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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생 Nov 14. 2024

[제11화] 잠 못 이루는 밤, 깨지 못하는 낮

24. 11. 05. (화)

지난 주말부터 아내와 둘째가 아프다. 두 사람 모두 심한 코감기에 걸렸다. 나와 첫째도 콧물이 나긴 하지만 두 사람만큼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바람이 더욱 차가워지는 시기인지라 며칠간 외출을 삼갔다. 아내가 감기에 걸렸으니 잠도 아내와 둘째가 함께 자는 게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코감기로 밤새 뒤척이며 칭얼대는 둘째를 체력이 떨어진 아내가 돌보기엔 한계가 있었다. 둘째와 자노라면 아침마다 서너 시간을 뻗어 버리는 아내를 위해 내가 전담을 자청했다. 그리고 나도 나자빠졌다. 고작 이틀 만에.


첫째와 둘째의 수면 주기가 다르기에, 우리는 각자가 서로 다른 방에서 한 명씩 데리고 재워왔다. 시기에 따라 우리 부부가 선호하는 짝꿍도 달라졌는데 둘째 출산 초기에는 새벽 수유를 해야 하는지라 첫째 유나가 선호 짝꿍이었다면, 100일 전후로 둘째 이나가 통잠을 자면서부터 재우기 더 쉬운 이나를 선호하게 되었다. 그리고 요새는 비교적 푹 자는 첫째 유나와 함께 자는 걸 더 좋아하고 있다. 둘째는 잠꼬대로 발을 구른다. 아랫집에서 올라오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누워서 다리를 내리칠 때마다 침대가 울리는데 심하면 어른 침대로 올린다. 까닭은 다리 근육이 발달하면서 뻐근한지라 이런 행동을 하게 된단다. 이나의 다리 두께는 소아과 선생님이 놀랄 정도로 빠르게 발달되는 중이다. 또한 이나는 쪽쪽이를 물고 바로 누워서 가벼운 천을 얼굴에 대어야 잠에 드는 습관이 있다. 하룻밤에도 서너 번은 자다 엎드려 깨는데 그때마다 그 자세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처음엔 좁쌀 이불로 눌러 주었는데 어느새 모래주머니로 훈련한 것처럼 잠결에도 거뜬히 이불을 차 버린다. 사지(四肢)도 허리도 힘이 여간하지 않다.


이런 녀석이 코감기를 앓으니 누런 콧물에 코가 막혀서 더욱 잠 못 든다. 같이 자는 우리는 말해 무엇할까. 아이 상태를 지켜보아야 하니 귀마개도 쓰지 못하는데 잠꼬대로 앵알거리는 소리는 또 얼마나 큰지. 힘도 세고 목청도 크니 장군감이다. 근데 장군이 엄마 아빠를 잡으니 이걸 어째. 이틀을 연속으로 이나와 밤을 새우니 머릿속이 엉망이다. 첫째를 등원시키고 9시부터 1시까지 기절하듯 잤다. 간단한 집안일을 하니 어느새 첫째의 하원 시간. 저녁을 먹고 하루가 허망하게 지나간다. 닷새를 이렇게 지내니 생활 리듬이 완전히 깨졌다. 운동도 하기 싫고 식사도 불규칙적으로 아무렇게나 하게 된다.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아서 휴대폰을 보고. 물론 애써 자려해도 뒤척이고 찡얼거리는 소리에 곧 깨고 말지만.


어제는 마음을 먹고 오전 내내 집안일을 했다. 샤워를 하고 둘째와 함께 카페에 갔다. 고맙게 낮잠에 빠진 이나를 옆에 두고 오랜만에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신변잡기가 아닌 의미 있는 주제로 대화를 하면서 우리 생활부터 다잡아보자고 결의를 했다. 어린이집에서 첫째를 데리고 집에 돌아와서 운동을 시작했다. 본디 중량 운동을 하는데 이번 주는 계획이 틀어졌으니 맨몸 운동으로 바꾸어 턱걸이와 평행봉을 한다. 옆에서는 아내가 유튜브를 보며 타바타를 한다. 규칙적인 생활의 키스톤으로 역시 운동만 한 게 없다. 맑아진 마음으로 밤새 이나를 면밀히 관찰했다. 단순히 잠이 안 오는 경우엔 놀리고 숨을 못 쉴 땐 깨울 각오를 하고 콧물을 뽑아 주었다. 울다가도 숨이 뚫리니 이내 잘 잔다. 틈틈이 눈을 붙이려 애쓰니 나도 네댓 시간은 잔 듯하다. 덕분에 오늘은 우리 둘 다 오전을 누렸다.


지난달 있었던 친구네 이야기가 떠오른다. 아들이 둘인데 큰 아이는 폐렴에 걸리고 작은 아이는 넘어져서 아래턱에 구멍이 났단다. 부부가 재직 중인 상황이어서 연차와 반차를 내고 병원을 누볐다는 이야길 들으며 함께 마음이 아팠다. 아픈 자식을 놓고 마음 아프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을까. 지용 시인의 <발열(發熱)>에서 화자는 애자지게 우는 자식의 모습에 애가 끓는다. 우리 또한 첫째 유나가 백일도 되지 않아서 감기로 앓을 때 그 옆에서 잠 못 들며 애태우던 겨울 저녁이 있었다. 이제는 그래도 경험이 생겨서 간단한 코감기 정도로는 그러려니 하는 여유도 생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조급함과 별개로 간병의 고단함은 여간 익숙해지지를 않는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는 나를 볼 때마다 늘 건강을 묻곤 하셨는데 그 안부에 담긴 마음을 이제 조금 더듬어 보는 듯하다. 올 겨울이 춥다는데, 이번 코감기를 끝으로 아이들이 더는 아프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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