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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초롱 Jan 19. 2024

장애 아들을 키웁니다

그래도 사는 게 낫잖아요

영웅이가 세상 밖으로 나온 지 23일째에 패혈증에 걸렸다. 아직 엄마의 자궁 속인 듯 깨어있는 시간보다 꿈꾸고 있는 시간이 많았을 때였다. 젖을 먹겠다고 일어난 아기의 까만 눈동자를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젖가슴을 풀어헤치고 손가락으로 양쪽 볼을 번갈아 툭툭 건드렸다. 작은 입이 좌우로 삐죽거렸다. 아직은 사람인지 인형인지 모를 형체가 내 몸에서 나왔다는 게 신비롭고 낯설었다.


40도로 뜨겁게 온몸을 달구던 그날은 주말이었다. 택시를 타고 여러 군데를 돌다 한 대학병원의 응급실에 도착했다. 이전의 미적지근하고 미흡한 조치와의 다르게 재빠르게 일이 진행되었다. 중환자실로 입원한 아기는 두 달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루에 오전, 오후 두 번씩 30분 면회가 가능했다. 유축기로 짜낸 모유를 들고 갈 때마다 의사는 최악의 경우를 담담하게 알려 줬다. 패혈증에 걸리면 10분 만에 사망하기도 하는 사망률이 높은 질병으로 치료가 되더라도 영구적인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영웅이는 의사가 지목한 가장 지독한 세균에 걸렸다. 균은 뇌에 침투했으며 매일 경련을 하며 생사를 오갔다. 다른 아기들이 신생아 중환자실에 짧게는 이삼일, 또는 일주일 정도 머물다 부모의 품으로 돌아갔다. 우리 아기는 먹은 것도 없는데 인큐베이터에 있기에는 커 보일 정도로 자랐다. 뇌 MRI를 통해 손상된 상태를 확인했다. 공격받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지만 외부적으로 눈이나 귀 등 신체에 문제는 없다고 했다.


 2인실로 옮겨 3주의 시간을 더 보냈다. 첫 아이라 어떤 행동이 정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이상했다. 내가 아무리 음치라고 해도 부르는 노래에 반응이 없고, 초점 맞추기가 아직 안 되는 나이라지만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회진을 도는 의사에게 물어 추가 검사를 해보기로 했다. 의사표현이 가능하지 않으므로 빛과 소리에 대한 뇌의 반응을 살폈다. 표면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뇌로 전해지는 신호가 일반적이지 않았다. 정상이지만 거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상황이었다.


딱 숨만 붙어 있었다. 목숨을 건졌지만 지독한 후유증으로 사는 의미는 무엇일까. 혼자서는 먹지도 똥오줌도 못 가린다.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뭐가 필요하다 말도 할 수 없다. 암흑같이 조용한 세상에서 무슨 재미로 그 빌어먹을 삶을 이어갈까. 누군가는 불치병을 진단받고, 장애아를 키우다 비관하여 본인과 가족의 생을 마감한다. 매 살아 숨 쉬는 순간이 고통이었을 테니, 다가오는 미래에 잔인함만 남았으니까.  


아기가 어떻게 성장할지는 신만이 알 수가 있었다. 기적을 바라보라고. 정말 절반의 뇌로도 노래를 부르고 휠체어의 도움을 받아 세상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이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벌려진 입에 내 젖을 매번 물렸다. 헛된 희망을 꿈꿨다. 아기는 커가며 어떻게든 이유식을 먹어줬고, 내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여러 번 부르다 보면 마치 답가를 하듯 여러 번 소리를 내주었다. 재활 선생님은 미심쩍어하다 증거로 찍어둔 동영상을 보고서야 같이 감탄을 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그래도 삶의 의미를 찾아본다. 영웅이와 나의 삶. 태어나기 전에 하늘에서 우리를 눈여겨봤을 영웅이를 떠올렸다. 자신의 미래를 이미 알았을지도 모른다. 이런 자신을 받아줄 사람, 자책하지 않고, 꿋꿋하게 견뎌 자신을 사랑해 줄 부모를 찾았을 것이다.


나의 신혼은 더없이 행복했다.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고 느꼈다. 나만 보면 좋다고 웃어주는 내 짝과 함께였다. 빌려 쓰는 오래된 빌라지만 직접 페인트칠을 하고, 입주자들을 모아 정기적으로 빌라를 청소할 수 있도록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뭘까에 대한 고민을 할 여유가 생겼다. 어렸을 때부터 궁금했던 연극 수업을 듣고, 취미로 배드민턴을 쳤다. 위에서 바라본 영웅이는 우리 부부가 참 좋았겠지.


영웅이가 행복이가 되어 나에게 왔다. 남편은 점심시간마다 회사에서 달려와 내 점심을 차려줬다. 심한 입덧 때문에 매번 혼자 음식을 처리해야 했지만. 날이 좋으면 서울숲을 산책하고 골목의 맛집들을 기웃거렸다. 육아용품을 중고로 구입하고 돌아오던 날, 5천 원짜리 수박을 두드려보다 한 통을 구입했다. 여름이 다 지나가는데도 비싼 과일들은 사치처럼 보였다.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못 참고 수박을 쪼갰는데 회오리 모양이 있는 썩은 수박이었다. 실망도 잠시, 멀쩡한 부위를 골라 좋다고 맛봤다.


더 이상의 기적은 없어 보인다. 없다라고 정의하려고 했는데 '아직은 어리잖아'라고 마음이 반발한다. 그래. 지금보다는 조금만 더 좋았졌으면 하는 한 톨의 희망 정도는 남았다. 정상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변화가 있겠지만 그게 나쁜 쪽은 아니길 바란다.


계속 되풀이되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었다. 있을 수 없는 미래를 상상하는 게 괴로웠다. 일말의 사건으로 삶이 멈췄다. 그렇다고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원대한 의미는 아니더라도 나와 가족들을 위해 하루를 소중하게 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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