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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살림 고치는 남자

25. 09. 30.(화)

by 영글생

결혼할 때 장인어른이 사 주신 우리 집 침대는 원목으로 만들어졌다. 배송 기사님을 절절매게 할 때부터 존재감이 묵직했다. 누운 상태에서 오른쪽 아래 편에는 선풍기나 온수매트를 번갈아 넣고 왼쪽 아래에는 서랍장이 있어서 속옷과 가벼운 옷들을 보관해 왔다. 결혼 후 여태 잘 썼는데 어느 날부터 아래쪽 서랍장이 삐걱거린다. 뭔가 빠졌는지 여닫을 때마다 쓸리는 소리가 난다. 한참을 그렇게 그냥 썼는데 이번엔 위쪽 서랍장이 주저앉는다. 하판의 받침대가 빠져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아래쪽 서랍장도 뜯어보니 마찬가지로 하판의 받침대가 떨어져 있다.


서랍장은 4면이 목재로 둘러졌으며 하단부에 홈이 파여 있어 그 틈새로 하판이 끼워져 있다. 그리고 수납물의 하중에 의해 하판이 쳐지는 것을 막고자 한옥의 '대들보'처럼 받침대를 박아 놓았다. 이 받침대가 빠진 데다가 4면으로 둘러진 측면 목재의 이음매에도 균열이 가 있다. 어찌 수리를 할까. 전동 드릴을 이용해 받침대를 나사못으로 고정했다. 다이소에서 산 나무 모니터 받침대를 톱으로 잘라서 측면 목재에 덧대고 나사못을 박아 넣었다. 의기양양하게 수리 완료를 선언하고 며칠이 지났을까? 서랍을 열었더니 받침대가 무너져 있다. 속옷 위는 부스러기 범벅이다. 이음매가 으스러졌다.


부서진 서랍장. 보강한 나사못을 견디지 못했다.

원목으로 만들어진 침대 뼈대 및 외장재와 달리 서랍장 내부는 PB라는 가공목으로 만들어졌다. PB(Partical Board)란 톱밥이나 원목 부스러기를 접착제와 섞어서 압착한 가공목이다. 원목에 비해 내구성이 약하다는 점, 그리고 가공목의 강도에 맞지 않는 큰 못을 사용한 점이 패착이었다. 목재가 무너지니 손쓸 방법이 안 보였다. 그때 얼마 전 친구가 해 준 말이 떠올랐다. 자기 집 부엌 찬장을 DIY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였다. 치수를 재어 온라인 목공소에 알려주면 목재를 보내주는데 조립만 했단다. 찬장도 만드는데 서랍장을 못 만드랴. 온라인으로 목재 가공 사이트를 찾아서 주문을 넣었다. 미송목 원목으로.


배송된 목재와 수리를 마친 서랍장. 하판을 끼우도록 홈을 핐다.


결과적으로 서랍장 보수는 성공적으로 마쳤다. 생각보다 목재의 두께가 얇았지만 나사못이 아닌 철사못을 주로 사용하고 나사못이 필요한 곳에는 작은 못을 써서 목재에 가는 부담을 최소화했다. 하판은 원래 쓰던 걸 그대로 다시 썼고 받침대는 꺽쇠를 이용해 나사못을 박아 고정했다. 레일이 좀 뻑뻑한데 먼지를 닦고 구리스를 뿌리니 아주 부드럽다.


결혼한 지 5년이 넘어가니 슬슬 고칠 것 투성이다. 세탁기에는 유연제 부족 알림이 자꾸 뜬다. 보충해도 금세 사라지는 걸 보니 노즐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서비스 센터에 전화해서 부품 입고를 요청해야겠다. 기존에 타던 자동차도 점점 손볼 것이 많아진다. 타이어도 모두 바꾸고 미션오일도 갈았다. 엔진오일이 많이 소모되는 모델인지라 2~3000km 탈 때마다 소모된 만큼 보충도 해줘야 한다는 걸 최근에 배웠다. 비가 오면 베란다 창호 아래 줄눈으로 물이 샌다. 실리콘과 방수액으로 보수를 하려 해도 주말이면 비가 와서 손을 못 대는 중이다. 아이들이 자라고 계절이 바뀌면 옷도 물건도 주기적으로 정리를 해야 하는데, 몸은 하나건만 할 일만 는다.


초임 시절 자취를 시작한 우리 동기들에게 당시 교장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생활은 적응이 되나요? 공구함의 못 하나도 거저 있는 게 없지요?" 못 하나조차 누군가 마련해 놓았으니 집에 있는 것이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별다른 생각 없이 흘려 들었던 말씀인데 살다 보니 자꾸 생각난다. 이번에도 작은 나사못과 꺽쇠가 없어서 배송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렇게 우리 집 공구함에도 종류별로 못이 갖춰지는 중이다. 우리 살림의 내공이 두터워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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