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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초롱 Feb 06. 2024

옆 집에 누가 살아요?

명절 선물은 핑계고

대한 직후로 이어지던 살 에이는 추위가 작별을 고했다. 꽃내음 가득한 파릇한 봄은 아니더라도 부족했던 햇살을 쬐기 좋은 날이다. 달력에는 4일 연속 빨간 숫자가 음력설을 가리켰다. 일 년에 두 번, 마지못해 부모님을 따라나섰다. 부엌에서 알짱거리다, 음식들을 나르고, 설거지 하기가 주 일거리였다. 별안간 심술이 나서 방 한구석에서 빈둥대는 오빠와 두 살 어린 사촌 남동생을 할머니 몰래 옆구리를 찔러 싱크대 앞에 세웠다. 딱히 즐거웠던 추억을 회상하는 것도 아닌데, 직계 가족들끼리 조촐하게 지나갈 때면 한편에 그리움이 물든다.  

 

사라져 가는 기억 속에 빼놓을 수 없는 게 이웃과 주고받던 음식이다. 명절에는 먹을 것에 부족함이 없다. 각종 나물에 색색이 전, 손가락까지 쪽쪽 빨게 하는 갈비까지, 누가 이걸 다 먹나 싶을 정도로 과하게 차려 먹고 남은 음식들은 가족끼리 나눈다. 집으로 가져온 먹을거리는 다시 옆집으로 길을 떠난다. 나는 인사 말고는 별로 할 말도 없건만 굳이 어머니는 내 손에 접시를 들게 하고 옆 집 문을 두드렸다. 


"301호예요~"

"뭘 또 가져오셨어요."

"명절 음식이 많이 남았네. 한번 먹어봐요."

"잠시만요."


집 안을 슬쩍 구경하고 나온 접시는 또 다른 음식으로 채워져 돌아왔다. 같은 층에 머물던 세 집 말고도, 아랫집과 저 먼 위층에 사는 동대표집까지 수다를 얹은 음식 주고받기가 이어졌다. 다 먹어본 평범한 것들에, 김 나는 따뜻한 요리가 아닌데도, 낯선 손맛이 더해져서 그런가, 꽤 맛있게 집어 먹었던 것 같다.


매년 좋던, 싫던, 곁에서 봐왔던 것이라, 시골에서 한 번씩 보내주는 옥수수나 감자 등의 식재료가 한 박스 가득 담겨오면 생각이 많아진다. 우리 식구들만 먹기에는 삼시 세끼, 한 달을 부지런히 먹어도 남는 양이다. 직접 농사해 유기농으로 지어진 별미라 생색내며 나눠 먹기 좋은 것들이다. 하지만 시중에는 껍질 벗겨져 손질된 샛노란 옥수수를 판다. 밀키트니, 배달로 때우는 집들도 많아져 괜히 보냈다가 장소만 바뀌어 싹을 틔울까 망설여진다. 고민 끝에 용기를 내본다. 빈집이 많아한 번은 허탕 치고, 두 번째에는 쪽지를 남겨 문고리에 걸어 전달했다. 일주일 내로 우리 집에 답례품이 쌓였다. 때로는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기도 하며. 


명절이 다가오면 다른 이들이 보낸 택배 박스가 온다. 올해는 남편 거래처, 지인, 활동보조기관에서 보낸 곶감, 사과, 말린 버섯들이 따로 약속한 것도 없는데 품목이 겹치지도 않고 다양하게 도착했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선물 포장을 뜯는 순간은 설렌다. 비록 상대방의 어떤 의무감에 의해 행해진 것이라도. 


이사 온 지 벌써 3년 차가 되어간다. 기대감에 부풀어 이웃에 뿌렸던 웰컴 선물은 보답 선물로 돌아왔다. 나의 두드림에 응답해 준 황홀한 순간이었지만 여전히 신비감 쌓인 옆집인 건 그대로였다. 심지어 한 집은 3개월 전쯤 전세기간이 끝나 새로운 얼굴로 바뀌었다. 종종 안부 인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대단한 친분이었나 싶을 정도로 숨바꼭질 하듯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어머니가 보여줬던 정 나누기가 점점 시들해졌다.      


명절 선물들 앞에 들뜬 마음을 다시 한번 주변과 함께 하고 싶었다. 가족 먹이기에 급급한 손수 만든 음식은 빼고, 유통기한이 짧은 과일도 제하다 보니 쿠키 세트가 마음에 들었다. 전통적이지는 않지만 누구나 호불호 없이 즐길 수 있으니까. 이번에는 미리 메모지에 적었다. 복사하고 붙여 넣지 않도록 지금까지 알고 있던 정보를 한두 개 섞었다. 여행은 잘 다녀오셨는지, 별다른 층간 소음은 없는지, 새 집은 어떤지, 마지막으로 새해 인사로 마무리했다. 손글씨가 오랜만이라 몇 글자 안되는데도 삐뚤거려 몇 장을 버렸다. 저린 손바닥을 만져주며 쿠키 박스에 쪽지를 붙였다. 


주말 낮에 아들을 불렀다. 

"영재야, 우리 선물 나눠 주러 가자~"

"이거 뭐야? 나 먹고 싶어."

"쿠키지, 옆집에 나눠 줄 거야"

"나도 쿠키 먹고 싶은데."

"이건 선물하려고 산거라, 우리 건 없어."

본인 몫이 없다는 말에 흥미를 금세 잃었다.

"같이 나가자. 바로 옆에랑, 아래랑~"

"싫어. 나 그냥 집에 있을래."

"그럼 갔다 와서 영재가 좋아하는 약과나 캔디 하나 줄게. 여기서 골라봐."

"쿠키가 좋은데... 알았어."


아이의 몸집에 따라 커졌을 층간 소음 때문에 종종 인사드렸던 아랫집 먼저 향했다. 이제 벨을 누르면, 굳이 누군인지 밝히지 않아도 반갑게 열어 주신다. 


"안녕하세요. 잘 계셨죠?"

"아이고, 그만 줘도 돼."

"아니에요. 설이고 하니까. 자녀분들 왔어요?"

"응. 왔어. 혹시 커피 좋아해요? 잠깐만."

"마시긴 하는데, 뭐 받으려고 한 거 아닌데.. 고맙습니다."


영재는 어른들 먹는 커피인데도, 대신 받아 들고는 한껏 표정이 들떴다. 다행히 두 옆집에도 부부가 모두 있었다. 덕분에 오래 타지에 계셨던 남편분, 이사 온 새 이웃분들과도 눈 맞춤을 했다. 역시 산타처럼 남몰래 걸어두는 선물보다는 어색하지만 얼굴 한번 더 보는 이 만남이 좋다. 


집 안에 들어가 편안히 수다를 나누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명절 선물 핑계 삼아 누가 사는지 얼굴 한번 볼 수 있었다. 내 이웃들의 웃는 모습이 괜스레 이뻐 보였다. 다음 명절에도 잊지 말고, 문을 두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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