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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운욱 눈사람 Jul 01. 2020

투자 바른생활

투자와 투기의 구별

나열심 과장과 금현명 차장은 점심 식사를 함께 하며, 투자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나열심: 차장님 옆 팀에 김 차장님 얘기 들으셨어요?

금현명: 무슨 얘기?

나열심: 김 차장님 아내분이 동네 아주머니들 말만 듣고는 경기도 어디에 땅을 사자고 했나 봐요.

금현명: 그래서 샀데?

나열심: 김 차장님 보기에는 잘 알지도 못하는 곳인데다 주위를 살펴보니 발전 가능성도 없어 보이더래요.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고 무시했다고 하더군요.

금현명: 뭐, 잘 했네. 잘 모르면 안 하는 게 맞지.

나열심: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최근에 그 말도 안 되는 땅이 말도 안 되게 올랐나 봐요. 김 차장님이 그것 때문에 댁에서 많이 난처하신가 봐요.

금현명: 아, 그래? 그러면 이 이야기의 교훈은 뭘까?

나열심: 음… 순진이라면… 여자 말을 들어야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고 할 것 같은데요.

금현명: ㅎㅎㅎ 순진 씨라면 그렇게 얘기할 것 같기도 하네. 그런데 나 과장, 투자와 투기를 구별할 줄 알아?


우리는 주위에서 위와 같은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됩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보통 여성 커뮤니티의 정보력을 칭송하거나, 배우자가 하라는 대로 하면 결과도 배우자 책임이니 그게 속 편하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정작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습니다. 잘못된 방식이라도 수익이 나면 현명한 투자가 되고, 올바른 방법이라도 실패하면 투기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투자와 투기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기로 돈 버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사기를 쳐서야 되겠습니까?


투기의 특징


투기가 건전하지 못한 행위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투기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저는 다음 세 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그 행위는 투기라고 생각합니다.


1. 투자판단 능력이 없다


투기의 첫 번째 속성은 자신의 판단과 심사숙고 없이 자산을 거래한다는 것입니다. 사례에서 김 차장님 아내가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잘 모르지만 남들이 좋다고 해서, 주위에서 다들 사니까, 남들이 돈 벌었다니 나도 한번, 이런 식의 거래는 한두 번은 성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훗날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초보자라 잘 모르니 전문가의 의견을 구해 투자하는 것은 어떨까요? 관심 있는 투자대상에 대해 남의 의견을 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의견을 구하는 것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전문가의 의견을 참고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로 투자하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견해에 생사를 걸어서는 안 됩니다. 돈을 벌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전문가가 아니라 사기꾼입니다. 급등주를 찍어준다거나 반드시 오른다는 말에 자신의 공부나 판단 없이, 소위 전문가의 말만 믿고 묻지마 투자를 하는 경우가 아직도 많습니다. 이는 눈을 가리고 운전하면서 내비게이션이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는 운전자와 같습니다. 사고의 책임은 운전자에게 있고 투자의 책임도 어디까지나 투자자에게 있습니다. 혼자서는 어디에 투자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고요? 그렇다면 아직 투자할 준비가 안 된 것입니다.


2. 리스크 관리가 없다


리스크를 생각하지 않고 투자하는 것은 투기이자 도박입니다.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큰 수익에만 눈이 멀어 무리한 투자를 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자신이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안고 투자하는 것인지조차 모르는 경우입니다.


투자 전에 무엇보다 먼저 갖춰야 할 것은 투자대상을 고르는 안목입니다. 손실위험에 대한 대비 없이 수익만 쫓다 보면 급등주나 파생상품에 손을 대거나 기획 부동산 사기에 휘말릴 수도 있습니다. 실패할 경우에 대비하는 것이 투자의 가장 첫 단계입니다. 우량하고 안전한 자산으로도 얼마든지 투자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으로 필요한 덕목은 과도한 레버리지(빚)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빚을 내 주식투자를 하거나 무리한 갭투자를 하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아직도 많습니다. 금융회사에서 빌린 돈만 빚이 아닙니다. 세입자에게 받은 보증금도 빚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자산이 늘어나는 것에 기뻐하다가 대출과 보증금을 보지 못하면 카드로 만든 집에 살게 됩니다.


한 종목에 인생과 영혼을 걸거나 빚도 재산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위험과 점점 가까워집니다. 모든 위험은 하루빨리 부자가 되겠다는 조급함 때문에 일어납니다. 단기간에 고수익을 노리는 몰빵 투자는 상남자의 투자가 아니라 참을성과 노력이 없는 시정잡배의 도박입니다. 올인은 사나이의 한방이 아니라 무모한 자의 마지막 발악이라는 점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3. 투자 윤리가 없다


투기의 또 다른 특징은 돈만 벌린다면 무엇이든 거래한다는 점입니다. 투자를 할 때에는 이 투자가 적절한 것인지 먼저 따져봐야 합니다. 올바르고 정당한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투자 윤리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투자를 실행하기 전에 내 행위가 다른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잠재력 있는 회사에 자금을 공급하고 기업과 함께 성장하겠다는 마음으로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올바른 행동입니다. 그러나 남이야 사기를 당하든 말든 나만 벌면 된다는 마음으로 작전주에 편승하는 것은 투기입니다. 부동산에 투자함에 있어 토지의 효율적 활용은 뒤로한 채 알박기를 해서 실제 가치보다 높은 가격으로 남에게 뜯어내겠다는 심보는 지탄받아 마땅하지요.


다주택자가 추가로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에도 스스로에 대한 검열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수익만을 목적으로 여러 주택을 보유하는 것은 올바르다 하기 어렵습니다. 내 집 마련을 목표로 열심히 살아가는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똑같은 다주택자라 할지라도 내 집 마련이 어렵거나 집을 소유할 계획이 없는 이들에게 적절한 가격으로 주택을 공급하려는 임대 사업자라면 투자 윤리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적법한 세금 납부와 임대 사업자 등록 등은 필수겠지요.


상업용 부동산 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격과 임대료를 올려서 다음 매수인이든 임차인이든 누군가에게 돈만 받아내겠다는 생각이라면 그 사람은 나쁜 투기자입니다. 그러나 상생을 기본으로 공정한 가격에 사업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마음으로 사업에 임한다면, 기본적인 윤리를 갖춘 임대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투기를 피하는 것의 장점


투기를 하지 않는 것은 떳떳하고 올바른 투자자가 되는 길입니다. 하지만, 금전적인 성과 측면에서만 본다면 투기하는 사람들이 더 유리하지 않을까요? 투기로 돈을 번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것을 보면서 때로는 허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항상 돈을 번 사람들의 목소리가 큰 법입니다. 돈을 번 사람들은 자랑을 입에 달고 살지만 실패한 이들은 항상 조용합니다. 투자든 투기든 돈을 번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투기가 올바른 투자보다 성공 확률이 높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항상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은 법입니다.


투기를 멀리하면 자연스레 큰 위험들을 피할 수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투자대상을 걸러낼 수도 있고 무리한 레버리지도 경계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수익이나 일확천금의 사탕빌림에 속지 않을 수 있습니다. 누가 그런 황당한 사기에 속을까 싶지만, 아직도 지하철이나 길거리에는 투기를 조장하는 광고들이 넘쳐납니다. 그런 광고들이 아직 많다는 것은 지금도 속는 이들이 많다는 반증입니다. 특히 자신이 똑똑하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한번 속아넘어가면 거짓을 깨닫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자만 때문에 스스로 속았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투기를 피하면 규제 불확실성에도 덜 노출됩니다. 정부는 항상 투기 근절을 위해 노력하고, 규제는 투기자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파생상품 시장에서 투기 움직임이 발생하자 정부는 증거금을 높이고 필수 교육시간을 늘리는 등 파생상품의 거래기준을 강화했습니다. 기준을 맞추지 못한 많은 투자자들이 시장에서 손을 뗐지만, 일부는 불법 파생상품 시장으로 넘어갔다가 심각한 피해를 입고 말았습니다. 부동산 규제가 나오면 규제를 피한 지역으로 자금이 쏠리는 풍선효과가 종종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곳 역시 과열된다면 다음번 규제에 발목을 잡히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규제를 피해 투기를 지속하는 것보다는 올바른 투자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 유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투자와 공정성


수년 전부터 공정성이라는 주제가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여러 분야에서 공정성이 가치판단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고용문제의 경우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많은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이들 논의를 조금만 살펴보면 임금과 취업자를 늘리는 것만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용에 대해 이야기할 때 경제 성장, 사회와 계층의 구조, 기업의 경쟁력, 구직자들의 선호도 등 다양한 관점에서 어떻게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하지만 투자에서만큼은 아직도 공정성보다는 돈이 가장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투자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이 투자대상 선정, 정책 효과, 시장 전망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투자 논의는 어떻게 돈을 벌 것인지에 만 관심이 있습니다. 투자에서는 돈이 곧 선이요,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최근에 정부가 부동산 안정대책을 지속적으로 발표함에 따라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무주택자에게 오히려 피해가 된다는 의견도 있고 부작용이 있어도 투기를 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다양한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정책 관련 논의가 중구난방인 것은 공정한 투자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정한 투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그것을 벗어나는 것에 대해 규제를 가하면 됩니다. 하지만 지금은 투기의 범위에 대한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에 정책에 대한 잡음이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논의를 바탕으로 공정한 투자에 대한 기준이 정립된다면, 정책 관련 혼란이 줄어들 수 있을 것입니다.


투기와의 이별


우리 속담에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개같이 번다는 말의 의미는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한다는 뜻이지, 돈만 되면 무엇이든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요새 이 말을 어떻게든 돈만 벌면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는 것은 성패가 아니라 자세와 태도입니다. 돈만 벌 수 있다면 무엇이든 손대는 것은 투기이고, 행위의 적정성을 판단한 후에 실행하는 것은 투자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면 그것은 개같이 버는 것이 아니라 개만도 못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상업용 부동산에 관심을 갖게 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내 집 마련 이후에 정당성을 가진 투자처를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 역시 투자를 돈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던 어리석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로또 분양이라는 말에 아무 생각 없이 청약을 넣은 적도 있었고, 위험한 투자처에 레버리지를 동원해 빨리 부자가 되려는 꿈을 꾸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법이 빠르지도 않고 편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저도 최근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투자의 탈을 쓴 투기가 많다는 것과 투자에도 윤리가 필요하다는 점만 명심해도, 잘못된 투자를 피할 수 있습니다. 투기를 인식하고 피하는 것은 스스로 당당해지는 길이기도 하지만, 장기적 측면에서는 투자의 성과에도 도움이 됩니다. 투자판단 능력과 리스크 관리, 투자 윤리를 갖추어 나간다면 자긍심과 투자 성과를 함께 키워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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