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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초롱 Jan 30. 2024

화나는 마음도 내 감정 (7)

13회차 상담 중 _ 앓지만 말고 표현하기

미뤘던 일들을 하나씩 실천하는 중이다. 이번에는 핸드폰 요금제 변경을 할 일 목록에 올렸다. 하루 중 전화가 오는 건 짝꿍, 반대로 내가 전화를 걸 때는 엄마 정도로, 광고나 스팸 따위의 울림이 더 많은 존재이지만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다. 2년 약정 기간이 지나 알뜰 요금제로 변경한다는 게 벌써 3개월 전이다. 어떤 통신사를 할지, 또 어떤 요금제를 할지, 고민만 하다 시간이 흘러 또다시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이게 뭐라고. 결정을 내릴 때까지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드디어 만원도 안 되는 요금제를 골랐다. 6개월 후에 다시 갈아타야 하지만, 한 달에 약 4만원 넘는 돈을 아낄 수 있게 됐다.


몇 시간째 불통이다. 유심 없이 가능한 eSIM을 선택했는데 뭐가 잘못된 건지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 집에는 전화기가 없었으므로, 남편에게 도와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나 대신 걸어준 전화는 끝없는 대기였고, 할 수 있는 거라곤 게시판에 글을 남기는 게 전부였다. '너는 혼자서 잘하는 게 뭐니!' 속에서 부글부글 열이 올라오고 있었다. 고요해진 마음으로 하루들을 채워 나가고 싶었는데, 오랜만에 맛보는 강렬한 감정에 양의 탈이 벗겨진 기분이었다. 그동안, 평온한 척, 괜찮은 척 해왔던 건 아닐까.


기분이 상하든, 안달이 나든, 결국 '나만 손해다'. 떨리는 손을 보니 아직 점심을 안 먹었구나 싶었다. 급하게 라면을 끓이고 즐겨 보던 유튜브를 켜 웃을 준비를 시켰다. 일 하다 말고 전화기를 붙잡고 있을 남편에게도 시간 낭비하지 말고, 기다리자고 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하원 시간 전에 핸드폰에서 개통되었다는 알람이 떴다.


아이의 체육 센터에 들렸다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저녁이었다. 내가 통제하지 못하고,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는 시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금 더 이기적으로 나를 챙기고 싶었다. 혼자 있는 게 지루할 정도로 많은 시간 확보가 중요했다.


다음날, 육아종합센터에서 빌려온 장난감을 반납하고, 빈손으로 나와 상담실로 향했다.



                                 13회차 상담 후



그날을 회상했다. 상담 선생님은 화난 감정이든, 좋은 감정이든, 머무르지 않고 결국 떠날 것이며,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오히려 화를 느끼지 못하고 억누르는 게 더 안 좋다고. 그렇다면 나는 나아가고 있는 거겠지? 감정일기를 쓰기로 했다. 긍정과 부정의 기분을 느꼈던 상황, 그 때의 감정, 생각, 신체변화,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적는 거다. 평범한 일상에서 느끼는 미묘한 감정들을 알아채기가 쉬울까? 한번 해보면 알겠지.


상대방의 눈치를 보고, 싫은 소리를 못하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다, 내가 좋은 사람이기를 바란다'라고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지 않은가. 이상하다고 의심이 가는 건 속으로 삭이지 말고, 당당히 나의 권리를 묻고 따져보기로 했다.


상담 일정에 이어 녹내장 검사를 예약한 안과에 갔다. 지난번과 다르게 사람이 북적거렸다. 불안한 마음으로 진료를 봤는데, 역시나 검사를 위해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이번에는 입 밖으로 말을 꺼내본다.


"저... 예약을 했는데 기다려야 하나요?" 지금 안하면 아이 픽업 때문에 그냥 돌아가야 할 것 같아서요."

"이 환자분, 검사로 예약한 거 맞나?"

"네, 검사 예약 맞네요."

"그럼 기다리시면 안 되지. 바로 검사할 수 있게 해."

"네, 알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지속적으로 들려오는 환자들의 불평소리들을 뒤로한 채, 무사히 시간에 맞춰 검사를 마치고 돌아갈 수 있었다. 타인의 상황이나 감정보다 나를 위해 소리 냈더니 상대방이 들어준 것이다. 물론 씨알도 안 먹히는 경우도 있겠지만 마음먹은 이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신기했다.  


따끈한 저녁밥을 먹으며 짝꿍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근데 언제부터 이렇게 말을 잘했어?"

"나? 원래 잘하지 못했는데?!"


코로나와 이사 문제로 첫째 치료가 중단된 적이 있었다. 선입금한 돈을 돌려받아야 되는데 몇 달을 끙끙거리며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가, 문자를 썼다가 지웠다. 어느새 내가 변했나.


이제 둘째의 등원도 어린이집 차량으로 보내볼까 한다. 나를 더 돌보고 싶다. 당당히 권리를 되찾고 싶다. 그동안 아이는 캥거루 주머니에서 꺼내도 될 만큼 잘 성장했다. 나와 아이의 관계를 재정립할 때가 왔다. 지금까지 규칙적으로 반복해 왔던 행동과 노력들이 의문으로 다가왔다. 잘못했던 건 아니다. 아이는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고, 거기에 맞춰 바꿀 때가 온 것 같다.


나도, 아이도, 한 뼘 더 자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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