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미는 뭘까?
겨울이 시작된 지 꽤 되어 추위에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대한이 지난 오늘은 달랐다. 찬 공기가 스쳐간 얼굴이 에이는 듯했다. 영재를 문화센터에 보내고 적당히 앉아 책을 볼까 했는데 빈자리가 없다. 바쁘게 움직이는 인파들 속에 한가로이 앉아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갑작스러운 한파를 피해 들어왔나 보다. 옆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활기 속에 드문 핸드폰을 보거나 무료하게 계시는 분들이 있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뭐해요?"
"뭐 하긴, 텔레비전보지."
"목소리가 잠겼네? 감기 걸렸어요?"
"아니. 누워 있어."
"추워도 좀 움직이고 그래요"
"알았어."
엄마는 이야기가 끝나간다고 예상이 되면 얼른 종료 버튼을 누른다. 오늘도 뭐가 바쁜지 미처 다 떨지 못한 수다 사이로 뚜뚜뚜 종료음이 울렸다.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일도 하시고, 틈틈이 취미활동도 하셨다. 사물놀이와 한국 무용은 무대에서도 공연을 했다. 객석에 앉아 빛나는 엄마의 모습에 감탄했다. 나도 저런 중년의 모습으로 늙고 싶었다. 지금은 몸이 아프시다며 마지막으로 배우던 하모니카를 그만두고 병원만 찾아다니신다.
어느 날 남편이 물었다. "여보는 하고 싶은 거 없어?" 좋아하는 게 확실한 내 짝은 하고 싶은 게 많다. 못다 한 영상 공부, 여행, 피아노 연주. 지금은 생계를 책임지느라 꿈을 묻어 두고 살지만, 준비되는 그때에는 지금보다 더 바쁘게 살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제한된 시간이지만 충분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음에도 딱히 관심이 없다. 취미가 없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결국 둥지를 떠난다. 남편과 함께여도 좋지만 나 혼자서도 하루를 꾸밀 수 있어야 한다. 그때는 몸도 여기저기 아플 테고, 세상에 대한 흥미도 더 줄었겠지. 지난번에 카페에서 일하고 싶다며 알바 공고를 살펴본 적이 있다. 경력도 없는데 나이도 많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볼까 기웃거리다 이 나이면 사장 아니면 힘들지 하며 포기했더랬다. 지금도 시작하기 전에 기권을 하는데 나중에는 어떻게 될까.
오늘이 가장 젊은 때다. 한 개라도 취미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날이다. 근데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 나를 먼저 잘 알아야 한다는데, 과연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인터넷에 떠도는 남의 버켓 리스트를 훔쳐 내 것 마냥 적어본다. 배우고 싶었던 두 가지, 폴댄싱과 스쿠버다이빙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는 파랗고 초록색 눈을 가진 외국인과 말할 때 짜릿함을 느꼈었다. 겉으로만 멋있어 보이지 막상 해보면 어려워서 포기할지도 모르는 것들이다. 그래도 내가 관심 가진것들이 있긴 하구나.
방금 또 하나가 생각났다. 암벽 등반. 가족들과 한강에 나갔다 인공 암벽을 등반하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쳐다본 적이 있다. 이런 호기심을 눈치채는 게 나를 알아가는 시작이겠지. 늦기 전에 해보자. 경험해 보고 내 취미 리스트에 올릴지 말지 결정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