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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완벽한 안전은 가능한가?

by 그로잉 그로브

학교에서 아이가 체육 시간에 멍이 들거나 찰과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런 이유로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가 늘고 있다. 이것은 당연하지 않다. 물론 자녀가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생활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학교가 사고를 완벽하게 예방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이들이 생활하는 학교는 역동적이고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20명 이상의 아이들이 서로 어울려 뛰놀고 배우는 장소에서 완벽한 안전을 보장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느 누가 와도 완벽한 안전은 불가능하다. 가정에서 부모가 단 한 명의 아이를 돌보아도 아이의 완벽한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교사에게 수십 명 아이들의 완전 무결한 보호를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기대이다. 학교에서는 정기적인 안전교육을 시행한다. 수업 중에도 틈틈이 지겨울 정도로 안전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고 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할 뿐이다.

아이들이 다치며 배우고 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어른들이 어린 시절 그렇게 컸듯이. 운동장에서 뛰어놀다 넘어지고, 체육 시간에 활동하다가 생긴 상처들을 통해 아이들은 스스로 조심하는 법을 배우고 몸의 한계를 인식한다. 그러나 악성 민원들로 인해 무사고에만 집중하다 보면 교사는 정적인 수업만을 계획하게 된다. 그로 인해 역동성과 창의성이 사라지면 아이들은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학교에서 무언가를 도전하는 기회가 없어진다면, 그 피해는 아이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물론, 학교는 학생들을 보호하고 안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일부 학부모는 아이가 다쳤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교사의 책임을 따진다. 이는 과연 공정한 태도일까? 아이들이 열심히 참여하다가, 혹은 실수로, 혹은 선생님의 주의사항을 듣지 않아서 등 수많은 변수에 의해 다칠 수 있는 것이다. 20명 이상의 아이들이 함께 있는 공간은 원래 그런 것이다. 교사 한 명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예측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는 교사들에게 과중한 부담을 줄 뿐 아니라, 교육의 질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전화기를 들기 전에 이해해 주길.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교사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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