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주, 월요일
뒤돌아보면 어느샌가 훌쩍 크는 것이 아이들의 성장 속도일까요?
가끔은 아이들의 성장이 시곗바늘보다 훨씬 빠르게 흐르고 있다는 사실에 문득문득 놀라곤 합니다.
1월의 교실은 유독 그런 기적 같은 순간들이 곳곳에서 복병처럼 숨어 있다가 우리를 미소 짓게 합니다.
우리 원에서 가장 작고 어려, 늘 누군가의 손을 잡아야만 탐색이 시작되던 '영원한 막내' 민우.
곤한 꿈나라에 선생님 품에 안겨 등원길 인사를 나누기도,
마음대로 안되면 눈물부터 나던, 때로는 바닥에 누워 천장에 대고 포효하던 작은 친구이지요.
모델링과 모방의 힘은 막강하다고
누나들 형들 사이에서 하나, 둘 형님들의 몸짓을 배우던 민우가 오늘은 아주 기분 좋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새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자기보다 개월 수가 몇 개월 어린 동생 서우가 가지고 있던 공이 손에서 미끄러지면서 데굴데굴 저만치 굴러가자 찡그림이 시작되고 눈물이 곧 시작될 찰나였습니다.
서우에게 다가가려는 찰나, 그때 민우의 움직임이 한 박자 더 빠르게 움직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공을 서우에게 내밀며 말합니다 "자. 공"
아직 단어로 말하는 시기의 이 어린 친구들이 주고받는 이 짧은 언어 속에 세상 그 어떤 미사여구보다 진한 다정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서우의 눈에 맺히려던 눈물은 마법처럼 멈췄고, 민우의 손에서 서우의 손으로 옮겨간 공은 단순한 놀잇감을 넘어 '다정함' '배려' '관심'이라는 이름의 징검다리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욕구가 세상의 전부였던 막내가, 이제는 타인의 상실감을 먼저 알아채고 자신의 소중한 것을 내어줄 줄 아는 ‘작은 거인’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천장을 향해 포효하던 아이의 반란은 이렇게나 따뜻하고 의젓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왔습니다.
유아기는 자아의 울타리가 '나'에게서 '너'와 '우리'로 급격히 확장되는 역동적인 시기입니다.
민우가 건넨 "자. 공."이라는 말에는 단순한 언어적 표현을 넘어,
유아기 발달의 핵심인 '타인에 대한 인식과 공감적 반응'이 최고조로 발현된 순간입니다.
언어 발달의 과도기에 있는 이 시기 아이들에게 한 단어 문장은 상황의 모든 맥락을 담아내는 그릇과 같습니다.
"서우야, 네 공이 굴러가서 속상하지? 내 걸 줄 테니 울지 마."라는 긴 위로의 서사가 그 짧은 두 마디 속에 오롯이 응축되어 있는 셈입니다.
이는 동생의 불편함을 직관적으로 감지하고 자신의 소중한 것을 내어줌으로써 상황을 해결하려는
'사회적 유능감'의 눈부신 발현이기도 합니다.
특히 원 내에서 가장 어렸던 ‘수혜자’였던 아이가 자신보다 더 작은 존재를 인지하고 기꺼이 ‘조력자’의 위치로 스스로를 격상시킨 이 행동은, 아이의 사회적 자아가 얼마나 건강하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히 형님들의 행동을 흉내 내는 모방을 넘어, 지난 1년 동안 교사와 또래에게 듬뿍 받았던 따뜻한 돌봄의 기억들이 아이의 마음속에서 충분히 발효되어 민우만의 다정함으로 흘러나오는 ‘정서적 성숙의 결실’입니다.
교사는 이 짧은 대화와 서툰 손짓 속에 담긴 발달적 무게를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됩니다.
"민우가 동생의 마음을 정말 잘 읽어주었구나!"라는 선생님의 구체적인 지지는 아이가 이타적인 행동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하며, 평생의 인격 형성에 밑거름이 되는 '긍정적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천장을 향해 포효하던 막내가 타인의 눈물을 닦아줄 줄 아는 작은 거인으로 거듭나는 기적.
1월의 교실에서 목격하는 이 성숙의 연쇄야말로 우리가 매일 깡충거리며 아이들 곁을 지켜내는 가장 숭고한 보람이자, 유아 교육이 가진 진정한 힘일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볼까요?
ㅣ 아이가 건네는 짧은 단어 속에서, 우리는 그 안에 숨겨진 성장의 신호를 얼마나 깊이 읽어주고 있나요?
ㅣ 늘 아기로만 보였던 아이가 누군가의 형님이 되어가는 그 찰나를, 우리는 충분히 축복해주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