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의 수와 확률에 속지 않기
앞으로 몇 편에 걸쳐 확률적 사고를 다루어 볼 계획입니다. 학교에서 수학 시간에 경우의 수나 확률, 정규분포 등에 대해 배운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저는 수학을 원래 좋아하지 않는 데다, 확률과 통계는 수능시험 출제 범위에도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대충 넘어갔었습니다. 투자를 하다 보니 학창시절 암기과목이라고 생각했던 경제학이 생각보다 인생에 매우 중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새는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던 확률과 통계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이 투자의 기본을 다지는 데 도움을 주었다면, 확률적 사고는 투자뿐만 아니라 제가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바꿔 놓았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확률적 사고에 좀 더 깊이가 있었더라면 사십춘기도 쉽게 넘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확률적 사고의 본격적인 내용을 다루기 전에 3가지 사례를 통해 우리가 확률적 사고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살펴보겠습니다.
사례1: 복권, 누군가는 한 명이 아니다
2000년대 중반 로또 복권이 나온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에 로또 광풍이 분 적이 있었습니다. 정확한 시점이나 당첨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수차례 당첨자가 나오지 않으면서 당첨금이 누적되어 해당 회차의 당첨금이 매우 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로또를 샀습니다.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재산을 탕진해 수백, 수천 장의 로또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뉴스를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 발표 이후 당첨자는 분명히 있었지만 인생역전에 성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당첨금은 분명히 매우 큰 금액이었지만, 1등 당첨자가 여럿 나오면서 당첨자별 수령액은 다른 회차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많은 이들이 여러 장을 사면 내 당첨 확률이 올라간다는 생각만 했지, 로또가 많이 팔릴수록 당첨자가 여럿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지요. 결국 로또가 많이 팔려나갈수록 인생역전의 가능성은 점점 낮아진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일확천금의 행운을 꿈꾸며 로또를 구입합니다. 당첨 확률이 낮은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로또를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거의 매주 당첨자가 다수 나오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로또를 산다고 생각합니다. 당첨자가 1년에 한두 명 나온다면 그 복권을 살 사람은 별로 없겠지요. 매주 몇 명씩 당첨되는 사람들을 보니 '나도 혹시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사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판단은 확률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첨자가 나올 확률과 내가 당첨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당첨자가 나오는 것은 '누군가'가 당첨될 확률이고 내가 당첨되는 것은 말 그대로 오롯이 '나'의 당첨 확률입니다. '나'는 오직 한 명이지만 '누군가'는 복권을 산 모든 사람을 뜻합니다. 이번 회차에 당첨자가 나오는 것은 이번 주에 복권을 산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발생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내가 당첨되는 것은 오로지 나만을 대상으로 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10명의 당첨자가 나오면 10명에 못 들었다고 생각하고, 당첨자가 1명뿐이면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복권을 5천만 명이 샀다면 당첨자가 많이 나올 것이고, 만 명 밖에 사지 않았다면 당첨자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당첨자의 수는 복권을 산 사람이 몇 명이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2018년 연간 기준으로 로또 판매액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누군가'가 당첨될 확률은 올라가겠지만 내가 당첨될 확률은 변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로또를 사기 때문에 당첨자가 나오지 않는 것은 드문 일이지만, 내가 당첨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습니다. 중국이 올림픽에서 많은 금메달을 따는 이유는 인구가 많은 만큼 선수층이 두껍기 때문입니다. 당첨자가 여러 명 나온다고 복권을 사는 것은, 중국에서 금메달을 많이 따니 나도 중국에서 운동하면 금메달을 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불특정한 사건의 확률(누군가 당첨될 확률)과 특정한 사건의 확률(내가 당첨될 확률)을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지인을 만난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보통은 서로가 우연히 만난 것에 대해 신기해하며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하지만 길을 가다가 지인을 만날 확률은 생각보다 꽤 높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아는 지인이 매우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헤어진 연인을 우연히 만나기를 바란다면,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서로가 그리워서 예전에 즐겨 찾던 곳을 찾아가는 경우는 제외합니다). 당신이 아는 지인은 매우 많지만 보고 싶은 연인은 단 한 명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헤어진 연인의 우연한 만남이 자주 등장하곤 합니다. 그러나 재회의 개연성을 높이려면, 우연히 만난 지인에게서 헤어진 연인의 소식을 듣고 다시 옛 연인에게 연락하는 편이 좀 더 현실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 소위 '복권 명당'이라 불리는 당첨자가 많이 나온 복권 판매소에 가서 복권을 사면 당첨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복권 명당에서는 1등 당첨자가 많이 나올 것입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와서 살 정도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복권을 사겠습니까? 판매량이 늘면 당첨자가 나올 확률도 당연히 높아집니다. 1,000장이 팔리는 곳은 100장이 팔리는 곳보다 당첨자가 나올 확률이 10배입니다. 명당에서 누군가가 당첨될 확률은 분명히 다른 곳보다 높습니다. 하지만, 우주 제일의 명당에서 복권을 사더라도 당신의 당첨 확률은 변하지 않습니다.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데 드는 교통비로 차라리 여러 장을 사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결론은, (불특정한) '누군가'는 이번 주에도 복권에 당첨되겠지만 (특정한) '당신'은 당첨되지 않습니다.
사례2: 야구, 연속 안타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주제를 잠시 야구로 옮겨 보겠습니다. 연속 안타 기록이 주목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한 선수가 경기마다 안타를 계속 때려내면, 사람들은 그 선수에 환호하고 언론은 해당 선수의 능력과 노력을 칭찬하는데 바쁩니다. 그런데 사실 그 선수만 재능이 있고 노력을 한 것은 아닙니다. 많은 선수들이 여러 해 동안 경기를 하다 보면, 연속 안타 기록이 안 나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동전을 오랫동안 던지다 보면 우연히 앞면만 연속으로 10번 넘게 나오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타자를 평가하는 대표적인 지표는 타율입니다. 20경기 연속 안타를 친 2할 5푼 타자와 연속 안타 기록은 없지만 3할 5푼인 타자 중에서 누가 더 훌륭한 타자일까요? 저는 후자가 더 훌륭한 타자라고 생각합니다. 5연타석 홈런을 터뜨렸더라도 1년에 홈런 10개 치는 선수를 거포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연속 안타를 기록하는 선수가 특별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꼭 그 선수여야만 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KBO 최고 타율 1, 2, 3위 기록 보유자는 MBC 백인천 선수, 해태 이종범 선수, 삼성 장효조 선수입니다. 이들 모두 최고의 선수들이지만 대단한 연속 안타 기록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례3: 의료, 검사결과는 생각보다 정확하지 않다
마지막 사례입니다. 어떤 사람이 배가 아파 병원에 갔더니 위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일단 절망한 후에, 의사의 처방에 따라 치료를 받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절망하기 전에 확인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중대한 병일수록 최소한 두세 군데 병원에서 검사를 더 받아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위암의 검사 정확도가 90%이고 성인 100명 중 1명이 위암에 걸린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러한 가정에서 검사결과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실제로 암에 걸렸을 확률은 얼마일까요? 언뜻 생각해보면 90%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 확률은 예상과 전혀 다릅니다. 검사 정확도가 100%가 아니기 때문에, 검사결과가 참일 경우와 오류일 경우를 모두 생각해야 합니다. 가능한 모든 경우와 각각의 확률은 다음과 같습니다.
A. 검사결과가 참일 경우
암에 걸린 100명 중 1명이며, 검사(정확도 90%)도 정확했음
확률: 1/100 X 90% = 0.009
B. 검사결과가 오류일 경우(암에 걸리지 않았는데 암으로 판정된 경우)
암에 걸리지 않은 100명 중 99명에 포함되며, 검사(정확도 90%) 결과는 오류
확률: 99/100 X (100% - 90%) = 0.099
실제로 암에 걸렸을 확률은 가능한 모든 경우를 감안하면 A ÷ (A+B)가 됩니다. 이를 계산해보면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았더라도 진짜 암에 걸렸을 확률은 단지 8.3%(=0.009 ÷ (0.009+0.099))에 불과합니다. 의사들도 진단을 내릴 때 검사가 어느 정도의 정확성을 지니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전문가라고 해서 의사든 투자전문가든 그들의 말을 확인 없이 그대로 믿어서는 안됩니다.
사람의 뇌가 똑똑한 것 같아도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경우의 수와 확률에 자주 속아 넘어갑니다. 수술받는 환자에게 수술성공 확률이 90%라고 이야기하면 걱정을 별로 하지 않지만, 수술실패 확률이 10%라고 하면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하물며 1,000원을 999원으로만 적어 놓아도 싸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의 뇌는 직관적으로 경우의 수와 확률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확률적 사고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투자는 본질적으로 확률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다음편부터는 확률적 사고가 투자와 실생활에 왜 필요하고,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