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잡문(雜文)
학문으로 디자인을 공부하다 보면 피할 수 없는 몇 개의 단어가 있다. 모더니즘(Modernism)과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모더니티(Modernity)가 그렇다. 실무를 하는 디자이너들에게는 공부하던 시절의 유물로, 학생들에게는 시험과 레포트 주제로 기억되는 이 단어들은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삶과는 유리되어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의 글에서나 볼 수 있는 학문적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삶과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고서야 그 형태의 기원과 이유는 과거에 있다.그리고 우리는 때로 그 역사를 더듬으며 미래를 예측 한다.
모더니즘이 무엇인지, 모더니즘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이견이 많지만, 사회 문화학적으로는 종교개혁,산업혁명, 시민혁명, 세계대전, 대중문화의 확산을 그 배경으로 꼽는다.
시작은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개혁으로, 이들은 돈버는 행위를 긍정하고 나아가 근면 성실한 행동으로 정의했다. 이러한 부의 축적에 대한 긍정 속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으며, 이 과정에서 도시화와 시민혁명이 전개되며 일명 대중(Mass)이 탄생되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대량생산과 이를 대량으로 소비해 줄 대중(Mass)의 탄생은, 수공예에서 벗어난 새로운 산업시대(대량 생산)에 맞는 공예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은 생산하기 쉬우면서도 아름다운 물건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었고, 모더니즘 디자인을 대표하는 바우하우스(Bauhaus)는 ‘기능을 강조한 장식없는 기하학적 형태의 제품’으로 응답했다. 공예가 산업과 결합되어 ‘디자이너’라는 새로운 개념의 직업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후 알키미아(Alchimia)그룹, 멤피스(Memphis) 그룹으로 대표되는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이너들은, 지나친 기능주의와 상업주의적 디자인을 비판하며 실험주의적이고 미학적인 디자인을 추구했다. 이들은 디자인이 단지 기능 수행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말하며, 진보적 컨셉과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적용하며 기존체제와 사고방식에 의문을 가하는 실험주의적 디자인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디자인의 큰 두 흐름은 현재까지 남아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디자인에서 중요한 것은 기능성과 유용성인가요? 아니면 심미성과 혁신성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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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없는, 혹은 답이 뻔한 질문과 함께 디자이너 앞에 던져진 또 다른 질문은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라는 질문이다. 대량생산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다품종 소량생산이 주류가 될 수 있는가? 생산의 시대는 끝났으니 경험만 잘 디자인하면 되는가?
이 질문은 바꾸어 말하자면 적당히 잘 디자인되어 대량생산 된 물건을 싸게 구입하는 수 많은 무명(無名)씨들과 곧 죽어도 남들과는 다른 것을 추구하는 개인이 공존하는 시대에 어떤 디자인을 할 것인지,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싶은지,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이다.
- ‘당신은 어떤 디자이너입니까?’