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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고나 Nov 10. 2023

겨우 2.5cm의 암세포일 뿐인데

발견 당시 지름 약 2.5cm 정도의 암이었다. 엄지 손가락 한 마디도 채 되지 않은 크기이다.

그런 작은 사이즈의 암세포가 나를 죽일 수도 있다니...작은 게 더 무섭다. 

수술은 복강경 수술과 로봇수술 중에 선택해야 했다. 비용면에서 로봇 수술이 4~5배 더 비쌌다. 나는 수술 비용을 듣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는 돈 먹는 하마인가'

'그냥 싼 걸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로봇수술 비용은 천만 원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900만 원 후반 대였으니까. 하지만 그걸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복강경 수술은 일정을 빠르게 잡을 수 없었다. 그 수술을 받으려면 대기시간이 길어진다. 아마 내가 그때까지 버텼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로봇수술이 아니었다면 손댈 수 없을 만큼 암세포가 퍼져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만큼 젊고 건강했고 혈기왕성했다. 암에 걸리리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수술은 내 기억으로 2주 뒤에 잡혔던 것 같다. 2주 뒤에 개복했을 땐 전이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

나는 오른쪽 폐 3분의 1을 잘라내야 했다. 그것도 모자라 평생 항암약을 먹으며 살아가야 한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부모님 말을 안 들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할머니 말을 안 들어서 그런 걸까. 남자친구와 자주 싸워서 그런 걸까. 지금까지 내가 상처 준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준 벌일까. 

아니면 작은 암세포라고 무시해서 그런 걸까. 아픔은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것 같다. 과거에 내가 혹시 잘못한 것이 없었나 되돌아보게 만드니 말이다.


왕따를 당했을 때부터 나에겐 불행의 연속이었다. 좋아해야 할 일도 늘 조마조마했던 것 같다. 언제 그 행복이 사라질지. 잡힐 듯 말듯한 행복이었다. 건강은 잃어봐야 소중함을 안다고 했던가. 하지만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 건 좀 억울하다. 흉터는 수술 이후 6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오른쪽 갈비뼈, 옆구리, 등. 샤워를 할 때마다 흉터자국을 보게 된다.


흉터자국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기억 저장소의 필터인 셈이다. 흉터치료를 하지 않는 이상 평생 함께할 친구다. 항암약을 먹으면  남들보다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다. 가벼운 감기가 될 것을 내가 걸리면 열이 펄펄 나기도 한다. 면역력이 낮으니 식습관도 생활습관도 다 바꿔야 했다.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을 가서 피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산정특례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산정특례 덕분에 한 알에 10만원 정도 하는 약을 5%만 내고 먹을 수 있게 됐다.


약값을 온전히 다 내지 않으려면 그날 꼭 피검사를 받아야 했다. 3개월에 한 번 씩 병원에 검사 및 진료를 받으러 간다. 3개월치 약값을 온전히 낸다면 나는 차라리 약을 먹지 않는 선택을 할 것이다. 또한 보험이 적용 되는 약이 나에게 잘 맞으니 너무 다행이었다.  보험이 되지 않는 약도 있다고 하니 환자들에게 죽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


나는 그런 점에서 매우 운이 좋은 편이라 생각한다. 보험이 되는 약이기 때문이고, 너무 나에게 잘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암제의 부작용을 생각하면 좋았다가도 싫어진다. 다리가 붓고, 구역질이 난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땐 먹었던 약을 다 게워내기도 했다. 적어도 4년째까지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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