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도 속일 수 있다
6년 만에 가장 바쁜 한 주를 보내고 있다. 나 자신에게 충실하고 하루를 후회 없이 살기로 한 다음 해의 시작이라 그런가 지인들과의 약속이 연달아 잡혔다. 고등학교, 대학교, 어린이집 친구 엄마까지 만남의 관계도 다양했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혼자 있는 시간이 갑자기 줄어서 그런지, 약속을 취소할 핑계들이 생각났다. 마침 요가 학원도 이번주 시작이라 부담이 가중됐다. 사람과의 접촉에서 오는 유대감을 원하면서도 막상 "그럼 언제 볼까?"의 본격적인 질문에는 밀당을 하는 못된 심리가 발동한다. 짝꿍은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만남인데 식사 준비 같은 건 알아서 할터이니 나가보라고 격려했다.
어제는 대학교 첫 MT에서 알게 된 동기와 만나기로 했다. 술을 못 마시는 그녀 옆에서 대신 벌컥 마셔주고 사는 동네가 같아서 집으로 같이 다니다 정이 들었다. 친구는 말수가 적고 차분했는데, 왠지 편한 분위기에 가족과의 갈등, 대학 선배에 대한 짝사랑, 학업에 대한 고민, 묻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털어놨다. 매일 만나다 보니 나중에는 노부부 마냥 할 말도 없다. 수업이 끝나면 종로의 카페에 앉아 각자의 할 일을 하다 심심해지면 스도쿠로 마무리했다. 아직 싱글인 그녀와는 사는 생활환경이 많이 달라졌음에도 2년 만에 보는 얼굴이 어색하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다 MBTI 성격 검사 결과를 물었다. 10분 내외의 간이 검사도 귀찮아서 미루다 결국 그 자리에서 하게 됐다. 결과는 'INFJ', 친구는 'ISFJ'.
"오, ENFJ 야?"
"E? 아니야, I 나왔는데?"
"I라니? 너 극단적 외향이잖아 ㅎㅎ"
"아니야! 나 완전 I 거든. 사람들 만나고 나면 피곤해하고, 4명 이상 모이는 자리에서는 말도 안 해."
"아닌데, 대학교 때 아는 사람도 많고, 나랑은 차원이 달랐는데."
"이따 남편한테 물어봐바. 나 찐 내향임."
아이를 하원시키고, 집에서 남편을 만났다.
"나영이요? I 맞아요."
"네? 이상하다. 원래 안 그랬는데."
"내 말 맞지?"
"근데 직장 동료들은 나영이 다 E라고 하긴 했어요 ㅎㅎ"
3년간 다닌 회사에서 남편을 만났다. 소규모의 가족적인 분위기라 점심시간에는 탁구를 치고 주말에도 자전거를 타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녔다. 그들은 나를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보고 있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누군가를 만날 때 쉬이 약속을 잡은 적이 없었다. 마지막까지 바쁜 척 미루고 고민하다 마지못해 끌려가듯 만났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입을 벙긋대다 이미 다른 주제로 넘어가 눈치 보며 열린 입을 닫았다.
중학교 때로 거슬러 가보자. 두 살 위인 오빠가 성적 장학금을 타는 게 부러워 중간고사 전까지 열심히 공부를 했다. 반에서 5등. 쉬는 시간에도 공부한다고 유난이었는데 성적이 생각보다 안 나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만 혼자였다. 이미 짝들이 정해진 뒤라 점심시간, 체육시간, 이동수업을 누구와 함께 해야 될지 어려웠다. 혼자 멀뚱하게 있는 쉬는 시간이 싫어서 자는 척 엎드렸다. 다음 학년이 되자 적극적으로 친구 맺기에 돌입했다. 고등학교 때는 옆, 뒤, 앞, 먼저 아는 척을 하며 통성명을 했다. 3년 전 같은 반이었던 아이가 한 명 있었는데, 대화를 나누면서도 과거 같은 반이었는지 모를 정도로 성격이 변해 있었다.
새로운 환경을 맞이할 때마다 의도적으로 기분을 띄었다. 목소리도 한 음 올려 밝고 활기가 넘친다. 며칠은 계속된다. 관계가 어느 정도 형성되면 범위를 넓히지 않고 본래의 자아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나의 첫인상에 속았다고 해야 되나. 원래 내성적이었던 성격을 필요에 의해 인싸의 삶으로 둔갑시켰다.
나는 I이지만 노력에 의한 일시적 E형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E 형과 좁고 긴밀한 관계를 맺는 I형 중 어떤 성격을 원하는가? 새로운 인연을 맺는 어려움에 부딪혀 획득한 또 다른 나. 나에겐 둘 다 소중한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