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잡문(雜文)
디자인은 도구(Tool)를 넘어 목적(Goal)이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디자이너로서는 토론할 만한 흥미로운 주제지만 산업(Industry)적 관점에서는 답이 쓰여진 문제지와 같다.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거칠게 정의하자면, 존재 자체가 목적일 수 있는 ‘예술’과 달리 디자인은 산업의 발전과 필요에 의해 변화 해 온 ‘도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직업인’으로서의 디자이너와 그를 위한 대학의 ‘디자인 교육’ 변천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산업화 이후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물건을 남보다 더 잘 팔기 위해 기업들은 제품 디자이너를 고용했다. 인터넷과 웹이 발전하면서 웹 디자이너를 비롯한 시각 디자이너의 수요가 증가 했다. 스크린의 증가와 함께 UX(User eXperience) 디자이너가 유망한 직업으로 거론되었고, Uber나 Airbnb처럼 ‘생산’이 아닌 ‘연결’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면서 서비스 디자이너가 이슈가 되었다.
기업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숨가쁘게 달려 온 속도 만큼은 아니지만 학교 안에서의 ‘디자인 교육’도 변화했다. 새로운 학과를 개설하고, 새로운 디자인 프로그램을 가르치고, 새로운 방법론과 프로세스를 가르치지만 그 도구를 사용하는 현장과는 떨어져 있기에 그 변화의 속도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는 사이 이제 산업은 인공지능과 4차 산업 혁명을 말한다.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그 결을 달리하지만 통상적으로 4차 산업은 자율주행 자동차나 인공지능이 탑재된 소비재의 변화만을 뜻하지 않는다. 4차 산업은 생산 방식의 변화를 말한다. 3차 산업혁명이 전자제품과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소비재를 변화 시켰다면, 4차 산업 혁명은 그 기술을 생산과 유통에 적용함으로써 소비자 수요에 맞춘 생산의 시대를 연다.
이는 디자이너에게 있어 기업이 독점하던 생산과 유통의 채널이 개인에게 열렸다는 점에 있어서 기회이지만, 디자이너가 하던 영역의 일들을 지능화 된 프로그램이나 기계가 대신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위기다.
도구가 될 것인가
도구를 활용 할 것인가
도구를 만들 것인가
어쩌면 지금 디자이너와 디자인 교육이 직면한 근본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을지도 모른다. 대체 될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인가. 변화의 흐름에 맞추어 필요한 도구들을 빠르게 학습하고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목적에 맞추어 필요한 도구를 창조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답은 쉽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 쉬워 보이는 답이 가장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