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차 취미 발취광이의 발레 즐기는 방법
우리 발레 연습실엔 일요일마다 40대 부부가 함께 온다. 그 집 아저씨는 4개월 정도, 꾸준히 열심히인데 여전히 어설프다. 근데 일요일 11시마다 아저씨의 서툰 동작을 보는 게 큰 기쁨이다. 어느 날 안 나오면 무척 섭섭할 거 같다. 매주 그 부부에게 인사를 건네고, 수업을 마치고 오늘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반복된다. 참 행복한 순간이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경험을 공유하는 대화 말이다. 그 부부와 인사를 나누며 언젠간 나도 남편과 주말 레슨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는 것도 매주 반복된다. 이 소소한 일요일의 루틴이, 발레 연습실에 가는 즐거운 이유 중 하나다. 아마 발레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행복일 테다.
시인 고은의 『순간의 꽃』을 읽고 딱 발레가 떠올랐다.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발레를 내려놓자 발레가 보였다. 춤을 춘지 12년 차다. 다들 어떻게 오랜 시간 하나의 취미를 이어갈 수 있냐고 묻지만, 답은 간단하다. 욕심을 버리면 된다. 그럼 그 세계가 펼쳐지면서 즐기게 된다.
한 때는 동작 하나를 해치우고, 바른 자세, 날씬한 몸을 만들어내기 위해 발레를 했다. 선생님이 알려준 동작을 못 외워서 벌벌 떨고 호들갑을 떨다가 아무런 동작도 하지 못한 것은 부지기 수. 그뿐이랴. 옆사람을 보면서 끓임 없이 질투를 하고, 우쭐댔다. 발레 연습실은 사방이 거울로 돼 있기 때문에 비교하기 정말 좋다. '나보다 다리가 더 높이 올라가네?', '말랐네', '레오타드(발레복)는 신상이네' 거울로 비치는 온갖 것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남에 대해 생각하고, 주눅 들곤 했다. 주변의 작은 변화가 생기면 날이 섰다. 새로 온 사람이 적응을 못해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으면 짜증 났고, 전날 과식으로 살이 좀만 쪄도 자괴감이 들고, 나보다 좀 더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또 짜증이었다. 그때 내가 배운건 발레가 맞을까.
발레 욕심은 많아 완벽하게 동작을 하지 않을 바엔 춤을 추지 않겠다고 혼자 으르렁 거리고 있던 날. 한 동료가 말했다. "춤에 정답이 어딨어, 움직이면 다 춤인 거지, 배추 씨는 팔다리도 길어서 그냥 흐느적거려도 춤이야. 자신 있게 해" 동료가 그 말을 하자 다른 동료들과 선생님도 일제히 달래고 응원하며 휘젓고 싶은 대로 움직이라고 말했다. 평소 조용하던 동료들이 합창하듯 말한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응원에 이끌려 발레를 하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그냥 대충 배운 대로 휘저으면서 몸을 움직였다. 엉망진창이었던 동작에 동료 모두가 잘했다고, 뭐든 팔다리가 길어서 춤 같다고 깔깔거리면서 말해줬다. 그때서야 그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새로운 발레 세계가 열렸다. 옆에서 항상 인사를 해주던 동료도, 선생님이 계절에 알맞게 선곡한 음악도. 욕심을 버리니깐, 보이고 들렸다.
가끔 나의 발레 영상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거나 시범을 보이면 다들 실망한다. 누군가는 그게 무슨 발레냐고, 11년을 배웠는데 백조의 호수 작품 같은 것도 하나 못하는 거냐고 말하기도 한다. 맞다. 발레리나 흉내 조차 못한다. 하지만 11년을 취미로 발레를 배우면서 춤추는 것 그 이상으로 그 세계를 관찰하고 몸으로 느끼고 있다.
다른 사람의 몸짓을 겸손하고 벅찬 마음으로 감상하는 것도 발레를 배웠기에 갖게 된 태도다. 지난 10월은 좀 바빴다. 전 세계의 발레 데이가 있어, 유명 발레단의 발레 리허설들을 실시간 유튜브로 볼 수 있다. 이를 챙겨 보고 따라 하면서 밤처럼 알토란 근육을 만들었다. 곧 크리스마스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발레를 하면 늦가을부터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선율에 맞춰 춤을 추고, 호두까기 발레 공연 예매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음악이 바뀌고, 새로운 무대가 열리고, 이를 함께 취미 발레 동료들과 이야기하며 올해 우리 발레 때문에 잘 버텼다고 다독이는 11월의 시작. 내년에도 잘 발레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