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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생 Oct 29. 2024

[제10화] 꼬박꼬박 맞고 싶은 예방접종

23  10. 22. (화)

어제는 비가 와서 가지 못한 병원에 간다. 원격으로 접수하는 똑닥 어플을 처음 사용해 본다. 대기번호 18번. 넉넉잡아 1시간 반쯤 예상하고 아이들을 먹이고 입혔다. 30분이 지나지 않았는데 대기번호 8번. 부랴부랴 유모차에 태우고 밖을 나서니 칼바람이 매섭다. 어제 비가 오고 기온이 확 떨어졌다. 헐레벌떡 담요를 더 챙겨 엘레베이터를 타니 대기번호 3번이란다. 늦으면 2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나? 온갖 생각을 하면서 유모처를 밀면서 병원까지 뛰었다. 헐떡이며 들어서니 다행히 늦지 않았다. 대기 번호는 모두 15번이 넘게 쌓였는데 대기실엔 우리 뿐이다. 다들 원격으로 접수를 했나 보다. 접수만 하고 오지 않은 환아들이 많아서 순서가 금방 당겨졌나. 문진표를 쓰고 진료를 본 후 주사를 맞혔다. 첫째 유나는 찔끔 울다가도 뽀로로 밴드를 붙여주니 이내 그친다. 둘째 이나는 대성통곡을 하더니 병원을 나서도 그치질 않는다. 주사를 두 대 맞았으니 울음도 두 배가 되나 싶다.


집에 돌아오며 지난 달에 있었던 일화를 떠올린다. 유나를 하원시키며 함께 아파트 중앙 광장을 지나왔다. 초등학생,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오누이가 놀고 있다. 유나는 함께 놀고 싶은지 마냥 웃으며 뛰어 간다. 그 아이들이 낯설어 할까 조심스러워 아이 손을 잡아 채어도 막무가내다. 원형 구조물 앞에서 놀던 아이들은 유나가 다가가니 낯설어 한다. 유나는 다가가지 못하고 몇 걸음 떨어져서 눈치만 본다. 남자 애가 “으악 괴물이야” 하면서 도망치는 시늉을 한다. 동생으로 보이는 여자애도 괴물을 피하자며 도망친다. 괴물이 뭔지 모르는 유나는 같이 놀자는 줄 알고 웃으며 그 뒤를 쫓는다. 괴물이라니. 단어가 마음에 걸리지만 놀이로 보아야 하나. 원형 구조물을 몇 바퀴 돌며 놀던 아이들이 유나에게 저리 가라고 소리를 친다. 안 되겠다. 어리둥절한 아이를 안고 발길을 돌린다. "너희가 좋아서 놀자는 동생이야.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길 바란다." 이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 내 뒤를 쫓으며 "괴물아 저리 가"라고 소리를 지른다. 어이가 없어서 멈추고 뒤를 보니 보호자가 황급히 애들을 데려간다. 동남아시아 계열 외국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인인데 아이들의 엄마로 보이지는 않았다. 애써 눈길을 피하길래 한 마디 하려다 발길을 돌렸다. 눈치가 빤한 유나는 이미 기가 푹 죽었다. 아이를 달래고 집에 돌아와 일부러 더 밝게 놀아주었다.


사소하지만 불쾌한 일화가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학교 폭력 사안 앞에서 이성과 합리가 흐려진 학부모님들의 마음이 이럴까 싶다.  아이를 낳으면 교사로서 성장한다는 선배들의 말도 떠오른다. 벌써부터 이러면 어쩌나. 아이가 자라며 더 힘든 일들이 많을 텐데. 그때마다 함께 힘들어야 하나. 이런 저런 고민일 때 유튜브에서 방송인 샘 해밍턴과 농구선수 전태풍의 대화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나는 우리 애들 개고생했으면 좋겠어" "개고생해야 나중에 인생이 편해진다. 아이들이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게 내 역할이다." 아이들이 죽을 때까지 내가 돌볼 수는 없다. 내가 없더라도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선 아이들이 꼭 성장해야 한다. 경험과 반성을 통해 인간이 성장한다는 존 듀이의 사상을 떠올려 보면 삶에 어찌 좋은 경험만이 있겠는가. 돌아보면 아프고 슬픈 경험이 성장통이면서 더 큰 자양분이 되더라.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건네니 아주대학교 조선미 교수님의 생각을 소개해 준다. 자존감을 위해 아이를 혼내지 않거나 실패하지 않게 하는 육아는 잘못되었다. 부정적 감정을 딛고 일어날 회복 탄력성을 길러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되어갈수록 오히려 부모가 곁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적다. 따라서 어린 나이일 때, 부모의 개입이 가능할 때 부정적 상황 또는 감정을 함께 해결하며 성장하는 교육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이 말을 들으니 어쩌면 그날의 일화가 예방접종 같다. 지금은 아이를 둘러싼 모든 어른들이 사랑을 건네지만 어울리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까닭 없이 미움 받는 일도 분명 생길 것이다. 끝내 이겨내더라도 힘들게 견디는 고통들도 분명 있겠지. 우리가 해줄 건 지금이나 그때나 곁에서 위로하고 안아 주는 것. 눈물을 닦아주며 쉬어갈 수 있는 품을 열어 주는 것. 한숨 돌리고 다시 이겨낼 힘을 내도록 북돋아 주는 것이리라. 더 건강해질 면역체계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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