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인 딸에게..
딸아.
인생에 있어 수많은 언덕배기의 길이 있을 텐데,
오늘, 이날을 위해 네가 달려왔던 길이 어떠했는지.
엄마는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 거 같다.
뒤돌아 보면 지금의 이 시간이
앞으로의 네가 걸어갈 인생이라는 길에서 아주 작은 시작일 텐데, 오늘을 위해 '공부'라는 끈과 밀고 당기기를 해오며
참 많은 날을 견뎌왔지.
어느 날,
네가 진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날을 기억한단다.
너는 정말로 앞으로의 너의 앞날이 걱정되어 흘린 고민의 눈물이었지만, 사실 엄마는 그날 너의 모습이 너무도 기특하고 아름답기까지 했단다.
4세 고시, 7세 고시라는 신조어가 입에 오르내리는 이 시대에 자신의 성적에 맞추어 학과, 학교를 선택하는 요즘 아이들의 모습이 아닌, 진실로 네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는 모습에서 엄마는 너의 마음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느꼈단다.
그건 단순한 진로 고민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너만의 깊은 성찰의 흔적임을 알았기에 말이지.
딸아,
세상은 때로 결과를 먼저 묻고,
속도와 경쟁을 기준 삼아 사람을 평가하려 하지.
대학의 네임벨류가 사람들의 시선과 관계를 결정짓기도 해.
하지만 엄마는 안다.
너는 그 속에서도 흔들리면서 자신만의 방향을 찾아갈 거라는 걸.
너의 지난 눈물은 약함이 아니라,
너의 내면이 얼마나 진지하게 삶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증거였단다.
어느샌가 너는 너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었지.
엄마는 그 길을 바라보며 마음속 요동을 애써 다잡았단다. 태연한 척했지만, 사실은 너의 선택 하나하나에
엄마의 마음은 수없이 흔들렸었어.
엄마는 오늘 도시락을 준비하며
너의 지난 시간을 하나하나 떠올려봤어.
스스로 해내가는 너를 기특히 여기면서도 직장맘이라는 타이틀에 마음 한 구석 너의 하루를 온전히 다 함께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있었단다.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아이들을 성장시키면서
정작 내 아이의 빈자리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그런 마음이 문득문득 엄마를 멈춰 세우곤 했단다.
하지만 딸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스스로의 힘으로 자라났고,
엄마가 미처 다 보지 못한 사이에도 너는 너만의 속도로, 너만의 방식으로 단단하게 성장해 왔지.
엄마는 그 사실이 참으로 고맙고, 대견하고, 미안하고
또 자랑스럽다.
오늘 네가 마주한 시험은
그동안의 시간들을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저 너의 여정 중 하나의 이정표일 뿐이야.
그 문을 통과하든, 돌아서든,
너는 여전히 너의 길을 걸어갈 거고, 엄마는 그 길의 모든 계절을 함께 걸어가고 응원할 거야.
사실, 이 편지를 너의 도시락에 살포시 넣고 싶었지만,
시험도중 감정의 울렁거림이 되려 너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고 싶은 말은 정말 오랜만에 싸보는 도시락에
꼭꼭 담아 보낸다.
오늘 너를 수험장에 데려다주고,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네가 사라질 때까지 눈으로 수십 번 너의 어깨를 토닥였단다.
너를 향한 믿음과 너의 새로운 도전과 시작들이 또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까를 엄마는 그저 조용히 기대하고 있단다.
오늘의 시간이 지나고
너를 만날 땐,
그저.. '수고했다' 이 말로
너를 꼭 안아줄게.
그 품 안에서 오늘의 긴장을 녹이고,
다시 새로운 길을 향한 너의 용기와 시작이라는 꽃이 피어나기를 바라며
이따 만나자.. 우리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