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셀프 판매 양조장
"사장님이 안 계시는거 같은데?"
가게에 들어서서 이곳저곳 사장님을 수색했지만 계시지 않았다.
"여기 셀프로 돈 내고 사가면 되는 것 같은데?"
"요즘 그런 가게가 어디 있는데 ... 여기있네..?!?"
평소 주종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술을 맛보는 것에 취미가 있던터라 다른 지역으로 놀러가게 될 때면 남들이 카페, 맛집, 명소 중심으로 찾을 때 나는 꼭 양조장을 함께 찾곤 한다. 내가 마시게 될 술이 제조되는 곳을 마주하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고, 소비자 입장에서 가격이 합리적이기에 방문할 맛이 난다.
여느때와 다름 없이 경남 소재의 한 지역으로 놀러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근처에 위치한 양조장을 찾았다. 주변의 다른 도시에 비해 인구가 적은 지역이었는데, 그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동네는 한적함과 적막함이 공존했다. 양조장이라고 하기엔 작고 허름한 건물, 근처에 주차를 하면서도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곳이 맞는지 수 차례 확인했다. 조용한 동네에 조용한 양조장으로 나도 모르게 '계십니까'를 낮은 소리로 읊조리며 조용히 들어가보았지만, 내 목소리만 들릴 뿐 사장님이나 다른 누군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냉장고와 쇼케이스에 막걸리가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찾아오긴 잘 찾아왔다며 집으로 업어갈 녀석들을 선별하기 시작했다. 막걸리를 고르는 시간까지 더해 10분이 넘게 기다렸지만 사장님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셨고, 이내 곧 테이블 위에 적힌 "무인 셀프 판매중"이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무인 셀프 판매"라는 단어만 본다면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이 시대에 아주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실제로 요즘 대도시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밀키트, 반찬 등을 진열해놓고 파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하지만 이곳은 그것들과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계좌이체를 할 수 있도록 계좌번호를 적어놓이시긴 했지만, 소위 '돈통'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카운터 금고가 자유롭게 열리도록 오픈되어 있었고 비닐봉지 등 다른 물품들 또한 손님의 자유에 모든 것을 맡긴 채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어릴 적 시골 할머니댁에서나 봤을 법한 '아날로그'로 가득한 곳이었다. 실제로 가게 내부에는 공중전화기, 표어, 포스터 등 옛날 물건들이 그 당시 모습을 온전히 보존한 채 공간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처음엔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반화되는 과정에서 비대면 판매를 하시는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얼마 되지 않는 후기를 찾아보니 그런 이유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양조장에서의 막걸리 가격은 많이 저렴하기에 2병 남짓 구매하면 몇 천원 수준의 금액 밖에 되지 않는다. 동네 어르신 분들을 주 고객으로 하여 크지 않은 금액이 오가는 거래이기에 서로간의 '믿음'과 '신뢰'로 만들어진 모습은 아닐까 생각했다. 어쩌면 작고 허름한 시골 양조장의 당연한 거래방식일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낯설고 괜한 걱정과 의심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요즘 사회에서 이런 '믿음'과 '신뢰'를 찾아볼 수 있을까. 만약 찾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최근 어떤 프로그램에서 외국인을 인터뷰 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외국에서는 음식점이나 카페에 갔을 때 잠시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를 비울 때에도 도난 우려에 물건을 모두 챙겨서 다녀오지만,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지품을 자리에 두고 간다며 너무 좋은 나라라고 부러워했다. 그리고 며칠 뒤 카페에서 자리 비우는 사람들만을 표적으로 물건을 도난하는 범죄가 최근 들어 늘어나는 추세라는 뉴스를 봤다. 우리나라 문화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이 밖에도 상호간의 '믿음'과 '신뢰'의 결여에 대한 사회적인 이슈는 의외로 많다.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편리한 부분이 생기는 만큼 사회적인 약속이 수반되어야 할 부분도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그런 것들의 대부분은 사회적 약속이 되기 전까지는 우리들 서로간의 '믿음'과 '신뢰'에 기반하여 흘러간다. 사회적 약속이 생기게 되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들의 믿음과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하여 그것이 완전히 부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 아닐까.
타인을 얼마나 믿고 신뢰할 수 있는지 내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져보지만, 이 양조장이 어느 지역에 위치한 양조장인지 얘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믿음'과 '신뢰'가 부족하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말해주는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