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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다시 뚜벅이가 되었다

25. 09. 01. (수) 차량 구매 과정(1)

by 영글생

2학기부터 아내가 복직을 했다. 아침이 분주하다. 부부의 출근과 아이들 등원을 함께 준비하기가 녹록지 않다. 전날 미리 식기나 물병, 기저귀 등을 챙겨 놓더라도 연장반 시간 동안 먹는 추가 간식은 상할까 봐 아침에 챙겨야 한다. 아이들 호불호가 명확해서 간식 메뉴를 고민하는 아내의 고심도 매일 피어난다. 부부의 짐과 아이들 가방을 손 카트에 싣고 한 명씩 안고 달린다. 잠이 덜 깨서 투정이 심해지면 진이 빠진다. 서둘러도 매일 시간에 쫓기는데 9월 중순까지 엘리베이터 공사까지 겹쳐서 더 난리법석이다. 간신히 어린이집에 밀어 넣으면 이제부터 진짜 출근이다. 그런데 타고 갈 차가 없다.


아이들이 생기기 전까지 우리 부부는 카풀을 했다. 결혼하며 전근한 학교가 마침 바로 붙어 있었다. 통근 시간은 조금 길지만 구형 아반떼 하나로 잘 다녔다. 아이들이 생기고 나도 아내도 학교를 옮겼다. 조금 돌아가면 내가 아내를 내리고 출근할 수 있다. 그런데 퇴근이 문제다. 아내는 중학교여서 근무시간이 30분씩 당겨졌다. 반면 고등학교에 있는 나는 정시에 퇴근해야 한다. 이동 시간 고려하면 아내는 퇴근 후 1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고 그만큼 아이들 하원이 늦어지게 되니 아내에게 차키를 넘겼다. 아내 학교 근처까지 같이 간 후 거기에서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퇴근은 버스와 지하털로. 운이 좋으면 50분, 나쁘면 30분이 더 걸린다. 결혼하고 운전을 하다가 오랜만에 뚜벅이가 되었다.


그전에도 회식이 있으면 이따금 차를 놓고 출근하긴 했지만, 일상이 되고 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우리 학교는 지하철 역에서 3km 떨어져 있다. 역과의 거리도 애매하지만 지하철과 버스 모두 20~30분 간격으로 배차가 이루어져 있어서 하나라도 놓치면 시간이 꽤 늦어진다. 지하철이든 버스든 환승도 한 번 해야 하는데 배차 간격으로 인해 늦어지는 건 비슷하다. 날도 참 더워서 퇴근 후 옷을 갈아입으면 속옷까지 땀에 젖었다. 게다가 비라도 오면 참 곤란하다. 2학기 개학 이후로 비가 자주 왔다. 꼭 주말에는 안 오고 주중만 골라서 내리는 게 나를 약 올리는 것 같았다. 쿠팡에서 장화를 하나 샀다. 그래도 그거라도 있으니 마음이 좋 놓인다.


사실 차를 미리 구매할 기회가 있긴 했다. 아내가 2학기부터 출근을 할 예정이었으니 1학기말부터 여름방학 동안 알아보지 않았던 건 아니다. 문제는 방학 중 장기 출장이 잡혔던 데다가 집안일들이 산적하였던 것. 게다가 차량 구매를 위해 알아보아야 할 조건들은 왜 그리도 다양한지. 이번에 구매하면 꽤 오랫동안 온 가족이 쓸 텐데, 정해진 예산과 차량의 모델 그리고 옵션을 고르는 데에 온갖 고민을 하게 되었다.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니 조심스러운데, 고민할수록 새로운 선택지가 생겨나니 결정이 점점 미뤄진다. 그러던 중 몹시 운수가 나쁜 아침을 맞았다.


간단히 요약하면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 중인데, 우리 집은 21층이다. 그리고 그날 아침에 주차장에 나오고서야 아이들 등원 가방을 놓고 온 것을 알고 집에 다녀왔다. 그리고 차키를 놓고 온 것을 깨닫고 또 한 번 더 다녀왔다. 온몸이 땀범벅에 하필 월요일인지라 낮잠 이불까지 챙겨야 해서 짐도 한가득이다. 그 유난을 떨었으니 지각할까 봐 택시도 탔다. 신중이고 뭐고 열불이 나서 바로 구매할 수 있는 중고차 매물을 보던 중 눈에 들어오는 차가 있어서 곧장 계약금을 넣었다. 초임지 동료 선생님이 3월 첫날 읍내에서 버스를 40분 기다리다가 바로 차를 샀다는 이야길 들었는데, 내가 딱 그 꼴이다.


초임 시절에 뚜벅이로 교육청 출장을 자주 다녔다. 가평에서 화성까지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새벽 6시부터 버스를 4대 갈아타야 오후 1시까지 도착할 수 있었으니까. 합숙을 하려면 캐리어에 잡동사니까지 한가득 메고 들고 밀면서 다녀야 했다. 같은 방을 쓰던 선배가 혀를 내둘렀는데, 당시엔 별 생각이 없었다. 평생 뚜벅이로 살았으니 그게 당연한 거였다. 최근 그 선배와 아침에 출근하며 안부전화를 하였더니 그때 이야길 꺼낸다. "형, 이제 차 없으니 힘들어. 배에 기름이 끼었나 봐." 편해지는 건 쉬워도 다시 불편해지는 건 어렵다. 감탄고토라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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