뻣뻣함의 극치인 몸으로
최근 되지도 않는 요가를 다시 시작했다. 나름 운동 신경이 있어서 학창 시절에 했던 체육은 늘 A+이었다. 두 살 차이 오빠와 각종 공놀이를 즐겨해서 그런가 한바탕 뛰고 나면 흘리는 땀이 좋았다. 피구, 발야구, 배드민턴 등의 각종 구기종목부터 수영, 자전거 타기, 미친 듯 달리기까지 분야를 막론하고 우수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한 번씩 행하는 워크숍이 소풍 가는 날처럼 설레었다. 하지만 아쉬운 한 가지. 움직일 때마다 뚝뚝 소리가 나는 관절들이 막대기 마냥 뻣뻣하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에 다리 찢기에 열중한 적이 있다. 왠지 멋있어 보였달까. 도통 나아질 기미가 안보이기에 다리를 벌려 억지로 한번 밀면 되지 않을까. "악! 너무 아프잖아." 뭐가 잘못된 건지 이틀 넘게 제대로 다리를 땅에 디딜 수가 없어 쩔뚝거렸다. 행여 평생을 아픈 다리로 살아야 되는 건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구민체육센터에서 하는 요가 수업을 들어 보기로 했다. 차분한 분위기에 지루함은 뒤로하고, 어떻게 나만 동작을 못 따라 하는 것 같다. 앉아서 다리를 앞으로 뻗고, 상체를 쭈욱 숙이며 팔을 앞으로 뻗는 동작이 있다. 이것쯤이야. 손이 발가락에 찰랑 닿자 자동으로 허리와 무릎이 구겨졌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허리와 무릎을 폈더니 숙여지질 않는다. 벽 전체를 덮은 거울이 어정쩡한 내 모습만 쫓아 비추는 것 같아 얼굴이 달아올랐다. 당장 투명 인간이 되어 선생님이 나를 지목하지 않기를. 여태 운동 천재인 줄 알았는데, 나보다 못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요즈음 날이 저물기도 전에 피곤할 때가 많다.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 총량이 줄어든 기분이다. 아쿠아로빅, 점핑, 계단 오르기, 오래 즐길 수 있는 운동을 하나씩 맛보는 중이다. 예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플라잉 요가를 찾아봤다. 아쉬탕카, 빈야사, 하타, 있어 보이는 이름들 사이에 플라잉 수업이 있는 전문 요가이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었다. 바로 수업을 들을 자신은 없어서 즐겨찾기 해두고는 한 번씩 학원이 아직 잘 있는지, 새로운 후기는 없는지 찾아보다 공지사항을 봤다. 곧 가격 인상이 있을 예정이며, 그전에 새해맞이 할인 행사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래, 다시 도전해보자!
강사님에게 나의 뻣뻣함에 놀라지 말라고 언질을 줬다. 그럴 리 없겠지만, 시간이 흘러 자연스레 내 몸이 보통 사람만큼 유연해지지는 않았을까 일말의 희망도 품었다. 그나마 쉽다는 하타요가 수업이 시작됐다. 다리를 길게 벌렸다 한쪽 무릎을 접고, 양손을 평형하게 펼친다. 일명 '전사 자세'다. 쉬이 따라 한다 했더니 선생님이 다가와 자세를 수정한다. "다리를 더 벌리고, 무릎을 낮추고, 허리에 힘주고, 배 집어넣고, 좋아요!" 곧이어 후들대는 다리, 숨 쉬는 것도 잊었는데 어찌 적과 싸운다 말이오. 다행히 다음 동작으로 넘어간다. "누워서 양손으로 발을 잡고 얼굴을 넣으세요." '네?' 감히 되묻지는 못하고 옆을 곁눈질을 했다. 잡은 팔과 발 사이에 난 구멍으로 얼굴이 들어가고 있었다. 근처라도 가면 힘으로 욱여넣을 텐데, 누구 하나 타협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췄다.
영하 기온에 잊고 있던 땀 냄새가 스멀 올라온다. 보다 못한 강사님이 작정하고 내 옆에 섰다. 꼬릿한 냄새를 뚫고 꽃향기가 퍼진다. '저 정말 이게 다예요. 누르지 마세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표시로 인상을 써본다. 따라가지 못하는 동작들 사이로 온갖 속삭임이 들려온다. '도대체 이런 기이한 동작들은 누가 만든 걸까? 다들 소싯적에 서커스 단원 까지는 아니더라도, 발레 정도는 한 거죠? 앞에 계신 남자 두 분은 결혼하셨나요? 저 임자 있는 몸이니까 신기한 듯 쳐다보지 마세요. 수업 시간이 50분이던가, 60분이던가. 시계가 없네요.' 동작이 힘들어서인지, 창피해서인지, 얼굴이 수업 시간 내내 발그레 물들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세요. 잘하든, 못하든, 지금 요가를 하고 있다는 게 중요해요."
수강생 전체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유독 나에게 다가왔다.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이다. '어쩌지. 한 달은 짧은 것 같아 5개월이나 끊었는데, 환불 규정이 어떻게 되더라. 어정쩡한 시간도 마음에 안 들어. 아니야. 그래도 아직은 포기하긴 일러!' 과연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6월의 나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