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는
어둠에 불쑥 들어가
익숙한 듯 위치를 찾아
스위치를 켠다.
익숙한 루틴대로
잔잔한 음악을 플레이하고
책상 앞 가지런히 놓인
노트북을 연다.
창밖의 따스한 공기와 달리
이 안에 흐르는 공기는
보이지 않는 입김을 내며
차가움을 증명한다.
모니터에서 새어 나오는
따스한 빛을 따라
분주히 움직이는
열 손가락의 무도.
지구의 반대편까지 뚫을 기세로
파고들었던 나만의 굴은
지체함의 대가로
하얀 화면 위에서 선명한 글자가 된다.
드르륵 기계음을 내며
느린 속도로 종이를 배출해 내는
프린터의 작동음은
이 공간에서 느리게 작동하는 내 모습의 반영.
아무도 찾지 않고 방해 않는
홀로 있는 이 시간의 지독한 몰입은
역설적이게도
'함께'를 위해 미리 준비하는 손길.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한 번씩 막다른 길목에 막혀 어디로 가야 할지 한참이나 멈춰 서야 할 때를 마주하곤 합니다. 그걸 보통은 슬럼프라고 또는 번아웃이라 부르더라고요.
지구 반대편까지 도다를 정도로 나만의 굴을 한참이나 파가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경고음이 몇 번이나 울리고 나서야 몸을 일으켜 세웁니다.
모두 다 쉬는 휴일을 반납하고
어두운 공간에 문을 열고 불을 밝히는 것은 나의 책임이자, 소명.
아침을 열던 문은,
이제 어둠을 닫는 문으로 마주 서고 있습니다.
덕분에 이번 주는 수월히 시작되기를 기대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