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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운욱 눈사람 Jul 07. 2019

스타벅스의 배신

소소하고 확실한 낭비 대신 누릴 수 있는 것들

햇살은 따갑지만 다행히 습도는 높지 않은 초여름 어느 날, 나열심 과장은 같은 팀 금현명 차장과 회사 인근 순두부집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입니다. 더운 음식을 먹은 터라 나열심 과장은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이 생각납니다.


나열심: 차장님, 더운 음식 먹고 나니 시원한 게 생각나네요. 아이스커피 한잔하시죠. 저기 보이는 스타벅스 괜찮으시죠?


금현명: 요새 스타벅스 참 많아. 이 근방에도 계속 생기네. 이렇게 스타벅스가 많은데 점심시간엔 늘 대기줄도 길고 말이야. 스타벅스가 왜 이렇게 잘 될까? 직장인들이 한 달에 스타벅스에 얼마나 쓰려나?


나열심: 글쎄요. 저는 차장님 말씀 따라 절약하고 있어서 자주 마시지는 않는데요. 자주 마시는 사람들은 아침마다 하나씩 사무실에 들고 오더라고요. 그리고 점심 식사 후나 오후에 한잔 더 마시는 사람도 많고요. 남들한테 사주는 경우도 있고 하니, 한 잔에 5천 원이라 치면 많이 쓰는 사람들은 한 달에 30~40만 원 쓰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금현명: 그렇겠지? 꽤 큰돈이네. 나과장 카페라테 효과라고 들어 봤지? 오랫동안 커피값을 아끼면 노후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것인데, 맞는 말이기는 한데 잘 와닿지는 않지. 스타벅스에 쓰는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카페라테 효과를 실감할 수 있어.


나열심: 저도 담뱃값이나 커피값을 20~30년간 아끼면 목돈이 된다는 말은 들었는데요. 초등 1학년한테 서울대 가려면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이야기 같아서요. 하하. 스타벅스에 쓰는 돈을 아끼면 무얼 할 수 있는데요?


금현명: 먼저 스타벅스 한 잔 값어치부터 살펴볼게. 음료 가격이 다양하지만 한 잔에 5천 원이라고 치면, 이건 내 한 달 커피값이야.


나열심: 네? 무슨 말씀이세요?


금현명: 특별한 일 없으면 난 하루에 믹스커피를 2잔 정도 마셔. 근데 커피믹스 인터넷 판매 가격을 보니 개당 90원 정도 하더라고. 5천 원이면 커피믹스 56개고 나한테는 28일 치 커피값이지.


나열심: 오! 진짜네요. 스타벅스 한 잔이 차장님 한 달 커피값이라고 생각하니 쉽게 마시지 못하겠어요. 그런데 저야 차장님 말씀에 공감하지만, 원두커피랑 커피믹스를 비교하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커피믹스로 스타벅스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걸요. 꼰대 소리 듣기 딱 좋은 각이죠. 게다가 스타벅스는 서비스랑 분위기, 쾌적한 공간도 제공하잖아요.


금현명: 그래.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니까. 그리고 스타벅스가 공간을 제공한다고 했는데, 말 잘했어. 아까 많이 쓰는 사람은 한 달에 스타벅스에 30~40만 원도 쓴다고 했지? 그 정도 돈이면 요새 공유 오피스에서 한 자리를 임대할 수 있어. 자기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 커피랑 음료, 간식 등은 물론이고 개인 공간과 회의실도 쓸 수 있지. 나라면 그 돈으로 공유 오피스를 계약하겠어.


나열심: 차장님 말씀 듣고 보니 스타벅스가 진짜 돈 되는 사업을 하는 것 같아요. 공유 오피스는 내가 쓸 공간도 비워놓고 음료도 준비하고 대기하는데, 스타벅스는 음료도 줄 서서 사고 점심시간에는 자리 잡기도 쉽지 않으니까요. 스타벅스가 얼마나 버는지 궁금하네요. (검색 중) 정말 대단하네요. 2018년 매출 1.5조 돌파했고 영업이익도 1,400억이 넘었네요. 10년 동안 매출이 9배 늘었다네요.


금현명: 이번엔 좀 더 긴 안목에서 10년 치를 한번 생각해보자고. 1년이면 360~480만 원이니 10년이면 3,600~4,800만 원이네. 나과장은 이 돈이면 뭐 할래?


나열심: 저 같으면 차를 살 것 같아요. 그 돈이면 그랜저나 팰리세이드 정도는 사겠는데요. 그런데요, 차장님 같은 분이야 이해 못 하시겠지만 10년 후에나 산다고 하면 차 안사고 그냥 매일 스타벅스 마시겠다는 사람도 꽤 많을 것 같아요.


금현명: 왜 자꾸 내가 이해 못한다고 생각해? 살짝 기분 나빠지려고 하네. 하하. 실제로 10년 후에 차 사겠다고 커피값을 아끼는 사람은 거의 없지.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봐. 나과장이 서른에 첫 차를 구입하고 10년 후 마흔에 차를 바꾸려고 해. 그때 커피값 아낀 돈으로 계획보다 4,800만 원을 더 쓸 수 있다면 무슨 차 살래?


나열심: 오~옷!! 마이 드림카!! 그랜저가 벤츠로 바뀌는 순간이네요. 차장님 저 마흔에는 벤츠 탈 수 있는 건가요? 저 앞으로 10년 동안 커피 끊습니다. 아~ 이거 차장님한테 한방 먹었네요.


금현명: 나 같은 애처가라면 말이야, 아내한테 천만 원짜리 에르메스 가방 5개를 사주겠어. 하하.


나열심: 오~ 그럼 주위에서 형수님한테 에르메스 5개 어떻게 샀냐고 물어보면, 남편이 커피값 아껴서 사줬다고 하시겠네요. 킥킥. 저도 벤츠 어떻게 샀냐고 물어보면 커피값 아껴서 샀다고 해야겠어요. 근데 차장님 실제로 그 돈 생기면 에르메스 안 사실 거죠?


금현명: 아니야. 꼭 사 줄 거라니깐. 왜 믿지를 못해? 만약 매장에 데려갔는데, 아내가 굳이, 굳~이~ 마음만 받겠다고 한다면…아내한테 다른 걸 선물할 수도 있겠지. 아니면, 나한테 많이 들어서 알잖아. 대충 5천만 원이라 치고 대출 합쳐서 1억짜리 상가나 오피스텔을 사겠어. 1억에 5% 수익률이면 한 달에 임대료가 40만 원 정도 나오겠네. 대출금리가 3.5%라면 한 달에 이자가 15만 원 정도 나올 거고 달에 대충 20~25만 원 정도는 남을 것 같은데. 이 돈으로 죽을 때까지 맘 편히 스타벅스나 마실까? 하하.


나열심: 도대체 좋은 차는 언제 타실 거에요? 돈도 많으면서...


금현명: 뭐 선택의 문제지. 다음번 투자만 잘 되면 임대수익으로 지금 월급 정도는 나올 것 같아. 그러면 그때는 좋은 차 하나 리스하려고. 세금도 아끼고 좋지 뭐. 5천만 원으로 월 25만 원 정도 만들 수 있다면 이런 식으로 3억을 투자하면 한 달에 150만 원이야. 이 정도면 은퇴준비하는데  급한 불은 끈 거지.


나열심: 아, 커피 마시려고 했는데 얘기하다 보니 슬슬 사무실 들어갈 시간이네요. 차장님하고 있으면 이래저래 돈이 절약되네요. 하하.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한 달에 몇 번의 스타벅스는 소확행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기준에서 매일 들르는 스타벅스는 소확낭(소소하고 확실한 낭비)입니다. 처음엔 소확행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단지 습관이 되고 맙니다. 만족감이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담배처럼 끊지 못해서 중독적으로 소비하게 되는 것이죠.


물론 절약만으로 큰 부를 이루기는 어렵습니다. 혹자들은 티끌 모아 티끌이라고도 하지요. 그렇다고 절약의 유용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절약은 단지 아껴서 모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절약한 돈도 궁극적으로는 어딘가에 사용됩니다. 단지 쓸 시기와 사용처를 달리할 뿐이지요. 저는 매일의 스타벅스보다 10년 후 에르메스가 차라리 낫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김건모 씨가 소주를 사랑하는 이유는 소주가 배신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부를 잃거나 명예를 잃어도 소주는 내 옆에 있을 수 있습니다(단, 건강은 잃으면 안 됩니다). 절약은 부를 지킬 수 있게 해주고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해줍니다. 내가 돈이 없거나 혹은 실패했더라도 검소한 생활을 했던 사람은 나름의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생활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돈이 사라지면 절망하고 돈을 구하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특히, 부자가 되고 싶다면 돈을 소비재에 쓰는 것이 아니라 자산에 써야 합니다. 자수성가한 부자들은 내가 지금 쓰는 이 돈으로 건물을 샀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돈의 사용처를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게 되면 행복도 더 크게 누릴 수 있고 부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소소한 행복감을 주는 오늘의 소비습관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덧 행복감은 사라지고 소비습관 자체만 남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또 다른 소비를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금 스타벅스를 경계하십시오. 그러면 훗날 스타벅스에게 배신당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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