼 어려운 과제들인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했다. 회사는 잘못이 없다. 돈을 주고 일을 시키며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언제나 소통창구는 열려있었다. 투명한 거래다. 오히려 회사 입장에선 손해였을 거 같다. 좀 더 노련하고 배포 있는 사람을 뽑아서 일 시키는 게 쉽고 편했을 텐데, 근데도 포기하지 않고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다.
핏 테스트를 통과하면서 매니저가 한 말이 있다. "넌 평가를 받는다고 생각 들면 눈치보느라 많이 불안해하는 거 같아. 그래서 그동안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해 맘고생했을 거야. 이제 통과됐으니깐 훨훨 날아서 실력 발휘를 해." 훨훨 나려면 바람이 통할 수 있는 빈 공간이 필요하다. 요즘 의식적으로 일과에서 빈 공간을 만들려고 하려고 한다. 점심시간 20분 만에 밥을 먹고, 다시 책상에 앉아 일하던 습관을 그만뒀다. 대신 옆 부서 사람들과 커피내기를 하고 점심 산책을 간다. 야근을 하다 말고 보드게임을 하거나, 지나가는 동료가 혼잣말을 해도 듣고 응수한다. 업무 연관성이 없는 개발자들의 이름을 외우고 인사를 건넨다. 낯선 동료에게 애교도 부리고 친해지고 싶다고 고백도 한다. 이 회사엔 서툴고 생뚱맞은 말을 반겨주는 사람이 많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바람이 통하는 공간을 만들어서 좀 이제 성과도 좋아졌냐고 물으면 당장은 작아진다. 그래도 앞으로의 글들이 기대가 된다. 마음의 빈 공간을 만드니 회사가 좋고, 좋아하는 동료들이 만들고 파는 제품을 글로 잘 만들고 싶어 노력하게 된다. 회사의 공식적인 말과 글을 쓰는 콘텐츠 마케터로서 회사를 애정 하는 건 필수 조건이고, 그래서 앞으로 내가 이곳에서 쓸 글과 말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