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손의 역습

1월 2주, 화요일

by 테라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살다 보면, 가끔은 마음의 무게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 있습니다.

행사 일정과 챙겨야 할 아이들의 마음 사이에서 분주한 깡충거림을 이어가다 보면 숨 돌릴 새도 없이 하루는 어느새 훌쩍 지나가 있곤 합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습니다.


유독 분주했던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는 사이,

문 앞에 작은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곧 모습을 드러내고는 나의 감정은 아랑곳없이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들려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늘 같은 자리에 있는 장식품이 볼 때마다 신기한지 한참을 바라보기도 만져보기도 하는 우리 원 3살, 종일반에 참여하고 있는 친구지요.


오늘도 여전히 예고도 없이 불쑥 들어와 한참을 탐색하더니 두 팔을 벌려 안아달라며 다가옵니다.


"우리 아윤이, 안아달라고?"


어린 친구의 품은 어디서 퐁퐁 이 온기가 솟아나는지,

따뜻한 작은 체구를 안아주니 절로 '에너지 충천'이 되는 듯합니다.


그런데. 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아윤이의 작은 두 손이 제 어깨 위로 올라오더니, 마치 나를 달래듯 일정한 박자로 '토닥. 토닥' 어깨를 두드려 줍니다. 그 어떤 말도 없이 그저 고사리 같은 손이 전하는 작고 가벼운 리듬이었지만 그 접촉은 마음 가장 깊숙한 곳까지 전달되는 크고 묵직한 온기였습니다.


늘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불안한 어깨를 감싸 주던 선생님이라는 이름이,

지금 이 순간, 작고 아담하기까지 한 이 아이가 선생님의 어깨에 내려앉은 무게를 읽기라도 한 듯,

토닥토닥 돌려주는 그 마음에 한참을 그렇게 멈춰 있었습니다.


아윤이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마음속에 엉켜있던 행사의 압박감과 피로가 툭, 툭 매듭을 풀고 풀려나갔습니다. 고작 0.1kg도 안 될 것 같은 그 가벼운 손길이, 세상 그 어떤 무거운 위로보다도 묵직하게 다가온 순간.


아윤이는 알고 있었을까요? 그 투박한 리듬이 지친 어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기적의 박자'였다는 것을요. 깡충거리며 다시 돌아가는 아윤이의 뒷모습을 보며, 저는 비로소 숨을 크게 내뱉었습니다.

"선생님, 힘내세요"라는 백 마디 말보다 훨씬 강력했던,

내 어깨 위 작은 손의 역습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교육을 교사가 아이에게 지식과 규범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과정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유아교육의 현장에서 마주하는 가장 경이로운 순간은, 그 가르침의 방향이 반대로 흐를 때입니다.

3세(만 1세) 무렵의 영아는 언어라는 도구가 완벽하지 않은 대신, 타인의 감정적 공기를 읽어내는 직관이 그 어느 때보다 발달해 있습니다.

아윤이가 선생님의 어깨를 토닥인 행위는 단순한 모방을 넘어선 ‘정서적 상호성(Emotional Reciprocity)’**의 정점입니다. 영유아는 자신이 가장 힘들고 불안할 때 자신을 지켜준 성인의 행동을 내면화합니다.


즉, 아윤이의 ‘토닥임’은 선생님이 그동안 아이들에게 건넸던 수많은 위로와 안심의 언어들이 아이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가, 선생님의 지친 기운을 감지한 순간 ‘사랑의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온 것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이는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는 '공감적 배려'의 초기 형태입니다.

아이는 선생님의 무거운 어깨에서 자신의 슬펐던 기억을 발견하고, 자신이 받았던 가장 효과적인 치유법인 '토닥임'을 처방해 준 셈입니다.


교사는 아이를 키우지만, 동시에 아이는 교사를 성장시킵니다.


교사가 준 사랑이 아이를 통해 다시 교사에게 흘러 들어올 때, 그 정서적 순환 속에서 교실은 단순한 보육의 공간을 넘어 서로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는 ‘정서적 공동체’로 격상됩니다.

우리가 매일 아이들에게 쏟아붓는 다정함은 결코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이의 작은 손과 눈빛에 머물러 있다가, 우리가 가장 지친 어느 날 예상치 못한 기적의 형태로 반드시 돌아옵니다.


오늘 아윤이가 전해준 0.1kg의 가벼운 토닥임은 사실 선생님이 그동안 뿌려온 사랑의 무게이자, 아이가 선생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정중하고도 따뜻한 존경의 표시였습니다. 이 정서적 교감의 기적이야말로 우리가 매일 깡충거리며 교실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이유가 아닐까요.




함께 생각해 볼까요?


ㅣ 아이가 건넨 '위로의 리듬'에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렸던 순간이 있었나요?


ㅣ 우리는 아이들에게 받는 위로를 기꺼이 수용할 만큼 마음의 빗장을 열어두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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