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주, 화요일
오늘 아침, 수민이는 사물함 앞에서 한참이나 머물러 있습니다.
두툼한 겨울 외투를 옷걸이에 걸고, 흘러내리는 옷을 고정시키기 위해 단추를 여미기 위한 조용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학기 초 같았으면 진즉에 안된다며, "선생님, 도와주세요"를 외쳤을 수민이인데,
오늘은 어인일인지 시선과 손길이 외투의 단추에 고정되며 한참이나 머물러 있습니다.
작은 손가락 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단추는 매끄러운 천 사이로 자꾸만 미끄러져 들어갈 듯 말 듯 빠져나오곤 합니다. 마치 수민이의 끈기를 확인하려는 장난스러운 방해꾼 같습니다.
3센티미터 남짓되는 단추구멍이 야속하기도 합니다.
수민이의 입술은 몇 번이고 굳게 다물어지고, 손가락 끝에 다시금 야무진 힘이 모아집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응원을 보내고 있는 선생님의 마음에도 '아코, 아코' 아쉬움이 몇 번이고 다녀갑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단숨에 단추를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주변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온전히 단추에 집중해 있는 수민이의 성공을 기다립니다.
한참을 씨름하던 그때, '툭'하고 단추가 단추구멍을 통과하여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그 순간 단추구멍보다 훨씬 더 큰 성취감이 수민이의 얼굴에 가득 차 오릅니다.
그제야 숨을 몰아쉬며 선생님을 향해 배시시 웃음을 보이는 수민이.
아마도 수민이는 저만치 떨어져서 응원을 보내고 있던 선생님의 시선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아기 아이가 일상의 사소한 과업에 스스로 몰입하고 끝내 완수해 내는 과정은, 발달학적으로 자율성과 자기 효능감이 형성되는 결정적인 장면입니다.
학기 초의 의존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스스로 단추를 채우려 고군분투하는 수민이의 변화는,
자신의 신체와 환경을 주도적으로 통제하려는 심리적 독립의 신호입니다.
이는 타인의 도움 없이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내면의 힘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발달적 본능의 발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성장의 지점은 결과보다 과정을 견디는 회복탄력성의 성숙을 보여줍니다.
단추가 미끄러지는 반복적인 실패 속에서도 시선을 고정하고 입술을 깨무는 행위는, 좌절을 딛고 다시 도전하는 정서적 끈기가 자라나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교사의 마음속에 머문 ‘아코, 아코’라는 탄식은 단순히 안타까움이 아니라, 아이의 수고로움을 깊이 공감하는 정서적 공감이자 아이를 향한 깊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사물함 앞의 정지된 화면처럼 보일지라도, 아이의 내면에서는 소근육의 정교한 움직임과 집중력을 총동원하여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치열함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순간, 아이의 속도를 재촉하는 시계가 아니라 아이의 성장을 묵묵히 응원하는 안전한 기지가 되어야 합니다. 서둘러 대신해주고 싶은 조급함을 누르고 아이가 스스로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온당한 거리를 두고 기다려주는 태도야말로 최고의 교육적 처방입니다.
1월의 아침 사물함 앞에서 목격하는 이 고요한 승리는, 교육이란 아이를 대신해 길을 닦아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단추를 여밀 때까지 따뜻한 시선으로 그 시간을 지켜내 주는 기다림임을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ㅣ 우리는 "도와줄까?"라는 말 대신 "믿고 기다릴게"라는 마음을 먼저 전하고 있나요?
ㅣ 당장 도와주고 싶은 급한 마음을 꾹 누르고,
아이가 스스로 해냈을 때의 그 벅찬 기쁨을 오롯이 맛볼 수 있게 기회를 주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