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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가 체감 경기를 망가뜨린다

고급 취향의 역설

by 눈사람

2002년 월드컵 이후, 한국 사회에서 '경기가 좋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우리는 오랜 기간 동안 경제 지표의 숫자와 피부로 느끼는 일상 사이의 괴리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체감 경기가 줄곧 나쁜 이유로는 대기업의 희미해진 낙수효과, 고령층 확대에 따른 소비성향 약화, 불안정한 고용의 확대 등 복잡한 구조적 원인들이 거론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꿰뚫는 핵심은 빈부격차와 양극화입니다. 재벌 회장님이라고 해서 하루에 옷을 열 번 갈아입거나 끼니를 스무 번 드실 수는 없으니, 부가 집중될수록 소비의 온기는 널리 퍼지지 못하고 고입니다. 여기에 더해, 소득과 자산의 격차가 확대될수록 상대적 빈곤감과 박탈감이라는 심리적 문제가 체감 경기를 더욱 나쁘게 만듭니다.


그런데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 체감 경기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또 하나의 강력한 요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대중 취향의 고급화'입니다. 우리의 취향이 높은 곳을 쫓을수록, 개인의 일상은 초라해지고 부의 집중이 강화되며, 결국 체감 경기는 더욱 망가집니다.


명품을 위해 일상을 압류당하는 사람들


미디어와 SNS의 발달은 더 고급스러운 것, 더 비싼 것에 대한 정보를 걷잡을 수 없이 퍼뜨립니다. 명품이 유행하더니 그보다 몇 배는 비싼 초고가 브랜드들이 등장하고, 이제는 아는 사람들만 알아본다는 로고 없는 명품까지 우리 욕망의 목록을 채웁니다.


이런 상품들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신경 쓰게 되면, 감당하기 어려운 줄 알면서도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소득이 제한적인데 초고가 상품을 손에 넣는 방법은 한 가지뿐입니다. 일상의 소비를 극도로 줄이는 것입니다. 초고가의 명품 가방이나 호화로운 해외여행을 위해, 우리는 매 순간을 빡빡하고 힘겹게 버텨내야 합니다. 한 번의 미슐랭 스타 식당을 위해 열 번의 삼겹살을 포기하고, 일 년 치의 주말 나들이 대신 6성급 해외 호텔에서 일주일을 보내는 식입니다.


이러한 소비 패턴은 삶의 전반적인 만족감을 떨어뜨립니다. 소비는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라, 참다가 터뜨리는 폭식이 됩니다. 다이어트 중에 폭식을 한 것처럼, 소비 후에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비굴하고 궁핍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결과, 중간 소비 시장은 무너지고, 천원숍과 명품관만 살아남는 양극단 소비 구조가 심화됩니다.


내 취향이 부모님의 가게를 위협한다


취향의 고급화는 단순히 개인의 소비 문제를 넘어, 경제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부를 소수에 더욱 집중시키는 구조적 악영향을 낳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초고급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호화로운 매장을 마케팅하는 데는 거대 자본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은퇴한 직장인이 미슐랭 식당을 만들 수 없고, 작은 여관 사장님이 6성급 호텔을 지을 수는 없습니다. 동네의 슈퍼와 빵집, 카페와 식당은 모두 대기업 프랜차이즈로 대체되어 가고, 숙박 시설은 글로벌 호텔 체인으로 흡수됩니다.


결국, 내 취향이 높은 곳을 쫓을수록 내가 찾는 매장과 숙소는 호화롭고 아름다워지겠지만, 나의 집과 일상은 더욱 초라해지는 역설에 빠집니다. 내 SNS에 '좋아요'가 많이 달릴수록, 부모님이나 이웃이 운영하는 가게는 더욱 어려워집니다.


부가 집중되는 거대한 흐름을 개인이 되돌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는 있지요. 5백만 원짜리 명품 가방을 위해 6개월을 궁핍하게 사는 대신, 두 달에 한 번 50만 원짜리 괜찮은 가방을 사며 일상의 활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전셋값에 맞먹는 최고급 자동차를 위해 매일 라면을 먹는 대신, 렌터카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한정식을 먹으며 삶의 균형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고급 취향에 대한 열정과 자원을 저축과 투자로 돌린다면, 우리는 일회성 소비자로 머물지 않고 생산자나 자본가로 가는 길에 한 걸음이라도 가까이할 수 있습니다. 더 높은 곳을 향해야 할 것은 취향이나 브랜드가 아니라, 행복과 생산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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